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에 관한 시 모음> 정연복의 '나무들의 겨울나기' 외 + 나무들의 겨울나기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단순하다 본질만 꼭 필요한 알맹이만 달랑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가만히 내려놓는 것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 동안 알뜰히도 키웠던 자식같이 정든 이파리들 훌훌 떨쳐버리고 빈가지로 서 있는 것 이로써 새 봄의 새순을 말없이 기약하는 것이다. 나무들의 이 단출한 겨울나기는 뭔가를 끊임없이 쌓고 채우려고 안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참 많은 걸 암시해 준다. + 겨울나무 매서운 한파 몰아쳐 세상이 꽁꽁 얼어붙고 거리의 사람들 종종걸음을 치는데도 빈 가지들뿐인 알몸의 겨울나무들 참 의연한 모습이다 꿈쩍없이 곧게 서 있다.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어차피 견뎌야 할 혹독한 시련이라면 끝내 견디리라 끝끝내 참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 하나로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나무들. + 11월의 나무들 세 계절 동안 무성했던 잎새들 아낌없이 내려놓고 알몸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11월의 나무들은 얼마나 의연한 모습인가 비움으로써 결연히 맞설 태세인 나무들을 겨울 칼바람도 어찌하지는 못하리. 저 나무들이 있어 오고야 말리 겨울 너머 꽃 피는 봄 기어코 오고야 말리. + 겨울나무의 독백 떨칠 것 모두 떨치고 텅 빈 몸으로 우뚝 서리 긴긴 추운 겨울이 혹독한 시련이라 할지라도 불평하지 않으리 끝내 쓰러지지 않으리 매서운 칼바람도 폭설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 안으리. 희망이 있는 고통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는 것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생명은 더욱 깊고 견고해지는 것 연초록 새순이 돋는 그 날을 위해 희망의 불꽃을 피우리. + 겨울나무의 기도 사람들만 기도하는 게 아니다 겨울나무들도 기도한다 성당 담벼락에 가지런히 서 있는 나무들 난방이 들어오는 따뜻한 기도처가 아니라 갑작스런 한파가 들이닥친 추운 세상의 한복판에서 푸른 하늘 우러러 온몸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끝내 인내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굳센 용기 강인한 생명의 힘을 달라고 숨길 것 하나 없는 알몸으로 간절히 드리는 저 겨울나무들의 말없이 정직한 기도.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