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시 모음> 정연복의 '산에는 대문이 없다' 외 + 산에는 대문이 없다 산에는 대문이 없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기쁜 사람도 슬프고 외로운 사람도 아무 때고 나의 너른 품속으로 오라고 온 가슴 훨훨 풀어헤치고 사시사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빗장 활짝 열고 기다리는 산 + 산 벗이 좋아 벗 따라 산을 다니다가 그만 나도 덩달아 산이 좋아졌다 이제는 이따금 홀로 찾아도 가는 산 산에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뭇가지들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 들려오면 기분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 엄마 산 제 자신이 하늘의 너른 품에 안겨서일까 산은 뭐든 말없이 품어준다 햇살의 밝음도 그 밝음의 그림자도 높고 가파른 봉우리도 깊숙이 내려앉은 계곡도 산은 아무런 구별 없이 넉넉히 품어준다. 산의 품속에 들면 사람도 덩달아 산을 닮는다 착하고 넓어지는 마음에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릴 게 없다 밝음도 어두움도 높음도 깊음도 서로 겉모습은 달라도 본디 한 뿌리임을 느끼게 된다. 산은 세상에서 제일 큰 품을 가진 어머니 누구라도 그 품속에선 철모르는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위대한 화합과 관용과 용서의 엄마이다. + 도봉산 잔뜩 흐린 날씨 희뿌연 안개에 갇혀 어제는 종일 가물가물하던 도봉산 오늘은 밝은 하늘 아래 더 산뜻한 모습이다. 안개가 아무리 짙은들 산이 어디로 갈까 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있는 거지 거뜬히 안개 헤치고 되살아오는 거지. 아! 저기 저 도봉산 천년 만년도 더 살아 있을 가만히 의연한 산. + 오봉(五峯) 벗과 둘이서 오르는 도봉산 초입 아기 솜털 같은 눈 하나 둘 날리더니 어느새 함박눈 펄펄 내려 온 산이 순백의 별천지 되었네. 낯익은 길을 덮어 그냥 온 사방이 길이어도 좋을 멈춤 없는 폭설 속 앞서간 이들의 희미한 발자국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바로 눈앞에 홀연히 꿈같이 펼쳐진 오봉. 그래, 인생길도 이렇게 걸으면 되리 더러 흐릿해지는 길 비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길도 겁내지 말고 뚜벅뚜벅 걷노라면 사랑 믿음 소망 진실 우정의 다섯 봉우리에 닿을 수 있으리. + 하늘 품속 산 산이 사시사철 편안한 느낌을 주고 그 품이 넓고 너그러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늘 하늘에 푹 잠겨 있으니까 하늘 품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니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평생토록 산은 아무런 걱정 없이 느긋하고 평안한 거다.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