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 커뮤니티 > 여행후기)
· 좋은 여행지 소개와 여행을 하고 난 느낌을 적어 주세요 ^^
[후기] <나뭇잎 여행> 일본문화답사기 Day-2
날짜 : 2003년 03월 08일 (토) 4:52:17 오후
조회 : 3742
일본 문화 답사기
Japan Culture Exploring Document
❚ 나뭇잎 여행 - Return to Innocence.
>> Day-2 ꌙ 오하이오 니폰.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기쁨에 옷을 입고 갑판으로 나간다. 일본이다. 여기는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의 외항이다. 배는 21노트의 속도로 계속해서 들어가고 있고, 앞으로 40분 뒤면 하선이란다. 바다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다 쪽은 굉장히 어둡고 금방이라고 비가 내릴 것 같지만 육지 쪽은 서서히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태초의 신비한 광경은 역시 나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빠, 갑판으로 나와 보세요.”
아버지는 멀미를 하셨는지, 어젯밤 속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셨지만 기꺼이 갑판으로 나와 주신다. 나의 마음은 왠지 모를 벅참으로 가득 찬다. 무슨 말이든지 뱉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시모노세키구나.”
“네…… 아빠는 중국 여행도 갔다가 오셨으니까 지금은 그냥 덤덤하시겠네요?”
“나도 일본은 처음이야. 책에서만 봐오던 시모노세키를 직접 보니까 기대 되는구나.”
아버지와 나는 아침 식사를 한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음식이 마지막 한국 음식인 줄 알았더니, 오늘 아침 식사도 한국 음식이라고 했다. 미역국이다. 여전히 김치를 나왔지만 어제 먹었던 그 맛과는 사뭇 다르다. 선내 음식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 때문에 식사 후에도 곧바로 허기가 진다.
갑판 위에 다시 올라가니, 비가 올 듯 말 듯한 시모노세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건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항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안내하기 위한 등대의 불빛만이 내 눈을 자극할 뿐이다. 남해안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매우 낯선 풍경들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파도의 움직임과 아주 흐린 하늘이 풍기는 이미지도……
하선을 한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 가방을 들고 흔들거리는 자그만 다리를 지나서 건물 내로 들어간다. 순간, 이 곳에서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외국인 입국 심사’
여행 첫 날에는 고국에서 취한 향수 때문에 여행 온 나라에서도‘외국이다.’라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도 그런 현상 때문에 좌측통행을 하는 버스의 입구를 찾다가 일순간에 사람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창피하지만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묻어있지 않아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버스에 짐을 싣고, 아버지와 함께 버스 맨 앞좌석에 앉는다. 아버지께서는 저동 고등학교 형․누나들을 챙기느라 마이크를 잡고 놓을 생각을 안 하신다. 가이드 분은 일본 운전기사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본다. 이 차가 우리를 태우고 5박 6일 동안 규슈 지방을 운행할 버스다. 45인승 정도의 버스인데도 겉보기에는 작아 보인다. 실내는 매우 깨끗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낮인데도 실내등을 켜 놓는 것이다. 가이드 분께 여쭤보니, 일본에서는 관광용 버스는 항상 실내등과 조명등을 켜 놔야지 법에 접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찮은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옆의 눈부신 조명등에다가 차창 밖의 햇빛까지 더하니, 눈에 빨리 피로가 오는 것 같다. 그래도 법이라는데 지킬 수밖에……
고속도로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온통 나무 밖에 없는 산들이 빽빽하다. 이런 것을 삼(森)이라고 하나보다. 가끔 산에 공백도 있기는 하지만 산불 방지용이라고 한다. 20~30m의 나무를 모두 깎아서 불이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속도로는 아주 매끈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커브를 돌 때를 제외하면 지금 버스가 달리는 것인지도 못 느낄 정도이다. 고속도로에는 의무적으로 열선을 깔아놓는다고 하는데, 경제 강국의 한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버스는 시모노세키(下關)과 기타큐슈(北九州)를 이은 다리인 관문대교(關問大橋) 밑의 휴게소에 주차한다. 관문대교는 혼슈 섬과 규슈 섬을 잇는 대교로 대부분이 철로 만들어진 것 같다. 상당히 웅장하고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까지 조화를 이뤄서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관문해협에는 전설이 있다. 8살의 안토쿠 덴노가 3종 신기인 곡옥(曲玉), 청동거울, 신검을 품고 이 관문해협에 몸을 던져 짧은 삶을 마감한 곳이다. 헤이지 세력의 밑에 있던 어린 덴노인 이 안토쿠 덴노가 겐페이 전쟁에서 헤이지 가문이 겐지 가문에게 패하자 신기를 뺏기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한 것이다. 이곳 관문해협은 영웅들이 천하―여기서는 일본 전체를 의미한다.―를 통일하고자 할 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관문’인 셈이다.
바다의 파동은 무서울 정도로 웅장하게 들쑥날쑥하지만 하늘은 티 없이 맑다. 그런 풍경이 어색하기만 하다. 좁은 해협에 그 커다란 혼슈 섬과 규슈 섬이 마주 보고 있다. 툭 튀어나온 양 섬의 반도들 사이의 하늘도 제각각이다. 혼슈는 흐린 날씨 때문에 비가 오고 있지만 규슈는 가을 하늘처럼 창창하다.
버스가 출발한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일본의 수많은 영웅들, 그리고 조선의 사절단이 거쳐 갔다는 관문해협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할 곳을 찾았다. 여행 시작부터 나는 설렘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나의 눈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풍경들은 도장 찍히듯이 내 머릿속에 이미지 파일로 저장된다. 다리 위를 지나면서도 나는 출렁거리는 파도에 눈을 맡기고 신기를 찾아본다. 관문대교 밑의 해저 터널로 들어갔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관문해협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 다자이후 덴만구 (太宰府 天滿宮)
“다자이후 덴만구 (태재부 천만궁 : 太宰府 天滿宮)입니다. 이곳은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신으로 모신 곳입니다. 지금은 한창 입시철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일행을 잃지 않게 조심하시고, 관람이 끝나시면 필총 옆의 음식점에 모이시기 바랍니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도리이(鳥居) 쪽으로 들어가면 다자이후 덴만구 건물이 보입니다.”
가이드 분의 설명을 뒤로 한 채로 나와 아버지는 열심히 도리이 쪽으로 걸어간다. 양쪽에는 상점들이 줄을 서 있다. 하지만 높은 건물이 아니라서 자그마한 마을을 연상시킨다. 중앙의 길은 차도가 아니라서 사람들로 빽빽하다. 오늘은 휴일이라서 그런지 다른 입시철보다 사람들이 많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온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도리이 밑에 선다.
도리이는 신사의 상징물과도 같은 것이다. 천(天)자 모양으로 하늘을 찌르며 높이 서 있는 도리이는 새와 하늘이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생각한 일본들의 생각에서 나온 건축물이다. 모든 신사 앞에는 도리이가 있다.
다자이후 덴만구 본 건물 쪽으로 들어가니, 오미쿠지를 뽑는 기계와 그것을 매달아 놓는 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전통은 운세를 점쳐 보는 것과 같은데 나쁜 운이 나오면 계속해서 좋은 운이 나올 때까지 돈을 내고 뽑아야 한다. 나도 아버지와 함께 오미쿠지를 뽑으려고 했지만 관둔다. 비싸다.
이 곳에는 오미쿠지 말고도‘에마’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조그마한 나무판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풍습 중에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마에다가 합격(合格)이라는 두 단어를 써놓는다. 에마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단 줄 사이에 빼곡히 매달려 있다.
밖으로 나온다. 다자이후 덴만구를 한번 쭉 돌아보니, 지붕에 이끼와 같은 것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 양식 때문인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지붕처럼 가파른 지붕이다. 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처럼 생겼다. 중앙에는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사찰의 대웅전처럼 생긴 본 건물이 있었는데 밖에서도 그것이 보일 정도로 지붕이 높다. 가까이는 가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나는 밖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우리 옆에는 우물과 같이 생긴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국자처럼 생긴 나무 그릇을 사용해서 손을 씻는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옛 경복궁에 신하가 들어갈 때에 인공 하천을 지나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사 옆으로 난 운치 있는 길을 걷는다. 양 옆에는 고목들이 있고, 아버지와 나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찍는다. 눈앞에는 돌로 만든 것 같은 붓이 있고, 그 붓은 돌로 만든 기념비 위에 놓여 있다. 필총(筆塚)이다. 옛 일본의 문장가들은 자신이 쓰던 붓이 수명을 다하면 이렇게 기념비적인 무덤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붓이 일종의 신이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을 만든다고 해서 일본에는‘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이 있다고들 한다. 순간, 마침 펜을 가지고 왔는데 다 쓰면 일본에 묻어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 다시 일본을 찾았을 때에 내가 묻어준 펜의 기념비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생각이 썩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서 한동안 질퍽거리는 땅 위에 서 있다가 식당에 들어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형․누나들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식당 2층으로 뛰어올라간다.
선내식이 칼로리가 적은 탓인지 괜스레 배고 고파왔던지라 반찬치고는 너무 단 반찬, 그리고 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쌀밥에 보라색처럼 생긴 향신료까지 모조리 먹어버리면서 일본에서의 첫 일식을 끝내버린다. 외국에 나와서 가장 고생하는 것이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여행에 알맞은 체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일본에서 먹어볼 것은 다 먹어봐야겠다며 행복한 다짐을 해본다.
맛있는 식사를 한 후에 후식으로 단 것이나 상큼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다자이후 덴만구로 들어가는 상점거리에서 일본식 모찌떡을 사 먹는다. 가게 할머니는 친근하게 생기셨는데 모찌떡 4개의 값을 아버지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계산기에 숫자를 써서 알려주신 다음,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서 건네주신다. 평소에도 비교 의식이 많은 터라, 한국과 일본의 친절도를 다시 한 번 비교해본다. 친절에 당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외국인을 감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나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불평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봤던 터라, 일본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따끈따끈한 모찌떡을 먹으면서 아버지와 나의 눈은 부산을 떤다. 다자이후 덴만구에 들어갈 때는 본 건물을 보고 싶은 마음에 도리이도 금방 지나쳐 갔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지만 관람 후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구경하느라 바쁘다. 깨끗한 거리, 우리나라로 치자면 자그마한 인사동을 연상케 하는 풍경, 친절. 게다가 웅성거리지 않는 일본인들 때문에 거리는 한결 가볍고 아늑해 보인다. 이것이 일본의 원동력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버스에 올라타서 남은 모찌떡 한 개를 먹는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찹쌀떡보다 더 쫄깃하고 맛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신다. 나는 두 개 더 샀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아쉽기만 하다. 차창 밖으로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와 자동차. 우리나라의 관광지와 다를 바가 없지만 왠지 차분한 느낌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사람들의 옷을 본다. 모두 꼭 껴입고 다니는 옷차림. 하지만 겨우 영하 2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가이드 분께 여쭤보니, 규슈에서는 지금이 가장 추울 때라고 말씀하신다. 갑자기 임진왜란이 생각나면서 왜 일본이 북쪽 육지에서 조선에게 대패를 했는지 생각한다. 기온 차이 때문일까?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이곳이 일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무서우리만큼 뾰족하게 솟은 산들이며, 한국의 낮은 산들과는 달리 병풍처럼 위엄 있게 서있다. 산지가 많은 일본이기 때문에 산들은 가지를 뻗은 나무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 묘지가 있다. 돈대 위에 자리 잡은 집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묘지는 무덤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자그마한 기념비가 있는 곳인데, 꽃과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인지 묘지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다. 비싼 고속도로 세금 때문이라는데, 가이드 분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나라보다 2~3배 훨씬 더 비싸다고 한다. 편도 1차선 밖에 없는데도 차를 찾아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 후쿠오카와 하카다. ꌙ 규슈 최고의 도시
ꌚ 세이부 가스 박물관, 후쿠오카 타워, 캐널 시티, 구르메의 뉴 프라자 호텔
버스가 후쿠오카에 들어서고 있다. 규슈에는 비가 안 올 듯이 날씨가 맑았는데, 후쿠오카에 들어서자마자 빗발이 날리더니 이제는 차창을 흠뻑 적시도록 내린다. 밖에는 추운지, 차창에 습기가 차서 휴지로 자꾸만 닦아야 된다. 손으로 닦으려고 하니까 차창이 망가질 위험이 있다면서 휴지로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차를 타면 밖을 보지 않고는 못 베기는 나는 휴지를 꽤나 많이 쓴다.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후쿠오카는 하카다이다. 동인 이명인 것이다. 후쿠오카는 1889년에 행정 개편을 할 시에 하카다와 후쿠오카를 합해야 했는데, 후쿠오카로 이름을 하려고 하였지만 도시 명을 하카다로 하자고 고집을 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두 개의 이름을 모두 쓰고 있다고 한다. 행정이나 국제적인 이름은 후쿠오카로 하고, 사회와 문화적인 면의 이름은 하카다로 한단다.
다자이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건물들이 수를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산 쯤 되는 크기라고 하는데, 해안가에는 잘 정돈된 모래사장과 시멘트로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올 뿐 배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도시 안 쪽으로 들어가는 만(灣)에 항구가 있는 것 같다. 차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퇴근 시간이 조금 넘은 듯 하다.
예전에 책에서 후쿠오카 돔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돔 모양으로 생긴 야구장은 처음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거대한 개폐식의 야구장인 후쿠오카 돔은 일본 최초의 개폐식 야구장이고, 세계에서 가장 긴 스포츠 바인‘빅 라이프(The Big Life)’가 있다고 한다. 빅 라이프는 길이가 무려 188m나 된다. 기네스북 감인 것은 분명하다. 후쿠오카 돔 옆에는 시 호크 호텔이 있다. 외국의 유명 인사들은 물론 일본에서 돈 꾀나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후쿠오카에 오면 꼭 머물고 싶어 하는 세계 최고급 호텔이라고 한다. 양 옆에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는 호텔의 외관은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할 뿐이다. 그 멋진 자태에 눈을 빼앗겨 목이 점점 뒤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침을 흘린다. 얼른 닦고 앞을 바라보니, 후쿠오카의 상징인 후쿠오카 타워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도 갈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기대감에 부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할 뿐이다.
세이부 가스 박물관은 말 그대로 가스 박물관이다. 나는 혹시 가스실에 들어가서 병영 체험과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한다.
“가스실에 어떻게 들어가요?”
아버지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고는 문득 내가 방금한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는지를 생각한다. 평소에 걱정을 많이 하던 탓에 터무니없는 질문을 자주 던지던 나라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질문은 던진 것이다. How stupid!
가스실은커녕 나에게 위협을 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여러 가지 전시물 중에 아버지와 나의 눈은 일정한 충격을 주면 규칙적인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는 추의 끝에 연필을 꽂아 멋진 3차원적인 그림을 그려주는 곳에 고정된다.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지 아무리 추를 쳐다봐도 이해는커녕 더 어렵게 머릿속이 꼬여버린다.
가스의 양을 이용해서 온도를 조절하여 불꽃의 색깔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 전시물들을 보면서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색적인 소재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불꽃들의 색깔이 너무나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코스인 레이저 쇼는 무척 화려하면서도 어쩌면 조금 소박한 느낌을 준다. 화합을 주제로 하여 마지막에는 여러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표현하였는데, 쇼를 보는 곳은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도식으로 된 경사진 곳이다. 사각형 모양으로 계속해서 경사진 곳을 따라 올라가며 고도를 바꾸면서 쇼를 구경하면 더욱 더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가스로 하는 것이라서 가스 냄새가 심할 줄 알았지만 그렇게 심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세이부 가스 박물관에서 나오면 바로 길 건너편 공원 끝에 후쿠오카 타워가 보인다. 채 5분도 안 가면 도착하는 후쿠오카 타워는 높이가 238m로 일본 해안가에 만들어진 타워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한다. 명실 공히 후쿠오카의 상징인 이 건축물은 1988년 후쿠오카 시 재정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설립된 것으로 후쿠오카를 배로 하고 이 타워를 돛대로 하여‘안전한 항해’를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미러 세일(Mirror Sail)’이라는 별칭답게 총 8천장의 반투명 거울로 외부가 덮여 있고, 꼭대기에는 관망용 층이 있다고 한다.
관망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일본 여자 안내원은 서툰 영어 발음으로 엘리베이터가 관망용 층에 도착하기 전까지 타워에 대해 설명을 한다. 역시 친절이 몸에 배어있다. 점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사면은 바닥만 빼고는 모두 유리이고, 타워 외부 장식은 반투명 거울로 했기 때문에 현기증이 심하다. 지상에서 200m나 올라가니 어지러울 수밖에…… 맨 위층은 5층이고, 그 아래층이 4층, 그리고 3층까지 있는데, 1층과 3층까지는 모두 텅 빈 공간이다. 기념비적인 건물이라서 그런지 실용성은 크게 떨어져 보인다.
맨 위층에서 아버지와 사진을 찍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후쿠오카 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약간은 흐린 날씨 탓에 전부 다 보이지는 않지만 해안가 쪽의 사각형 모양으로 정돈된 해수욕장의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관망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무단 주차를 한 차가 내려다보이는 그 많고 많은 차 중에서 단 두 대 뿐이라는 것. 방송에서 가끔 보여주는 일본의 교통질서를 실제로 목격하게 되니, ‘역시 일본이다.’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한편으로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분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회의식이 일본보다 20~30년 정도 더 뒤져 있다는 뉴스의 보도가 오보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어제 동양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일본, 후쿠오카에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가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기록들은 꼼꼼히 살펴보는 나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흥분이 되기 시작한다. 일본어로는‘키야나루시테’. 호텔과 메가반들, 테마파크, 갤러리, 비즈니스 센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이사이에는 캐널(Canal), 즉 운하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벤치에서 쉬면서 가끔 하는 이벤트도 구경을 한다. 그래서 이 백화점의 영어식 이름은 바로 운하 도시, 캐널 시티(Canal City)이다. 얼마나 크면 시티라고 할까?
버스가 캐널 시티 옆의 주차장에 정차하고, 나와 아버지는 백화점에 입성한다. 입구부터가 웅장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고개가 뒤로 넘어갈 때까지 들어야 겨우 끝이 보인다. 좌우로는 한도 끝도 없다. 아버지와 내가 들어간 곳은 메가반들. 안내 책자를 보니, 캐널 시티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둥근 원통 모양으로 있는 메가반들에서는 다양한 것을 팔고 있는데, 총 5층으로 이뤄져 있는 우리나라의 이마트와 같은 곳이다. 역시 다양한 것을 팔고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과 매장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형식으로, 1층에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받고 2층에서 물건을 사면 또 영수증을 받는 셈이 된다.
다리가 아프다. 엄청나게 걸어 다녔지만 결국 메가반들과 그 밖으로 보이는 운하 공원을 본 것이 전부다. 시설과 장식도 동양 최고라는 평을 받을 만하게 잘 꾸며지고 계획된 곳인데도 역시 최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몸서리가 처질만큼 무섭게 크다. 우리나라에 캐널 시티가 있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하루 만 보 걷기 운동을 너끈히 소화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버스는 구르메라는 도시를 향해 간다. 구르메(久留米)시까지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하늘은 어둑어둑 해지고, 거리에는 불빛이 빛나고 있지만 차창에는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또 한번 휴지를 쓸까 하다가 자원 낭비일 것 같아 그만 둔다. 나름대로 습기가 낀 차창으로 비춰지는 불빛과 간혹 보이는 풍경들도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구르메일까? 아버지에게 한자를 여쭤보니 구유미(久留米)라고 하신다. 구유미…… 쌀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 아버지에게 다시 여쭤보니, 상관없다고 하신다. 구르메라는 일본어를 한자 발음대로 적은 가차(假借)라고 하신다. 그럼 구르메의 뜻은? 일본어 모르는 아버지와 내가 어떻게 알쏘냐. 가이드 분은 주무신다. 차창 밖만 바라볼 수밖에……
뉴 프라자 호텔에 도착한 버스. 오늘 엄청난 거리를 소화하고도 거뜬하다. 내일도 우리를 어떤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보며 고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있다고, 이왕 만들 것, 공해 없는 것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을 다닐 때는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저 여행의 매력에 푹 들어가서 느긋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잡다한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오늘 갔던 곳과 내일 갈 곳을 생각하면서 헤벌쭉 웃어본다.
아버지와 나는 한 방을 쓰게 되었다. 형들과 친해지지 않은 나는 아버지와 한 방을 쓰기를 원했는데, 소원대로 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 편하고, 맘 놓고 잘 수 있기 때문에 내일이 더 기대되는 것은 당연지사. 시설이 좋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다. 식사를 한다고 해서 얼른 만찬을 하는 강당으로 내려가서 원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맛있는 저녁을 보낸다. 일식이었는데, 얇게 썬 연어를 무지막지하게 먹으면서 생선구이와 각종 달디 단 반찬, 국들을 같이 곁들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식사 후에 아버지와 나는 일본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맘먹고 나간다. 흔히 카지노라고 불리는‘빠찡코’가 2,3개 정도 눈에 들어온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밖에도 그들이 타고 온 수십 대가 주차되어 있다.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것이 다 보이지만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악독한 분위기는 아니다. 청소년은 빠찡코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걷는다.
일본 거리에는 지나치리만큼 많은 자판기들이 있다. 세븐 일레븐의 옆에도 두 개,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너덧 개는 있다. 아버지와 함께 가서 보니, 음료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휴지와 샴페인도 있다. 크기도 각각 달라서 자신이 원하는 양의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너무 비싼 것이 흠이다. 조금 더 걷다보니, 구르메의 커다란 전철역―기차역일 수도 있지만―이 나온다.
구르메의 도심이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정작 고객이 될 사람들은 거리에 별로 없다. 모두 다 집에 들어가서 지내고 있을 시간. 늦은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혹시 야쿠자가 나타나서 나를 보쌈해가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터무니없는 소리.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는 김에 골목길을 다니면서 일본의 주택가를 보려고 들어간다. 깜깜한 주택가는 자그마한 하천 양 옆으로 늘어서 있다. 비가 온 뒤라서 물소리도 나고, 운치 있는 마을이라는 생각을 한다. 골목을 한 코너 돌아들어가니, 괴상망측한 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아버지와 나는 민망해서 다시 돌았던 코너를 돌아 큰길가로 나온다. 일본의 양면을 다 구경한 셈이다.
30분간의 삼보로도 포만감은 풀리지 않았다. 배도 찼겠다 졸린 눈으로 방에 들어가서 오늘의 일정을 적는다. 마침 TV에서는 영화 아나콘다를 해준다. 일본어로 더빙한 것이라서 그런지 영 영화 보는 맛이 없다. 한국에서도 우리말로 더빙된 것이 더 재미없는 것과 같은 이치. 게다가 못 알아듣는 일본어라서 금방 지루해져 버린다. 여행의 피로가 겹치니 만사가 다 귀찮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을 아버지에게 여쭤가면서 노트 한 페이지를 새카맣게 만들어놓는다. 샤워를 하고 누운 이부자리가 너무 푹신푹신해서 마치 내 침대에서 자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국에서의 첫 하루를 보냈다. 너무 많은 것을 구경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지친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 한국에서 중 3 진도를 죽어라 공부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보다는 더 좋은 체험을 했다는 정서적 포만감에 오랜만에 머릿속이 산뜻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가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는 이렇게 좋은 여행을 앞으로 3일은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그‘반일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벌써 내가 달라진 느낌을 받는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소리가 거짓은 아닌 듯싶다.
피로가 몰려오면서도 이것저것 생각을 한다. 집에서 동생 민희와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계실 어머니와 어머니 품에 안겨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강아지 곰순이. 함께 와서 일본 여행을 하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함께 장기간 유럽 여행을 하는 상상까지. 권태로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누리고 또 누리는 특권을 나는 지금 만끽하고 있다. 잠이 오는데,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곳이 여행지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나에게 성적, 친구, 스트레스에 관한 문제는 생각해도 금방 잊혀져 버리는 마음 한 구석의 지우개 가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