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시 모음> 목필균의 '2월' 외
+ 2월
저만치
산모퉁이 돌아가는
겨울바람
산비탈 쌓인 눈
스르르 녹아내리고
꽃눈 비비며
산수유 기지개 편다
(목필균·교사 시인)
+ 2월
메마른 발자국에
물이 고인다
단순히 잔설이 떠난 자리를
새순이 차고앉는 건 아니다
은둔의 시간이 되풀이되듯
몽우리 돋는 시절도 다시 돌아온다
게다가 기대에 부푼 뿌리 위에
어찌 절망이 솟아나오랴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2월의 이유
2월의 마지막 날
비 내리네
대지에 촉을 박으며
재촉 재촉
비 내리네
2월이 도망가네
처벅 처벅
도망가네
누구랑 그랬다지
아마 그랬을 거야
2월이 짧은 이유는
도망가다 들켰다지
도망가다 들켜
버들강아지한테 덜컥
물렸다지
누구랑 도망가다
꼬리가 잘렸다지
그랬다지 분명
그랬을 거야
2월이 짧은 이유는
(강효수·시인, 전북 남원 출생)
+ 2월의 시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 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함영숙·재미 시인)
+ 2월의 기다림
내 당신 기다림에 얼음이 되었어도
내 가슴 벌써 분홍꽃이 피었어요
아침 햇살에 작은 가슴 열었더니
소복이 꽃망울이 맺혔는데
당신을 기다리는 내 뜰은
벌써부터 향기로운 봄꽃이에요
봄보다 마음 먼저 실려 오는
2월의 기다림
눈꽃이 흩날리던 긴 겨울도
내 창을 햇살에게 내어주고
하얀 손을 흔들고 떠나가요
잘 가요. 하얀 아가씨
지난밤 아무도 없는 그 뜰에도
여전히 달빛 고운 그리움 내리고
하얗게 쏟아지는 별들의 미소에
간절한 마음 작은 소망 실었더니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봐요
어서 와요. 예쁜 아가씨
(이채·시인)
+ 그렇게 2월은 간다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홍수희·시인)
+ 2월
일년 열두 달 중에
제일 키가 작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
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
슬픔과 고통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
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싹 엎드린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