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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9) - 원형극장에 벽오동 심은 뜻은
날짜 : 2001년 07월 20일 (금) 0:11:44 오전
조회 : 3512
지금 나의 옆을 기어가는 개미 한마리, 혹은 은하 중심에서 16만
광년 정도에서 빛을 뿜고 있는 이 은하 중심부에 있는 모든 생물,
무생물 또는 그 중간 정도, 아니면 무생물이라 해도, 우주의 운행
에 비해 다른 것들의 모습은 얼마나 헛된 것인지는..여기 이 지중
해 해변에 밤늦게 앉아 있어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오늘 저 유구한 날들을 반짝이고 있는 별들이, 나를 주변의 빛
없음에 잠시 놓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참으로 옛 고향 한기
드는 늦가을 밤, 호롱불 한 점 없는 뒷동산에서 바라본 별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 그 뒷동산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데.. 다만 그 때,
구태여 변한 것을 찾아보자면, 여기 늙어가는 이 몸일뿐...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10세기 정도만 지나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여 우리에게 보이는가에 대하여, 오늘 알렉산드리아 시내에
위치하여, 아직도 발굴 조사 중인 원형극장(Roman Theatre)에서
그 실물을 정확히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부는 폐쇄되어 있어 확인은 못하였지만, 원형극장 중앙 강당과
후면 지하통로, 부숴진 기둥들과 조각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등, 그야말로 고대 문명의 진수들을 매만지다가, 문득 그 원형
극장이 지진 아니면 모래바람 등으로 인하여, 지금의 주거 공간
보다 약 20미터 정도 지하 밑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지금의 조각가들도 혀를 내두른다는, 그 정교한 조각들, 아직도
살아서 숨쉬는듯한 동물과 해, 별, 달..등을 옅은 옥색 은은하게
감도는 반투명한 대리석, 또는 나무화석과도 비슷한 결이 있는
희귀한 돌로 만든 거대한 기둥에 새겨 놓은 것을 보았을 때,
일단의 그 웅장함, 그리고도 한치의 소홀함이 보이지 않는 정교
한 터치로 구석구석 다듬어 놓은 작품들, 그리고 그 예술적인
조형물의 배치..등을 보며 얼이 반쯤 나가 있을 때, 사전답사를
나갔던 한국인 한사람이 여기 이 원형극장의 진수를 보여준다며
우리를 인도하였습니다.
원형극장..이름 그대로 로마식으로 지어진 조그만 극장, 그러나
거기 나타난 조형물의 고급스러움을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시절,
난다긴다하는 가수들이 왕족이 배석한 그 자리에서 노래 한번 부
르는 게 죽기 전의 소원이었음직한, 아직도 화려한 그 자리에 섰
을 때, 아아... 나도 저기서, 부르다 목이 터져 더 이상 못 부를
노래나 한곡 불러 보았으면..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왕이나 대신이 앉았을 것으로 추정되는..설화석고를 거의 떡 주무
르듯 주물러 빚어놓은 용상에 앉아보기도 하고, 그 빈틈없이 아름
다운 원형 계단들 사이사이에 혹시 남은 숨결 없나... 찾아보다가
최하단에 위치한 중앙 무대에 내려갔는데, 옛날에야 엄청 화려했겠
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지금의 자갈이 좀 깔려 있을 뿐,
그런데 특이한 것 하나는 그 중간 조금 앞 쪽에 지름이 약 30센티
쯤으로 보이는 동그란 돌이 하나 박혀있었는데, 인도했던 한국인이
그것이 바로 이 원형극장의 진수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세
한 설명이 없자, 이 돌이 무슨 금돌쯤이나 되는 대단한 돌인냥 모두
들 허리굽혀 자세히 들여다 보고 매만져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우리집 김장김치 눌러놓는 흔한 돌이었으므로, 모두
의아해 하고 있자니,그 돌 위에 서 봐야 안다고 그 사람이 설명
하기에, 냉큼, 제가 먼저 그 돌 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고 세상이 달라 보이지도 않았고, 마술처럼 알렉산더 대왕이 호리
병 속에서 거인 나오듯 나오지도 않아서, 멍청하게 한참을 섰다가,
내려오며..뭐 별 것도 없구만..하였는데,
그 순간, 깜짝 놀란 것이, 가만 보니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랬던 것
인데, 그 지점이 바로 그 원형극장이 가진, 가장 과학적인 지점,
공명 포인트였던 것입니다. 마치 발 밑에 큰 항아리를 묻어 놓은듯,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가 항아리 속에서 얘기하는듯한 그런 소리에,
안 놀란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일테지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 지점에서 단 몇 센티만 움직여도, 공명이
없어지는데, 이 공명은 거기서 소리를 내는 사람만 느낄 뿐,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울림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노래
하는 사람의 자기도취를 맘껏 발휘할 수 있게 배려를 했다는 것인데,
거기서 목이 터져라 열창했을 가수들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배려가
아니라, 혹사시켜 일찍 무대를 떠나게 만들었을.. 악용 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먼 세월, 그런 지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
하는 법을 알았다는 것만 해도, 그들은 가히 음악을 즐길만한 충분
넉넉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때 나는 뜬금없이 동행들이 있는 가운데, 여기서 노래 한 곡
불러보자고 제안했는데, 그 때가 이미 해질 녘이어서 주변에 사람
들이 뜸했고 경비원들이 저쪽에 있었으나, 그들이 제지하러 여기
올 때쯤이면, 이미 노래 한곡은 끝났을 쯤이라..
괜스런 객기로 만용을 좀 부려보았는데, 이런~ 거기 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그 무식한 얘기에 모두 찬성을 하고 말았는데,
거기서 또 벽오동 심은 뜻은...은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공명
을 이용하여 초성을 일단 잡고, 최대한 작은 소리로 불러볼 깜냥
으로, 벽오동~ 심은 뜻은..했는데, 누가 저쪽에서, 얼쑤 좋고! 하며
추임새까지 넣었겠지요.
봉황을~ 보잤는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부터 고음이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 그 때쯤..이미 공명으로 간이 부을대로 부었고, 그게 아니더
라도 그 옛날 이 지점을 찾아냈던 그 사람의 최면술에 걸려.. 에라,
이왕 버린 몸,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목청을 틔워,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공명이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숨 쉬는 작은 소리
라든가 방청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도 내 귀에 들리니, 그
때의 음감이란, 가히 현세 최고의 멀티미디어가 와도 그 보다는 못
할 것 같았는데, 하~늘아, 무너져라~ 와드드드드드드드드드~ 를 할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그럭저럭 그 곡의 말미로 접어들어..꿈 이었다~~~ 하며 잦아들 때,
그 저음에서의 공명은 정말 극치였었고, 한 숨 잠시 몰아쉬고 난
다음, 안 오시뇨~~~ 하고 부르짖을 때는, 그 극장 안에 고이 잠든
혼령들이 모두 깨어난듯 하였는데, 그 때 그 긴 공명이 끝나자마자
관중석의 우리 식구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 주더군요.
저 뒤편에서도 박수소리가 들리길레 돌아보니, 경비원들과 나머지
몇몇 내 외국인들도 박수를 보내주며 연호했었는데, 아아 그 때의
제 심정이, 그 옛날 이 무대에 서기 위해 한 삼십년 별러왔었다가
마침내 이곳에 서게 된 날, 대왕마마 감기 몸살 걸려서, 몇몇 늙은
대신들이 꾸벅꾸벅 조는 가운데 노래 한 곡 부르고, 그만 그 노래
인생 종 친 어느 무명가수에 비기겠습니까?
알렉산더 대왕께서 지하에서 주무시다가, 이게 무신 자다가 벽오동
잎사귀 위로 별 떨어지는 소린고..하고 귀 귀울여 주셨는지는, 나도
지하에 가서나 물어 볼 일이겠지만, 그동안 이집트 와서 괜한 우울,
또는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던 노스텔지어를 한꺼번에 몰아내고
보무도 당당히 입구 쪽에 전시된 모든 기둥과 조각품을 샅샅이 돌아
보고 있었는데,
아름다워라! 그 살아 숨쉬는듯한 반라의 무희들이 금방 나와 태평무
라도 출듯이 몸 풀고 섰는데, 필경 아직 아무도 그 명령을 내린 자
없었을 것이라, 이리 나와 춤을 추거라~ 하고 명령하였는데, 그 때
마악 노을이 이 하얀 광장을 붉게 물들이고, 차마 눈부시어, 저
하늘을 나르는 구름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어딘가에서 바람이
검은 어둠을 몰고 와, 이제 곧 태평무가 시작되려는 찰라,
갑자기 코 밑에 수염 덥수룩하게 기른 경비원이 다가와서 조용한 목
소리로..업무가 종료 되었노라고 속삭이는 바람에 산통이 다 깨어
지고 말았는데, 그날 밤 내 잠자리 곁으로 스치고 지나가던 이불
자락이 그녀들의 옷자락이었는지는 어쨌는지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확인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나는 그녀들에게 물어 볼 말이 하나 있었지요. 물론 춤을 추던
그녀들이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춤을 추었는지에 대해서는, 필경
로마의 지배에 의하여, 사랑하는 식구들과 생이별 하고 끌려 온,
노예의 일종이었을 터이므로, 더 이상 물어 볼 말은 아니지만, 그렇
다고 현실의 이 대명천지에서도 아직 그런 것이 사라질 징후는 아직
추호도 보이지 않으므로,
그대들이여.. 서러워 말아라, 인간이 세상에 오면, 매일의 어제
또는 오늘의 내일에도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들과 이별하고
있다. 억센 군졸들에게 끌려 여기 온 이후, 거개가 그대 가족들과
그 길이 마지막 길이었거니, 그대들이 그 이후 행복했던 순간은
과연 언제였는가? 춤을 추던 그 순간이 아니었는가?
그러므로 그대들이나 나나, 또는 지금 이 지상의 어느 누구라도,
거기 선 자리가 구름 속이든 가시밭길이든, 아무렴, 행복이란 항상
자신의 마음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마음 속에 묻히나니, 나 오늘
거기서 그대들이 잘 모를 언어로 벽오동 심은 뜻을 잠시 얘기했거
니와, 그 뜻은 버려두겠지만 음률만으로 얘기하여도, 나는 그 순간
진정 행복하였었는데..글쎄, 그대들도 과연 행복하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