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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시 모음> 정연복의 '눈이 내렸네' 외
날짜
:
2014년 12월 16일 (화) 10:10:37 오후
조회
:
2166
<눈 시 모음> 정연복의 '눈이 내렸네' 외
+ 눈이 내렸네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네
저기 도봉산은 희끗희끗
고운 분칠을 했네
풀들은 소복한
흰 이불 한 채를 얻었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몰래 내린 눈이
세상 풍경을
슬며시 바꾸어놓았네
어제까지의 너저분한 풍경은
말끔히 사라지고
사방팔방 온 세상이
순결의 땅으로 변화했네.
본디 아름다운 평화의 땅에서
아름답게 착하게 살아가라고
하늘로부터
티없이 흰 눈이 내려왔네.
+ 함박눈
하늘에서 펄펄
춤추며 내려오는 함박눈으로
온 세상 만물이
흰 옷 한 벌씩 얻었다.
산과 들
집과 나무들도
제각기 제 몸에 맞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바탕의
함박눈 세례로
더러운 세상이
말끔히 세탁되었다.
순수의 세계로 되돌아간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함박웃음 짓는다.
+ 함박눈 내린 날
죄로 물든 세상이요
죄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늘로부터 한바탕
함박눈이 내려오기만 하면
세상은 다시금 순수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깨끗해진다.
세상에는 아직
구원의 희망이 살아 있고
사람의 마음도
백설같이 순결해질 수 있음을
문득 다시 한번
깨달아 알게 되는
함박눈 내려
참 기분 좋은 오늘.
+ 폭설
폭설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나무도 길도
산도 사람들의 집도
폭설 앞에
속수무책이다.
하늘로부터 가벼이
춤추며 내려와
세상 풍경을
순식간에 바꾸어놓는
송이송이 함박눈의
막무가내의 힘 앞에
겉치레와 미움의 세상은
곧바로 백기를 든다
추한 모습이 많은 내 마음도
순수 앞에 무릎 꿇는다.
+ 내린다는 것
흰 눈이 내려
온 세상이 순결해진다
비가 내려
온 땅의 생명이 자란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눈과 비는
세상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무상(無償)의 은총이다
'내림'은 이렇게
힘있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올림'에 관심이 쏠려 있다
시시때때로 고개를 쳐드는
욕심과 교만에 붙들려
끝없이 높아지려 하고
쉼 없이 올라가려고만 애쓴다
그래서 세상은 살벌하고
사랑과 평화와 안식이 없다.
이제는 겸손히
내려가야 할 때라고
지금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눈이
가만가만 속삭이는
저 준엄한 소리가 들리는가.
+ 사랑 이야기
겨울 찬바람을 알몸으로 버티어 온
나목(裸木)의 가지들과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만나
서로 뜨겁게 보듬어 안는다
처음에는 사르르 녹더니
쌓이고 또 쌓여
이윽고 가지마다 눈꽃이 피네
그래서 가지들은 따뜻하다
허공을 맴돌던 눈송이는
오붓이 제 집을 찾는다
삭풍 한번 몰아치거나
한줌의 햇살이 와 닿으면
덧없이 스러질 사랑인데도
오!
저 여리고 가난한 목숨들의
단단한 포옹
찰나의 눈부신 동거(同居)
+ 함박눈의 기도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러운
눈이 온 세상에
내리는 오늘
나는 문득
사랑의 기도를 올리네.
지상에서
단 한번뿐인
나의 짧은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함박눈같이 풍성하고
넉넉한 사랑을 하게 하소서.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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