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 대교... 8살 난 안토쿠 덴노가 3종 신기인 곡옥, 청동거울, 신검을 품고
이 관문해협에 몸을 던져 짧은 삶을 마감한 곳이다. 헤이지 세력의 밑에 있던
이 안토쿠 덴노가 겐페이 해전에서 헤이지 가문이 겐지 가문에게 패하자 자살
을 한 것이다. 비운의 어린 덴노... 아직도 그의 죽음에 대한 비명 소리가 들리
는 한 것일까?... 관문 대교를 지나가는데 괜히 숙연해 졌다.
관문 대교는 시모노세키(下關)와 기타큐슈(北九州)를 이은 다리이다. 이 다리
밑에는 해저 터널이 뚫려 있는데 보통 터널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경치를 구
경할 겸 관문 대교를 건넜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 다자이후 덴만우... 다자이후 덴만구는 한문으로 그대로
쓰자면 태재부천만궁(太宰府天滿宮)이다. 이 곳은 교토에서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였던 스기와라 미치자네(845-903)를 신으로 모신 곳으로 학문과 문화의
신 스기와라 미치자네(발음 조심!)를 모신 곳이다. 주차장부터 다자이후 덴만
구까지의 짧은 거리는 모두 상점들의 지대이다. 역시 상술에 능한 사람들인지
라 물건 파는 방법도 노련하였다. 이 곳은 일본여행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았
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 때가 한창 대학 입시철이라서 합격을 비는 학부모들이
굉장히 많았다. 다자이후 덴만구의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띄인 것은 바로 천(天)
자 모양의 도리이이다. 이것은 신사의 상징물과도 같은 것으로 새와 하늘이 인
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생각했기 떄문에 이처럼 신사 앞에는 항상 도리이가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오미쿠지를 뽑는 기계와 그것을 매달아 놓은 줄이 눈에 띄
인다. 그리고 에마라는 것도 눈에 띠였다. 에마는 조그마한 나무판자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는 것이다. 그것에 적힌 것을 읽어보니 대다수가 합격
(合格)이라는 글자들이었다. 일본에서의 교육열도 세계에서 알아 준다니까...
이 다자이후 덴만구를 한번 쭉 돌아보니 지붕에 이끼와 같은 것이 많이 붙어있
었다. 아마도 지붕의 양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비가 많
은 지역이라서 지붕의 경사가 인도네시아의 집처럼 매우 가파렀다... 더 안으
로 들어가니 필총(筆塚)이 있었다. 붓의 묘이다....(?) 일본에서는 모든 사물들
이 신이 될 수 있다. 학자들이 쓰다가 다 쓴 붓을 신사에 두어 비석과 함께 놓
은 것이 필총이니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일본의 신은 1억이라고 할까나...^^
필총의 옆에 있는 식당에서 처음으로 일본식 음식을 먹었다. 소감은?... 양이
적고 양념이 달다. 그리고 밥에 자주색 무언가(?)를 뿌려 먹었는데... 우리나라
의 뿌비고(?)라는 것과 비슷하였지만 맛은 별로였다. 그리고 밥맛은 참 좋았다
. 우리나라의 쌀밥과 비슷하였지만 더 찰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에 왔다는
설레임 때문일까? 아니면 여행자로써의 태도였을까? 어쨌든 맛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일본 여행하기가 수월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본인 체질
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다자이후 덴만구를 다 보고 나오는 길의 상점에서 우리나라의 모찌떡과 비슷
한...(모찌떡이 일본 떡인가?) 떡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막 따끈따끈한 모찌
떡의 뒷맛은 굉장히 맛있었다. 그 가계의 할머니는 굉장히 친절하셨다... 내가
진짜로 놀랜 것... 그 할머니는 우리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그리고 엔화
를 한번도 써보지 않은 여행객이라는 것을 알고 계산기에 숫자를 적어서 친절
하게 알려 주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 할머니는 관광객인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고 또 가고 싶다
는 충동이 들게끔... 물론 그 할머니 하나의 인상이 나의 고정관념은 바꿔버렸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본받아야 할 사항이 아닌가 본다...
그리고 그 가계에 왜 사람들이 줄을 섰는지... 그 이유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를 했으리라 믿는다.
이번 편에서는 다자이후 덴만구를 소개 시켜 드렸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셨
는지 모르겠네여...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은 저로써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님들도 이런 좋은 인상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
싶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