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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3) -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들
날짜 : 2001년 07월 19일 (목) 11:43:54 오후
조회 : 3829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흩어진 상대방의 앞머리를
쓰다듬어 반듯하게 해 주는... 그러므로 때로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지요. 도와주는 사람 방심한 사이, 뒤통수를 치는...
으음.. 얘기가 어째 첫머리부터 샛길로 빠졌습니다. (-_-)
이 이야기는 그만큼 이집트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는 얘깁니다.
예전 로마에게 정복당했을 때부터, 근대의 식민지 생활..또는
낫세르의 공산주의에서 파생한 필요악과, 사막지역 사람들의
그럭저럭 봐 줄만한 생활 속의 폐단들...
그런 저런 무슬렘의 독특한 사고방식, 아니면 초기 기독교적인
색채, 가방 끈 길게 늘이는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면..등등이
섞여, 무릇 이 세상의 문화란 문화는 모두 다 섞어 놓은 듯한
그 짬뽕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인종도 새카맣고 코 납작한 아프리카 토색이 진한 사람부터,
아예 거의 백인종에 가까운 혼혈 혈통을 가진 사람들, 동남아
얼굴이 좀 뒤섞인 듯한 묘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모두가 다양
하게 어울려 지지고 볶고 재미나게 살지만,
그래도 어쨌든 눈에 많이 띄는 사람들은 조금은 가무잡잡하고,
눈이 크며, 털이 많고, 웃음과 울음이 많은 이집트 본토박이
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어찌 보면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을 합해 놓은 모습에서, 그 콧물 날만한 지리적 운명론
같은 것이 기필코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집트 남자들은 정말 남자답게 잘 생겼습니다. 좀 고집스럽게
생겼지만 이건 회교 습속에 따라 기르는 콧수염 때문인 것 같고
실제는 싱긋 싱긋 잘 웃기고, 화를 낼 때는 세상을 삼켜 버릴 듯
화를 내다가도, 좀 억울한 일이라도 당하면 울기도 잘 우는데
아마 천부적인 감수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딘들 그런 사람 없겠습니까마는 근본적으로 되 먹지 않은
사람들은 차치하고, 우리회사 자재 구매 담당인 핫샘이라는
할아버지(62세)가 바로 이집트 남자의 스탠다드 입니다. 그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보다 더 강인하면서도, 감수성이
매우 예민합니다.
그는 상당히 정직하고 셈도 바르기 때문에 현지 구매 자재의
안목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다 헛점이 있기 마련이기에, 어쩌다 잘못 구매한 건이 하나
저에게 적발되었습니다.
그랜드 파더..당신이 구매한 이것은, 내가 승인한 품목의 세부
사항과 다르다. 왜 그러냐? 다음의 대책은 무엇이냐..하고 정중
하게 물었습니다. 국내 같으면 제 성질에..자재를 부숴 버리든지,
아니면 사람을 부숴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였는데..(^_^)
그는 말이 막히자 대뜸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집트인들은 수다떠는 것을 엄청 즐겨하기
때문에, 여기 말려 들어가면 거의 틀림없이 그와, 족히 한 두
시간 입씨름을 해야 해답 비스므리한 답이라도 구할 수 있습니다.
얘긴즉슨 이렇습니다..나는 열심히 했다. 사실 어제 저녁 먹고
늦게, 문이 닫힌 자재 상회에 가서 보니 주인이 없었는데, 그의
집을 찾느라 삼십 분이 걸렸고, 그래서 그 집을 찾으러 가다가
개를 만났는데, 개가 으르렁거리며 따라와서..어쩌고저쩌고...
전 사실, 이 따위 핑계는 속이 느글거려 오래 듣지를 못 하지만,
여기가 타국이고, 상대는 저 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어른이시
므로, 억지로 웃는 낯을 만들어 정중히 대했지요.
제 얘기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나는 사실 뭉뭉이를 억수로 좋아
하지만, 그 뭉뭉이란 자재에 대하여 단 한번도 언급한 바가 없다.
미안하지만 뭉뭉이는 대화에서 빼자. 이 서류에 있는 자재에
대한 정보만 나에게 말해달라...
그랬더니, 아 글쎄, 성질 죽여도 자그마치 닷 말 이상을 죽인
저 보고..당신은 너무 냉정한 것 같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해 줄
수 없느냐고 훌쩍거리며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아~ 자기네 옆집 영감이 나하고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
인데, 젊은 나이에 일찍 죽었대나 어쨌대나 하면서, 코를 팽~
푸는 바람에, 그 때까지 잘 참았던 꼭지가 획~ 돌아버렸지요.
남자가 쩨쩨하게 핑계대지 마시오. 그리고 울지 마시오. 내가
이 따위 허접 쓰레기 얘기 듣자고, 산 넘고 물 건너고도 모자라
바다 까정 건너서 여기 우그라질 사막에 온 게 아니니까, 다른
얘기 치우고, 자재가 틀린 이유와 다음 대책, 그 두 가지에
대해서만 나에게 말하시오.
그 다음엔 어찌 되었냐고요? 대답 없이 한시간 동안 구석 의자에
앉아서 훌쩍거리고 계시기에..나중에는 제가 가서 아임쏘리..
다시 안그러겠노라고, 도로 통사정해서 퇴근시켜 드렸지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말 제가 잘못했드라구요. 저의 이성적인
그 무엇이 앞서서, 그의 감성적인 면을 제가 간과했던 것이죠.
그후 그와 얘기할 때면, 저도 감성적으로 얘기를 드리곤 합니다.
그랜드 파더~ 그러면 우린 모두 망해요..아시겠어요? 그것도
아주 쫄딱 말이에요. 자그마한 손실이 모이면 태산 만한 손실을
만든다는 것을 오래 사셨으니 잘 아시잖아요..그리고 제발 울지
마세요.. 그러면 저도 우리 아버님이 생각난단 말 이예요.
그리고, 이거 아세요? 저도 말이에요. 감성 하면 본토에서 되도
않는 시 나부랭이 까정 쓰며, 한 감성하는데 말이죠. 부모형제,
자식 버리고 이 머나먼 타국까지 온 것 보면 모르시겠어요?
저도 불쌍한 놈이란 말이에요..
물론 그 후로, 그는 그런 실수를 줄이려고, 사실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연세도 계시고..사실 다리품
파는 것에 진력을 내시므로.. 그 업무는 다리 힘 없으면 종치고
막내린 일이므로, 가끔의 손실은 필연의 과정이지만,
노력이라는 것이 딱히 그 결과만을 노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저이지만, 뒤돌아서면 속 다 썩어 문드러지고,
허패 희뜩 디비지는 일 많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손실을 긴 세월에 놓고 본다면 저나 회사나, 핫샘 할아버지에게
뭐, 그리 큰 손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 사람들은 저에게 언제나 이렇게 대단히 인터레스팅하고
델리킷하며, 이노센트하며, 그리하여 밉든 곱든 서로 살 부비며
같이 살아가며, 내일을 같이 바라보는 시선에 리즌어블한 파워를
실어 볼 수 있는, 뜨거운 감흥을 항상 나에게 되돌려 주므로,
저는 사람들이 저에게 주는 희망과 실망을 둘 다 가질 수는 없을
때는, 어쩌겠습니까? 실망은 기브 엎하고 희망만을 풑 어사이드
하며 내일을 바라 볼 수밖에,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말입니다..오늘은, 흐흐..오늘은 어쨌거나 말입니다.
저녁에 비둘기 고기를 걸레 빵에 싸서, 버터 바른 효과가 좀 나는
듯 하군요. 어쩐지 혀가 잘 구르지 않습니까? 흐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