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관한 시 모음> 정연복의 '슬픔이 기쁨에게' 외
+ 슬픔이 기쁨에게
기쁨아
환한 기쁨아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아름다운 것아
네가 세상에 존재하여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지
네가 없는 인생살이는
얼마나 삭막하고 쓸쓸하겠니.
하지만 기쁨아
너는 알고 있니?
별이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듯
내가 없으면 너도
빛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너를 잉태하는
어둠의 품이며 자궁이라는 것을.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
기쁨아!
오래오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렴.
+ 슬픔 서시
슬픔은
포도주 같은 것.
긴 세월 익은 포도주가
더 좋듯이
오랜 시간 동안
남몰래 잘 삭혀진 슬픔은
마침내
향기로운 기쁨 되리니.
지금 내 가슴속
슬픔이여
나는 너를
결코 미워하지 않으리.
+ 슬픔의 터널
제아무리 긴 터널도
끝이 있다
빛의 꼬리를 자르고
어둠 속에 잠겼던
터널 저편에
다시금 빛이 있다.
오래오래 가는 슬픔도
분명 끝이 있다
멈출 것 같지 않은
눈물도 어느 틈에 마르며
슬픔 너머에서
기쁨이 손짓한다.
+ 슬픔은 기쁨의 어머니
기쁨이 꽃이면
슬픔은 나무입니다
꽃이 나무를 낳는 게 아니라
나무에서 꽃이 핍니다
꽃은 겨우 한철을 살지만
나무는 오래오래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은 나무를 사랑합니다
꽃은 한동안 눈부시게 예쁘지만
나무는 오래도록 그윽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는 꽃보다 나무를
더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기쁨의 어머니!
어둔 밤을 지나서
밝은 아침이 오듯이
오랜 슬픔 너머
참된 기쁨의 꽃이 핍니다.
+ 쓸쓸한 그대에게
지금 생의 뒤안길을
쓸쓸히 걷고 있는 그대
밀물져 오는 슬픔에
가슴 찢어지게 아파도
부디 슬픔에
맥없이 무너지지는 말라.
지금은 환한 모습으로
웃는 있는 저 작은 꽃 한 송이도
남모를 아픔과
괴로움의 터널을 지나왔을 터
세월 가면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슬픔
희망의 씨앗 되어
이윽고 기쁨의 꽃으로 피어나리.
+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닷가에서
새삼스레 인생살이의
단순한 이치를 새삼스레 배운다.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기쁨과 슬픔도 그러하다는 걸.
지금 슬픔에 젖은 이여
눈물의 홍수에 빠지지 말라
머잖아 반드시
기쁨의 날은 오리니.
지금 기쁨에 겨운 이여
기쁨의 포로가 되지 말라
기쁨의 저편에
슬픔이 기다리고 있으니.
+ 이슬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슬은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한 이슬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햇살 한줄기 와 닿으면
언제 있었냐는 듯
어느새 스러지고 없는
이슬.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한 슬픔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쁨 한줄기 와 닿으면
언제 있었냐는 듯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슬픔.
+ 빨랫줄의 기도
저는 참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공중에 걸린
몇 가닥의 줄일 뿐
제게는 자랑할 게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젖은 빨래를
제 몸에 맘껏 걸어두십시오
따스한 햇살의 은총
보이지 않는 바람의 도움으로
흠뻑 젖은 옷
보송보송 말릴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슬픔과 근심에 젖은 마음
외로움과 괴로움에 젖은 마음
이런 마음도
제가 말릴 수는 없을까요?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