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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7) - 리비아 사막
날짜 : 2001년 07월 19일 (목) 11:46:56 오후
조회 : 3548
사람이 치사하기로 치면 한도 없고, 또한 사악하기로 하자면 밑
빠진 독에 콩쥐 물길어다 붓기라...올 여름을 서울에서 지내며
그 지루한 장마, 일주일에 꼭 한 두 번씩 구름 지나가면, 절대로
외상없이 퍼붓던 빗줄기..염병, 호래비 빨래해 놓고 간만에 바람
좀 쐬러 갈라치면 빠짐없이 내리던 비 때문에, 치를 떨었건만..
이집트 와서, 비는 커녕, 이슬 내릴 나무도 별로 없는 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모래바람...저녁이면 콧구멍 속에는 마치 스핑크스
처럼 모래 버석거리고, 나일강 아니었으면 말라 죽어도 어느 골
천년 전에 다 말라죽어 미이라가 되었을 이곳의 백성들은, 이 모
래바람이 뭐 그리 좋은지, 허연 이 드러내놓고 웃고 있는데..
어쩌다 바람결에 서서 누구랑 얘기하다보면 입안에 모래가 한
움큼 들어와, 퇴퇴거리며 질겁을 하곤 하는데..모래도 날리고
날리고 또 날리어 얼마나 닳았는지, 밀가루만큼 입자가 가는데,
혹시 코밑 수염 기른 저 이집션들은 입에 모래 들어가지 마라고
기른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북서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알라메인에 물건 구하러
갔다가, 그 노무 물건이 다 떨어지고, 리비아 접경에 있는 살룸에
있다기에 거기 가기로 하고, 루트를 리비아사막 북쪽 자락으로 택
하고, 정밀지도를 보니 사막 끝자락이라, 뭐 그런 대로 괜찮으리라
생각하며 차를 점검하고 기름을 만땅으로 넣었습니다.
물 한병 차고 사막 입구에 와 보니, 이런~ 지도보다 훨씬 더 지중
해 쪽으로 사막이 밀려나와 있었는데, 그러나 사막 복판으로 길이
나 있으므로 그 길을 따라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며, 막상 차를
사막 가운데 몰아 넣고 한 삼십분 달려 가 보니,
어랍쇼..동서남북 분간이 안 가는데다가, 그나마 길도 점점 변비있
는 그 머시기처럼 가늘어지더니, 어디선가 쯤에서 그나마 점점 거
세어지는 모래바람 속에 묻혀 가물거리더니, 그만 깜박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일순에 사라지고, 사막만 남아 있더군요.
내려서 오던 길을 돌아보니 어디로 왔는지..짐작이 안 가고..다시
차에 올라 어림짐작으로 나침반과 지도를 놓고 방향을 확인한 후,
무작정 짐작 가는 곳으로 정신없이 차를 몰았는데, 여기서 잘못 얼
찐거리다가는 도로 헛갈려서, 그 자리 뱅뱅 돌다가 차라도 처 박히
는 날이면, 사자보다 무섭다는 들개들 저녁 밥상에 오를 일이므로,
남쪽으로만 가지 않으면 되리라고 생각했고, 사막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길로 올라오고, 또 사막으로 들어갔다가, 길로 올라오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약 두시간 정도 차를 몰았는데 다행히 이곳
모래도 워낙 가늘어서 차가 모래톱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빠진들 또 어쩌겠습니까..차와 같이 모래폭풍에 푸욱 묻혀서 허리
뻣뻣해질 때까지 골 아픈 일 잊고, 한숨 푹~ 자다가, 한 삼천 년쯤
지난 다음에 미이라로 나와서, 입에 묻은 먼지만 털어 준다면,
그 때, 묻는데 돈 받는다면 딱히 물을 말은 아니지만, 나 쳐다보는
인간들에게, 다음 또 내가 갈 길은 어디냐고 물어보면 될 일인데..
다만 살고 죽는 일이 뭐 그리 대수냐고 큰 마음 먹었지만, 땀은 뻘
뻘 나는데, 손은 왜 달달 떨리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_^)
앞이 자욱했다가, 조금 보였다 가를 수십 차례 반복하는데, 갑자기
앞에 허깨비 보는 것과 같이, 뜬금없이 시멘트 구조물 하나가 희끗
나타났는데, 내가 지금 허깨비를 보는 것이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주유소더군요! 아이고~ 얼마나 반갑던지..
차에서 내려 주유소 안을 들어가니, 수염을 닷자나 기른 이집션이
멀뚱히 나를 보는데, 그러든 말든 돌아가신 삼촌 만난 듯이 반가
워서 달려들며, 사바르키일~! 하며 손을 번쩍 들었으나, 무뚝뚝
하게도 부쿠라..이었습니다. (기름없다, 내일 오라)
그에게 방금 내가 겪은 끔찍한 모래바람 얘기를 짧은 영어와 토막
이집트어로 뒤범벅을 해서 설명했더니,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한참 끄덕끄덕 해쌓더니, 간단한 답을 내 놓았는데 인샤알라...
더군요. 신의 뜻..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동네 위치를 묻고
또 되물어 (길 잃을까봐), 다시 가던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두 시간쯤 더 가서 그 동네에 다다랐고 거기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서둘러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들어갔는데, 시장귀경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쯤에서 뱃가죽이 등가죽 만날 지경이
되었는데, 입구에 비둘기 시장이 있더군요.
비둘기들은 선반에 주욱~ 얹어져 있었는데, 수 백마리가 넘게 보
였고, 그렇게 많은 비둘기가 우글거리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날
아 다니는 비둘기가 어째서 거기 앉아, 나 잡아잡수 하며 앉아 있
느냐고 묻지 마시라. 이미 날개 죽지 퍼덕일 힘줄마저 저들의 손
에 끊어진 지 오래인데, 그 곁에 마치 통닭 굽듯이 쇠꼬챙이에
비둘기를 끼워서 지글지글 굽고 있었습니다.
나를 평화의 전도사쯤 알았던 사람들이여..경악하시라..배고프면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도 거기 사람처럼 샤이를 한 잔 시켜 설탕을
다섯 스푼 넣은 후, 구운 평화의 전도사인 통비둘기 몸에 묻은 모
래를 손으로 쓱쓱 문질러 털어 내 가며, 날리는 모래 먼지 속에
그들처럼 서서 맛나게 먹었는데,
이 때 소주가 한잔 있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겠으나, 내 갈
길 앞에는 아직도 사상누각의 저 리비아 사막이 버티고 있으니,
그만한 똥배짱 하나 없이 사막을 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므로,
똥배짱도 먹고 배부른 이후에나 부려 볼일이므로, 가다가 설사나
만나지 않게 신경 써서 꼭꼭 씹어서나 먹을 일이었습니다.
마을을 떠나면서..기브 미 펜..을 외치는 꼬마 녀석들에게 가진
볼펜 다 나눠주고, 리비아 사막 앞에서 마치, 그 옛날 전장으로
떠나던 십자군과도 같이,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하잘 것 없는 것
에 대한 겸허함을 경건한 마음으로 한참동안 되새기고, 심호흡을
몇번 한 다음에, 차를 몰아 붙였는데,
세상에..어찌 이럴 수가..사막은 기가 막히게도 아까 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백리도 넘게 바라다 보였고, 그 넓은 사막 어디에도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햇살만이 쨍~ 하였고, 한참을 몰고 가도
마찬가지라, 기가 막혀 차를 세우고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넓은 사막에 나 혼자 서 있었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럴 때 알라 신이시여~! 다시 살아오시어 이 나라 구제
하시고, 힘이 좀 남아도신다면, 이 위인도 고향 앞으로 가라고 이
사막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호통쳐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럴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고, 저 멀리 남쪽 끝으로 어렴
풋이 모래폭풍이 다시 시작 되는 듯, 하늘 끝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으므로, 엇뜨거라..하며 부리나케 차에 올라타고, 로시난테야
빨리 가자고 액셀레이터를 불이 나게 밟아 지중해로 향했는데,
멀리 알렉산드리아 해변이 보일 때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잠시 길가에 차를 걸쳐놓고 눈을 붙였는데, 한 시간쯤 자고 일어
나니 세상이 새롭게 보이더군요. 다시 시동을 걸고, 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틀었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And The Sun Will Shine"
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오더군요.
올 여름에 신물나던 빗소리를 이기기 위해 미끈거리는 서울 어느
지하상가에서 샀던 것인데, 기가 막히게도 여기 태양이 빛나다 못
해, 아예 눈까지 멀어지려고 하는 사막 끝에서 듣다니..이런 기막
힌 사연을 눈 먼 펠리치아노가 알기나 하고 부른 것인지..
And the rain will fall, it falls for you...
And the rain will shine, it shines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