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접힌 상아빛 연등(燃燈)이 몇 일째 허공에서 출렁인다. 어떤 손이 저리 정결한 추종을 내 걸었는가.
섬세하게 깎인 꽃의 모서리가 허공에 그린 창백한 치장. 봄비를 들어올리다 한 쪽이 소리 없이 깨진다. 꽃 등이 허물어진 자리에 정처 없이 들어선 봄날. 난생처음 목련나무 아래 만나고 떠난 그날처럼 나무의 발 밑은 적막하다. 같은 자리에 왔다 가는 천년처럼 기나긴 꽃의 생애가 지금 막 골목길에 당도했다. 바위처럼 무거운 걸음이 지구를 슬프게 밟고 와서 봄이 기우는 서편으로 쿵하고 울리며 간다. 이후 그들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생은 다만 담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