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죽음 서시' 외 + 죽음 서시 간밤에 흰 눈 내려 온 세상이 깨끗합니다 온갖 더러움은 사라지고 온 천지가 순수의 세계입니다.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는 그 날 지상에서 내가 지은 모든 추악한 죄 용서 받고 나의 영혼은 순수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 노을 꽃 해질녘 산마루 넘어가는 연분홍 노을 아침에는 어둠 뚫고 치솟은 불덩이더니 하루종일 온 세상 비추는 따스한 빛이더니 어쩌면 하루의 마감이 이다지도 고울 수 있을까. 지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동안 나도 환한 마음의 빛으로 세상의 한 모퉁이를 밝히고 따뜻하게 하다가 노을 꽃 한 송이로 생을 끝마칠 수는 없을까. + 죽음 묵상 꽃이 한철 피었다가 지는 것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입니다. 사람이 한세월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 거역할 수 없는 생명의 순리입니다. 지상에서 그 동안 정들었던 모든 것과의 이별은 가슴 미어지는 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도 꽃같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 지는 꽃 앞에서 한철 눈부시게 피었다 쓸쓸히 지는 꽃 앞에서 옷깃을 여미십시오. 아직은 한창인 그대의 빛나는 생명도 언젠가는 꽃같이 지고 없을 테니까요. + 진다는 것 꽃이 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한번 피면 영영 지지 않는다면 꽃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마 흉물일지 모른다. 살아 있음은 죽음을 배경으로 하는 것 '있음'은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 한철 눈부시게 피었다가 고분고분 질 줄 아는 꽃의 모습은 빼어나게 철학적이다. + 강물 말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가만히 멈추어 있는 듯해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 언젠가는 저 멀리 바다에까지 가 닿을 테지.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을 생각해본다 한순간도 정지함이 없이 흘러 흘러서 가는 시간 속 이 목숨도 머잖아 죽음의 바다에 다다르겠지. 강물은 참 느린 것 같지만 얼마나 빠른가 인생은 퍽 지루한 것 같아도 얼마나 짧은가!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