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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집트 단신 (2) - 거리 풍경
날짜 : 2001년 07월 19일 (목) 11:42:58 오후
조회 : 3541
대강 감 잡으시겠지만, 이곳 이집트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미
밝혔듯이, 우리 나라보다 약 20년 정도 뒤진 동네로써, 이 20년
이란 기간이 자본을 통계로 나왔다고 본다면, 하여튼 그 정도의
수준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다만 그 뒤진 것이, 사람 사는데 얼마나 실질적으로 좋고, 또한
까놓고 얘기해서, 얼마나 배짱 상하는 것인가 하는 그런 가치관
파악은 내버려둔 채, 그저 당장의 춥고 배고픈 현실만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는 것이고,
그들이 몇 년 전의 우리와 같이, 20년만 따라잡으면 당장에 거기
무신 유토피아라든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그런 문명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열심히 새똥 빠지게 뛰고 들은 있지만,
그러는 사이 저 아름답고 찬란한, 평균 5000년 전의 문명들은
더 빠른 가속도로 망가지고 삭아지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주저
앉은 스핑크스 보수공사를 하는 옆에,
이 세상의 거개를 지배하는 그 자본이라고 하는.. 피라미드보다
더 키 크고 뚱뚱한 괴물이, 산업시설이나 공장 굴뚝으로 검붉은
연기를 꾸역꾸역 내뿜고 있으리라는 예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속 탄다는 얘기인데,
물론 이것도 지금 얘기하면, 그 때의 우리처럼 불순분자 내지
정신나간 사람쯤으로 취급받기 십상이고, 또한 이런 일이란 것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본다면, 어련히 그 때 가면 제 알아서
저절로 문제시 될 것이며,
또한 세월이 더 흘러서 그때 가야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차선의
해결책들을 찾을 테니, 그 골치 아프고 아직은 답 없는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또 그때 가서, 뜯어낸 머리카락 세어보며 곰곰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오늘의 이집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여러 가지 풍물들과
처절하게 아름다운 풍광들, 또는 사는 모습들에서 나오는 기묘한
현상들을 낱낱이 까발리고, 뒤집고 털어서, 뭐가 나오나 샅샅이
뒤져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뭉뚱그려, 이집트를 평가하건대, 이집트에는 모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있다..라고 말씀 드린다면, 이 무신,
달 밝은 보름밤에 귀신 씨나락 까뭉는 소리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그게 사실이니 전들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씀 먼저 올리면서,
첫 번째, 여기는 눈 닦고 돋보기 쓰고 봐도,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리는 차들이 적은 것도 아니고,
지나는 행인들도 뜸한 것은 아니고, 제법 수월찮게 붐빈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어째서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 제게 반문하신다면,
그건 메일 발송이 잘못되었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는데,
왜냐하면, 이 도로의 횡단보도 색칠 공사를 제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_*)
다만 그들의 편에서 이해하자면,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사람 곁을 지나는 시간은 사실.. 순간인데,
일단 한 사람이 차도를 가로질러 간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들은 이 중대한 범법 행위에 대하여, 거기서 케케묵은
육법전서 꺼내보거나, 저녁 밥맛 달아날 죄책감을 느끼거나, 또는
개똥이라도 밟을 용기 하나 없는 궁색한 자세로, 머뭇거리거나
주춤거리다가, 기어코 차를 들이받는(?) 그런 무식한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차들도 절대로 멈칫거리거나 빵빵거리며, 속도를 줄이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은 능숙하게 차가 지나는 순간을 잠시 곁에 서서
기다리다가, 빠른 걸음으로 서너 발짝 옮긴 후, 다음 차가 지나
가기를 반복합니다.
아~ 글쎄, 차는 그렇게 순간적으로 지나고 사람들은 느긋하게
그 복잡한 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건넌다..이 말입니다..이해가
가십니까? 그럼 왜 그렇게 무질서하고 불편하게 사느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불편한 사람은, 그 일을 눈치보는 우리들이나 불편하지,
그들 자신은 전혀 그 일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머뭇거리며 눈치보는 우리를 보고 싱긋이 웃죠..어이구~ 이 촌놈
들아..걸어서 안 건너면 그럼 날아서 건널래?..하는 눈빛으로..
어쨌거나, 여기서 여적지 인명사고 난 것을 목격한 적이 없다면
믿으실래나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 끔찍한 무질서 속에서도, 난
어렴풋한 무언의 질서랄까..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저번 금요일에(이곳 무슬렘의 휴일) 알렉산드리아 시내 중심가
구경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무수한 사람들이 옛날 남대문 시장 같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모두들 대로를 좌우로 무단횡단하고 있는 가운데, 차들은 1940
년대 고물딱지 폭스바겐부터, 방금 공장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시트로앵까지 뒤섞여 흐르고,
장사치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큰 목소리로 호객하며 부르는데,
(여기서 벌써 골이 쑤시기 시작했음) 얼씨구~ 어디에선가, 난데
없이 마이크에 대고 코란을 엄청 데시벨로 왕왕 거리며 낭독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요.
그러고 그만 이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마는, 여기다 또,
관광객을 위한 탈것인, 말이 끄는 손수레가 달가닥거리고 천천히
지나가니, 가로질러 가던 카이로행 기차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잠시 멈춰 서고...
게다가 옆에 자리잡은 콥트교(기독교) 대성당에서 댕그랑댕그랑
종 치는 소리 들리는데, 땟국 줄줄 흐르는 꼬마 녀석들이 뺑~
둘러 다섯 녀석이나 제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핼프 미를 외치는
광경을..한번 상상이나 해 보세요.
제가 거기 있다가 아주 배꼽 잡고 넘어간 일이 하나 있는데,
길이 너무 오랫동안 정체해 있으려니, 대기 중이던 차에서 멋진
카이젤 수염을 기른 이집트 남자가 하나 턱 내리더니 기차 옆에
늠름히 주저앉아(?) 오줌을 누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지간히 뭔 일인가가 급했던 모양인데... 뭐가 보였겠다구요?
흐흐.. 그러나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여기 남자들의 정장은
롱스커트이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 가까이서
엎드려 보지 않는 한 말이죠..(^_*)
그러는 와중에 기차는 덜거덕거리며 천천히 가 버리고, 중간에
그 남자가 조금은 계면쩍은 눈초리로 머리를 긁으며 아직 오줌을
누는 가운데, 양쪽의 모든 차들이 전혀 빵빵거리지 않고 모두들
그가 오줌 다 누고 차 몰고 가기를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는 그
희한한 광경을 과연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그 옆 무슨 공원인가의 잔디밭에 자빠져서, 한 시간 정도 혼자
클클거리며 웃다가, 뜨거운 태양에 목말라서, 이열치열.. 뜨거운
샤이(홍차) 한 잔 놓고 마시다가, 또 웃음이 터져 나와서, 그만
종내는 눈물 콧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었지요.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그런데도 나중에 해질녘
에는, 그 웃음이 슬슬 눈물로 변해서, 그게 왜 그런지 도무지
나도 모를 일이 되어, 그저 바다만 멍~ 하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아~ 그 놈의 뜨거운 하루해는, 또 저 먼 서쪽 지중해로 툭!
(정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져 버리고, 번지는 낙조는 아름답다
..라는 감흥을 애시당초 훠얼씬 지나가서,
머리 속엔 그저 아득하고 맑은 지중해 같은 슬픔만이 투명하게
바닷가에 머물다가, 갈매기 몇 마리 끼룩거리며 깃 들러갈 그 때,
슬픔도 그렇게 어둠 속으로 조용히 날아갔더랬습니다. 지중해가
들려주는, 그 솔바람 소리와 흡사한 잔잔한 파도소리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