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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8) - 안개비 내리는 풍경
날짜 : 2001년 07월 20일 (금) 0:09:23 오전
조회 : 3563
이곳에는 모래 안 날리는 날이 없고, 모래 안 날리는 곳이 없어,
어쩌다 기온 뚝 떨어지는 새벽에 일어나 나와서, 천지분간 안 갈
정도로 자욱한 안개에 잠겨 있노라면, 아아..그 때는 그 많던 모
래도 모두 잠들고 말아, 그래..이렇게 대강 보이는 세상이 계속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 안개 속을 걷다보면 안개도 거의 모래와 같이 사람의 육신에
부딪친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농도가 엄청 짙고, 그들이 아침에
빵에 찍는 그 걸쭉한 녹말가루와 같이, 진득하다는 것을 금방
몸으로 느끼게 될 정도로, 모래는 그렇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있음으로 하여, 그렇습니다. 그 안개를 몰아내는
것도 결국 모래바람 입니다. 해가 뜨면 그 모래들이 마르고, 모래
들은 무엇보다 그 격렬한 태양의 뜨거움에 그들끼리 수런거리며,
바람을 일으킵니다. 태양은 그렇게 바람과 모래 사이에서 그들을
정확히 제어합니다.
이집션들이 귓구멍, 콧구멍, 눈썹 털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모래
먼지 때문인 것이, 우리는 저녁쯤이면 눈이 따갑고, 코가 빡빡하고
매워져서 재채기를 해 대지만, 그들은 항상 이 모래바람에 외눈
하나 깜짝 않고 늠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녁에 샤워를 하고 귀를 후비면, 모래가 한 두 삼태기는
족히 나오는데,(으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군요. 그것
참, 아무리 생각해도 조물주께서는 이렇게 바쁜 세월에 저렇게
여러 가지 배려하시느라고, 그 흑단같은 머리카락 다 빠졌지 싶
은데...그건 어쨌든,
그들이 먹는 음식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선 주식이 빵인데,
껍질이 딱딱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축축한 빵에는
모래가 잘 묻고, 손으로 잘 털어지지 않기 때문인듯 한데,
고기류도 우리처럼 다양하게 국이나 전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껍질이 새카맣게 탈 정도로 완전히 딱딱하고 시커멓게 굽거나,
아니면 기름에 바짝 튀겨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더운 나라는
음식이 잘 상하고 먼지가 잘 묻기 때문이리라 생각되며,
빵은 밀가루나 귀리가루에 효소 처리를 살짝하여 물에 묽게 반죽
하여, 손으로 빙빙 돌리다가 펴서 버터를 두른 뜨거운 프라이팬에
구워내는데, 그러면 빵의 중간에 빈 공간이 생기고, 기실 빵은
순전히 껍질로써 존재하게 되어지는 것이죠.
이 빵은 주로 넓고 얇게 너덜거리게 만드는데, 우리는 이 너덜
거림을 비아냥거리는 투로, 걸레 빵이라 애칭하곤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실은 그들의 주식이며, 모든 음식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자주 대할 수 밖에 없습지요.
소스도 매우 다양하여 야채소스, 피너츠소스, 육고기소스, 생선
소스, 과일소스 등이 있고, 여기에 갖가지 향신료(나는 이 향신료
중에 아는 것이 피파민트 밖에 없으나 풀 코스에는 약 7가지가
나온다), 그리고 간을 맞추기 위한 야채절임류에 과일을 섞은 것이
주류인데, 하여튼 이런 방면으로의 미각적 발달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느끼한 냄새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빵은 주로 이 소스에 찍어 먹거나 양고기, 쇠고기, 비둘기고기,
토끼고기 등을 야채절임류와 빵에 싸서 먹는데, 돼지고기는 회교
율법상 절대 쓰지 않으며, 더운 나라이어선지 우선 음식이 매우
달거나 혹은 짭니다.
그러나 맛대가리 없다고 안 먹고 버티거나, 떼쓴다고 해서 누가
오냐.. 할 사람 없으므로, 어떤 음식이 나오든 먹어치울 만반의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곳에서 사는
하루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 보다 칼로리 소비가 엄청 많이 들어
가므로, 잘 먹어야 하루를 수월하게 버틸수 있습니다.
여기는 인건비가 아주 싸므로 (우리의 거의 1/10 수준) 요리사,
빨래하는 아줌마, 청소 담당하는 아이, 건물관리인, 차 운전수
에다가, 시내 가이드, 소모품 담당까지 불러다 써도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한 사람 봉급이면, 이것이 모두 해결되기 때문에, 시쳇
말로 우리는 그저 오뉴월 개팔자 늘어지듯 늘어진 터인데,
그러자니 자연적으로 그들과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들의 문화와 습성을 빨리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여기 사람은
눈빛이 매우 강렬하고 다혈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는 차를
타 보면, 교통질서나 양보심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희안한 일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무질서로 인해서
발생하는 사고나 다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짜고짜 길 중간에 차 가로 세워놓고 멱살잡이 내지는 국어사전
에도 안 나오는 욕 몇마디 날라갔을만도 한데, 그들은 어깨 한번
으쓱하며 손 벌리고..별꼴이군..하는 제스처로써 그만입니다.
한번은 가이드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가, 길 중간에서 높은 언성
으로 싸우는 소리가 들려, 잠깐 들여다 보았더니, 이집트인 둘이
서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화가나서 얼굴이 벌개져서, 펄펄 뛰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물건 값 때문이라는군요.
여기도 예전의 우리처럼, 물건값을 일단 곱배기 내지 두곱배기쯤
올려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그로 인한 다툼인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이 엄청 화가 났는데도, 상대의 몸에
손을 대는 짓은 하지 않고, 둘이서 격렬하게 말을 주고 받은 뒤,
주위사람에게 서로 하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드의 통역을 들어보니, 여기 사람들은 싸움이 나면 일단 그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잘잘못을 가려준다고
합니다.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은쪽이 옳은 것이지요. 참
민주적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실은 민주적이란 것이 다수의
횡포이거나, 결국 답이 없는 경우로 갈 개연성이 많은 것이 민주
주의에 적응한 인간의 속성으로 생각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조금 있으려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끼리 또 반론을
펴며, 더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는데, 한참을 그러다 보니 정작
처음 싸우던 두 사람은 뒤로 밀려나 버리고, 말 잘하는 몇 사람만
앞에 나와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는데,
하이구..정력도 좋기도 하지..쌈 시작한지 한 시간도 족히 되었건
만, 그 싸움은 전혀 끝날 기미 안 보이고, 쌈 귀경하던 사람도
슬슬 하품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때 가이드가 뒤에서 뭐라고 큰
소리로 얘기하길레,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밥 먹고 합시다..
라고 말했다는군요. 나 원참...
여기서는 정가가 붙지 않은 물건이나, 정가가 있더라도 이집트
숫자를, 사발면 엎질러 놓은듯이 꼬불꼬불 써 놓은 물건은, 살 때
조심해야만 합니다. 특히 먹는 류의 음식은 반드시 흥정을 하고
먹어야 하는데, 흥정하지 않고 취한 물건은, 물건 쥔이 부르는 게
바로 정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가가 없는 물건은 무조건 부르는 값의 1/3 정도로 낮춰서
흥정을 해야 반값 정도인 제 값에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비싸서
안 산다며 몇 번 뿌리치고 가는 척해야 합니다. 어쩌면..우리의
옛날 시장 풍경을 고대로 빼 닮았는지..시장 가면 그저 허허거리고
웃느라..정신이 없습니다.
돌아오는 저녁 길에도 안개가 자욱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안개 낀 길 위로 모호한 이 나라의 앞날과, 또한 그러한 내 마음이
적당히 절충하는 사이, 사뭇 이 우중충한 거리는 자신이 부끄러워
몸을 숨기고, 모래바람을 잠 재우며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 확실한 것이 하나 있군요. 저기 길가에 쭈뼛거리고 선 대추
야자 나무가 안개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저 나무도 물을 먹고 살
아가는 생물이건데는, 이 메마른 대지에 아무리 뿌리 내려도 건져
올릴 물 한 방울 없겠건마는, 이 이유는 분명한듯 합니다.
항상 어디서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상야릇한 뜻에 항상 그 근본
사유를 갖는 인간들처럼, 어리석고도 군더더기 많으며, 사치스러운
행위없이, 그저 거기 서서 죽음에 가까운 갈증을 견디어 이겨내면..
운명처럼 어느새 안개비는 내려, 내리는 저 안개비의 어느 구석
그 뒤로 우리가 모르는 저 깊은 속에, 이 산다는 것에 대한 고단
함과 서글픔을 감추어 둔다면, 그것으로 맺히는 열매는 저렇게
다른 어느 과일의 열매보다 더 달고 더 감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