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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생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아내의 입춘' 외
날짜
:
2015년 03월 18일 (수) 7:50:11 오전
조회
:
1686
<아내를 생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아내의 입춘' 외
+ 아내의 입춘
직장에서 허기져서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잠시 TV를 시청하다가
깊은 잠이 든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주다가
눈에 번쩍 띄었네.
평소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아내의 손톱과 발톱마다
곱게 칠해진
연분홍 빛깔 매니큐어.
참 앙증맞게
예쁘기도 하여라
봄의 도래를 알리는
진달래꽃이나 벚꽃 같네.
오늘이 입춘인 줄
아내는 알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제 몸에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
살며시
해두고 싶었나보다.
+ 아내의 발바닥
이불 바깥으로 삐져나온
235밀리의 작은 발
결혼할 때만 해도
보드라운 살갗이었던
아내의 발바닥 곳곳에
제법 굳은살이 박혀 있다.
집에서 꽤 멀리 있는
직장을 날마다 오가느라
많이 걸어다니면서 생긴
고단한 삶의 흔적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그 동안 열심히 뛴
눈물겹게 고마운 아내의
가슴 아린 상처다.
+ 아내의 힘
아내의 눈을 들여다보면
내 삶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 눈은 모든 것 환히 비치는
요술거울 같습니다.
아내의 손을 꼭 쥐면
가슴이 금방 따뜻해집니다
그 손은 퍽 작은데도
온기 가득합니다.
잠자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
한 송이 꽃 같습니다
삶의 연륜 묻어 있는
그윽이 아름다운 들꽃입니다.
아내의 작은 발을 쓰다듬으면
눈물이 핑 듭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발입니다.
아내의 기도 소리가 들리면
믿음이 생깁니다
내 머리로는 만나지 못했던
사랑의 신이 살아 계심을 느낍니다.
+ 북극곰
해마다
겨울이 찾아오면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두터운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외투에 달린
모자까지 푹 뒤집어쓰고
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뭐랄까
꼭 북극곰 같다.
235밀리의 작은 두 발
남들보다 퍽 느린 발걸음으로
추운 공기를 가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도
씩씩한 북극곰이다.
+ 세월의 힘
아내와 결혼한 지
스물 다섯 해 되었다
눈 깜짝할 새
시간이 많이 흐른 거다
세월의 흔적이 아내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미요 목련 같던 아내가
점점 더 들꽃으로 변해간다.
아내는 식성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신혼 초에는 심심한 간을 좋아해
나랑 식성이 안 맞았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나보다도 짠맛을 더 즐긴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에
아내의 식성마저 바뀐 거다.
무서운 세월의 힘!
+ 밤톨 세 알
아내가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늦잠 자는 내 머리맡에
놓고 간 밤톨 세 알
동글동글한 두 개의 밤톨과
반원 모양의 밤톨 하나
참 야무지게 생긴
탱글탱글한 밤톨 셋
개구쟁이 꼬마가
아내에게 선물로 주었단다.
이 세 알 밤톨은
마치 믿음 소망 사랑 같애
단단한 믿음 하나 품고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살라고
하느님이 꼬마 천사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보내신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빛나는 밤 톨 세 알.
+ 늪
1989년 6월 4일
그것을 훔쳐보는 순간
철렁 내려앉은
내 가슴.
그야말로
찰나의 일이었는데
그때 이후 그것은
늪이 되었다
도저히 헤어나지 못할
깊은 수렁 되었다.
바람 같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빠져 있는
아찔하고도 따스한 늪
오! 당신의
맑고 선한 눈동자.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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