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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10) - 죽음을 위한 기도
날짜 : 2001년 07월 20일 (금) 0:12:28 오전
조회 : 3646
세상에는 해서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데, 여즉까지
세상 돌아간 것을 볼작시면, 그것은 이상하게시리 이 세상을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바꿔놓은 것은 바로,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일에 주로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워낙 그 범례가
많아 구태여 그 증빙자료를 준비하여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고 계시리라 굳게 믿으며,
이곳은 많은 문화유산들과 다양한 풍광들, 신기하고 이상한 생활
습속들로 가득찬, 참으로 별천지이지만, 기실 그네들의 생활을 한
꺼풀 들추고 보면, 그들의 하루라는 게 워낙 단순하고 무미건조
해서, 그네들이 좋아하는 비쩍 마른 그 걸레빵과 흡사하다는, 차마
실례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물론 이 단순함의 좋고 나쁨에 대한 진위 파악은, 닭과 달걀론으로
번질 우려가 있으므로, 닭이 졸든 달걀이 깨지든 버려두고, 다만
우리들의 항상 바쁘고 다양하고 꽉 짜인 생활(그러나 어찌보면
참으로 허무맹랑한)에 비하여,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가 참으로 궁금한데,
항상 새로운 것에 흥미가 많은 내가, 만약 이집션이어서, 나의
하루 일기를 쓰라고 한다면 도무지 다섯 줄 정도 밖에는 쓸 껀수
없지 싶은데, 그들은 정녕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먼지 날리는 밖에서도 항상 입을 그냥 두지 않으며, 하루종일
제 동료들과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희희낙락 박장대소를 하니까요.
혹여 심봉사, 수중 구만리 딸래미 찾아 나섰다가, 가는 길에 풍랑
만나, 어푸어푸 떠내려 갈 적에, 길 잘못 들어 지중해 동쪽연안,
알렉산드리아에 착륙하여, 작대기 짚고 그 웃음소리 들으면, 엄청
살기 좋은 나라라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으음..(^_*)
저는 아무리 눈 씻고 그들의 생활 속을 이 잡듯 뒤져도, 하루 중
그럴듯한 시간은 그저 알라께 경배를 올리는, 예의 그 다섯 번의
예배의식으로 보여지는데, 사실 이집션들이 그 경배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 것인가는 몸에 난 상처로 직접 알 수 있습니다.
열이면 열, 모두 이마에 무엇에 스쳐 생긴 듯한 거무스름한 상처
두 세 개씩은 꼭 가지고 있는데, 이 이마의 상처는 바로, 절을 할
때 땅에 이마를 세게 누르며, 간절하게 기도하여 생긴 것이라면,
그 믿음이 도대체 얼마만큼 강한지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예배 전에, 우리의 제사의식과 비슷하게, 일단의 무리 중에 초성이
좋은 -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 집전관 정도 되는
사람이 먼저 나와서 예배 볼 자리를 청소하여 정돈하고 난 후,
중앙 앞에 서서, 귀 위의 이마 양쪽에 양손을 벌려 나팔처럼 대고
목소리 드높게 엄청 높은 큰 소리로 기도문을 외우는데,
실제로 이 의식은 시계가 없던 옛날, 주위에 예배 볼 시간 임을
크게 알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한 십분 만에 100명 정도는
아주 간단히 집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음도 원, 이렇게 높은 데시벨의 소음도 있나..하던
저도 하루에 다섯 번씩 줄창 듣노라니, 특히 매우 높은 고음의
중간에, 억지로 넣는 바이브레이션이 아닌..음계의 차이가 매우
심하게 요동치는, 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후렴구 비슷한 소리
(아마 아라비안 영화나 비디오에서 가끔 들으셨을 법한)를 듣고
있노라면,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저절로 경건하고 저릿한, 우주
적인 어떤 느낌을 가지곤 합니다. 저 같이 철두철미한(머리=쇠,
꼬리=쇠: 암만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무신론자라도, 처연한 마음
으로 그 소리를 경청하는 가운데 경건하게 의식이 진행되는데,
인스펙터 보조를 맡고 있는 꺽다리(2년 전에 210센티) 칼리드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 무리 중에 쭈뼛하니 서 있는데, 키
크고 안 싱거운 놈 없다고, 얼마나 싱거운 짓을 많이 하는지
별명을 아예 노 설트 가이(소금 안친 놈?)으로 지어주었습니다.
걸레빵을 우리가 먹는 간장, 고추장에 늠름하게 찍어 먹는 장난도
서슴치 않는 악동 중에서도 악동인데,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 놓고 험한 짓 하는 잉간 치고, 정말 나쁜 사람은
없듯이 이 잉간도 수월찮이 괜찮은 녀석인데, 데리고 다녀보니
요모조모 쓸모가 다양한 25살 짜리 숫총각입니다.
하루는 이 녀석이 업무 도중 한숨을 푹 쉬길레 웟츠메러? 하고
물어 보았더니, 키가 커서 고민이라는군요. 키 큰 것도 큰 것
이지만, 평수 또한 장난이 아니어서, 처녀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그 처녀들 눈 삐었지...어찌 이런 괜찮은 총각을
모른 척한다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유난히 여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곤 하였는데, 문제는
그의 표면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마음이 더 큰 문제 같더군요.
이 때, 다만 몇 년 이 세상에 먼저 나온 내가 그에게 용기를
불어주지 않으면 누가 그를 위로해 주겠습니까?
칼리드~, 너는 우선 이름부터가 아주 좋다. 모함메드 라든가
아니면, 무스타파 같이 뽄대없이 흔한 이름이 아니잖느냐... 너의
이름은 말이다... 언젠가 여자 때문에 나라 말아먹은 적 있는,
무슨 이집트 왕자 같지 않느냐? 그리고 너는 다른 어느 누가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지 않느냐... 예를 들어,
특히 건물 천장에 붙어 삭아버린 전구 갈아 끼우기라든가, 또는
높은 선반에 올려놓은 꿀단지 속의 꿀 찍어먹기, 아니면 무거운
물건 내리기, 쪼끄만 아이들 겁주기, 또는 겁주는데 겁 안 먹는
늠 붙잡아 깔고 앉기, 여자 친구 무등 태우고 돌아다니기...등
그리고 특히, 멀리 있는 물체 보기 등이 있지 않느냐?
앞에 있는 말이야, 절반이 별 돈 안 되고 사람 피곤한 일이지만,
그는 정말 시력에 관한 한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먼지 풀풀 날리는 20킬로 사막
끝을 바라보고, 30분 지나야 여기 도착할 차의 종류를 알아 맞추는
정도이니 아마 그의 눈은 양안 5.0..정도는 충분히 될 것인데,
그는 내가 추켜세우는 말에 용기를 좀 얻었는지, 배리 굿, 마스타!
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는데, 녀석..눈치는 빨라서 내가 지
사부쯤 된다는 것은 아는 모양인데, 그러면 뭐하냐..쨔샤...넌
이스라엘과 다시 전쟁 붙으면, 타케트가 커서.. 임마, 조준할 필요
도 없어.. 물론 이 말은 못 알아듣게 한국말로 했지만... (^_*)
그러고 며칠을 지났는데, 점심을 먹고 가뜩이나 피곤한데, 식곤증
까지 몰려 와, 춘삼월 병아리 졸듯 꾸벅거리고 앉았는데, 갑자기
앞이 어둑해졌습니다. 그것은 그 녀석이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았기
때문입니다. 뭔 일이냐, 칼리드, 밥은 묵었느냐? 나는 의자에 앉고
이 녀석은 내 앞 맨바닥에 쭈그려 앉았는데도 나와 얼굴 마주 볼
만큼 키가 엄청 큽니다.
그리고는 누가 들을세라.. (그러나 그 녀석 얘기는 하도 싱거워서
누구든지 귀 쫑긋 세우고 다 듣고 있는 가운데,) 마스터..아이
해브 어 프로브램..이라고 조용히 말했는데, 그래..니가 프로브램
없이 나를 보러 올 녀석이냐? 나는 졸린 눈 게슴츠레 뜨고 그의
실패한 연애 경험담을 한 귀로 듣고 있었는데,
족히 한 삼십 분 늘어놓은 그 이바구의 줄거리를 추려 얘기하자면,
좋아하는 아가씨를 찾아가 무작정 니가 좋다고, 아마 저녁 먹고
이 안 닦은 입으로 뽀뽀 까정 하려고 달겨들었던 모냥인데, 이런
경우 그 결말이라는 게 워낙 참혹하고 비극적이고 이어서, 그냥
집에 가서 변학됴젼이나 보는 게 훨씬 나은데...
아직도 얻어터진 볼따귀가 얼얼한지 자꾸 매만지는 것이, 맞기는
오지게 한 방 얻어 걸렸던 모양입니다... 이 때 또 제가 한 수
거들어야지요...칼리드, 만사는 말이다, 과정이 중요하다. 우선
이런 일을 한번 우리 함께 생각해 보자.
옛날 옛날 한 옛날, 한 인스펙터가 살았는데... 그가 어느 일에 대
하여 정식으로 힘들게 검사를 하고 보고서를 쓴 일과, 그 피곤하고
골 아픈 검사를 하지 않고 가짜 보고서를 쓴 일이 있다고 치자...
(그의 주요 업무는 인스펙터 입니다. ^_^)
그러자 그 녀석은 아픈 곳을 찔린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걸
어떻게 알았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무시하고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 경우 그 일에 대한 구까적인 피해는 사실,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본인에 대한 피해는 막심하다.
왜냐고? 그것은 이렇다...그가 만약 양심이 있다면 필경 밤에 잠이
잘 안 올 것이며, 잠이 안 오면 그 다음날 눈탱이가 벌개질 것이며,
그리하여 그는 또 반드시 그 다음날 낮에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며,
또 검사업무를 소홀히 할 것이며...할 것이며...할 것이다. 내 말이
틀렸냐? 엄청난 결과에 충격을 받고 고개를 가로젓는 그에게, 저는
단호한 어조로 아주, 대못을 박았습니다.
저 많은 인간들이 펼치는 인생이라는 장편 비디오의 과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끝을 보여주는 마지막 비디오 클립 한 장은 확실히
대동소이하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바로 죽음이다. 그 단
한번의 멋진 죽음을 위하여 우리는 이렇게 많은 과정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샬라(신이 원하시는 일)라고? 그렇지..이것을 위해
인샬라가 확실히 필요한 거다.
왜 그러냐고 나에게 묻지마라. 나는 아직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물론 너의 신도 다른 것은 다 뛰어넘었어도 그것은 뛰어넘지 못했다.
다만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무엇을 이 세상에 남겼느냐에
따라, 죽음은 저렇게 죽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너도 보아
하니 죽는 게 확실한데, 도대체 어떤 죽음을 원하느냐? 그리하여
너는 너의 인생에 대한 검사결과가 너에게 어떠하기를 바라느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지금 저 기도의 대열에 서 있습니다. 그의
지그시 감은 눈과 저 고통스러운 양미간 사이에서 무엇이 하나
죽고 무엇이 하나 살아 왔는지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 기도는
그렇게 끝났고, 그는 그 후 사무실로 와서 금일 오후의 검사업무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오후 서너 시쯤, 졸음도 깨울 겸해서 현장 순시를 나섰는데,
저 멀리 높은 곳에 아직 구조물이 완성되지 않는 곳에 있는 설치
물을 검사하기 위해 어렵사리 그 큰 몸을 이끌고 빔을 타고 올라
가는 칼리드를 보았습니다. 높이가 한 삼십미터가 되므로 빔을
놓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끝장입니다.
그렇게 위험하지만 저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이 현장에서 그 정도의 위험은, 개똥보다 흔하게 밟히는 일이고,
이 현장이 아닌 바깥 세상은 더욱 더 그런 위험이 흔합니다.
저는 칼리드가 그런 위험에 대한 안전의식을 느껴 궁뎅이를 일단
뒤로 빼는, 소심함에 한발 앞서 먼저, 그런 종류의 위험, 또는
거개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남자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끝-
07.22
칼리드에게행운의여신이.... 그리고 걸레빵이 먹고싶네요.@@이집트여행을 즐겁게마치고 열심히 고생하시는 해외근로자들에게 위로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