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여행
머리말 ◦◦◦◦◦ ❚ 나뭇잎 여행 - Leaf trip
글을 쓰는 사람은 여행을 갔다 오면 자신이 경험한 타지의 신선함을 글로 남기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가끔은 생각이 정리 되지 않아 횡설수설을 늘여놓기 마련이고, 감정을 절제하기 못하고 음악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글을 열어 힘에 부쳐 헤매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된 글로 여행기를 여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글을 쓰게 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나도 며칠간을 글쓰기에 매달리지 못했다.
최근에 다녀온 호주 어학연수를 끝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에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저동 고등학교 형, 누나들과 한번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쓴 [일본 문화 체험기]로 일본 여행 (일본 규슈섬의 후쿠오카, 구마모토, 벳부 등을 여행했다.)을 주관했던 한국 교원 재단 주최 ‘일본 여행 감상문’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경험을 했었다. 하지만 여행기는 나이가 변하면 변할수록 달라져 보이는 법. 지금 그 때의 글을 읽으니 영 내키지 않았다.
호주의 21일 동안의 어학연수 기간, 그리고 일본의 5박 6일 규슈 문화 체험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시 정리하려고 하니, 학생으로서 공부를 해야 마땅한 시기에 약간은 벅찬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의 큰 경험을, 내가 겪었던 감동을 글로 옮기는 것에 약간의 비중을 더 두었다. 어찌 보면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이 있기도 했지만 내 생애에 뒷받침에 되어줄 두 개의 기둥에 대한 기념비적인 책을 펴내지 않으면 나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불만족에 시달려서 일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어렸을 때의 기행문을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야 말이다. 소중한 추억들을 상자 안에 가득히 담아뒀다가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 한번씩 들여다본다면 나는 다시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
외국 여행 후에 약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 기간동안 사람들은 국내에 적응하기 위해서 다시 바쁜 시계추 속으로 몸을 던진다. 권태로운 삶 속에서 한동안 국내의 시간과 공간을 잊고 외국에 나간다면 그것은 그 삶 속에서나마 독자적인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찾은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 여행이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국 여행을 해보지 않고, 견문도 없이 남의 말에 의지한 채 비난하기 바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일부 몰지식한 사람들만이 여행을 돈 주고 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서 있는 돈 없는 돈 펑펑 쓴다. 그런 것들을 뉴스에서는 외화 낭비라고 하지 않는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에서 하나 뿐인 경험.”
글로 표현하면 할수록 형식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언제나‘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위의 언어가 여러분을‘사치스러운’외국 여행으로 유혹하는 문구처럼 보이는지. 물론, 여행을 하면서 온갖 사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산층은 결코 생각할 수도 없는 값비싼 물건들을 사고, 최고급 호텔에다가 비행기도 일등석이다. 여행을 가서도 개인용 고급차도 구입한다. 그들이 얼마나 여행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은‘힘들’수록 오래 남는다. 좋은 관광지와 명승지들을 둘러보면서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발로 돌아다니며 말을 해가면서 몸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곳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에서 하나 뿐인 경험.”
을 하고 온 사람은 다시 그 나라에 가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그 여행을 생애 최고의 경험이라고 하면서 사진과 그 곳에서 적은 정보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은 모임 같은 곳에서 단 시간 내에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기에 이렇게 부족한 글 실력으로나마 일본과 호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기로 한다.
이제 나의 일본, 호주 체험기를 글로 옮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영구적인 존재로 남기려고 한다. 배와 비행기를 타고 그 거대한 자연, 대양에 흘렸을 벅찬 감동과 형언하지 못할 기쁨이 아직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 글을 계속 쓸 것이고, 나뭇잎 여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여행 때에 곁에서 같이 여행을 하시며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고자 노력하셨던 나의 멋쟁이 아버지와 저동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여행사의 가이드 분, 저동 고등학교 선배들, 그리고 일본에서 나에게 큰 친절을 베풀어줬던 다자이후 덴만구의 상점 가게 할머니와 호텔 직원들에게 감사한다. 또한 호주 어학연수에서 11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주셨던‘십대들의 쪽지’발행인 김형모 선생님과 다른 세 분의 선생님들, 9조 조장이었던 나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준 조원들과 영어 수업 선생님이셨던 보니 나이팅게일 선생님, 그리고 호주에서 만났던 추억에 남을 형과 친구, 후배들, 친절한 호주 사람들에게 모든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많은 시간 동안 힘들었었지만 잘 참아준 나에게도 큰 감사를 돌리고 싶다.
2003년 2월 26일 수요일,
장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