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 좀 걸어 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쪽을
자욱히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정해종·시인, 1965-)
+ 4월 - 햇살
어머니, 어머니여
자애로운 어머니여
가지마다 새싹 돋게 하였듯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핏기 잃은 가여운 생명에게도
당신의 젖꼭지 물려주오
(김태인·시인, 1962)
+ 4월의 꽃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르르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
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신달자·시인, 1943-)
+ 4월이 오면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권영상·시인, 1953-)
+ 4월 나무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최연창·시인)
+ 4월이 오면
방황하던 마음 이제 접고
조그만 창을 하나 내겠어요
솔솔 부는 바람에
겨우내 닫혔던 마음 거풍시키며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겠어요
점점 짙어가는 녹음을
눈은 감고 마음속으로만 음미하며
푸른 하늘까지 보려 합니다
초록 잎 틈으로 방긋 웃는 꽃송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얀 백지 위에 멋지게 절창 하렵니다
고운 새 소리 들으며
숲으로 난 오솔길을 호젓하게 걸으며
숲이 내가 되고 내가 숲이 되겠어요
(도지현·시인)
+ 4월
4월은
거칠은 계절풍이 부는 가운데도
굳은 땅을 뚫고 짓누른 돌을 밀쳐 제치며
어린 푸른 싹이 솟구치는 달이다.
사월은
정녕 생명의 외침을
아무도 막아내지 못하는 달이다.
사람 뒤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고……
그 누가 착하고 어진 우리를 억누르고
한 몸의 영화를 그 속절없는 부귀를
누리려고 했던가?
썩은 권력은 언제든지 허물어지고 마는 것을……
한 겨우내 죽은 듯
침묵 속에서 살아온 뭇 생명들
이제 활활이 분화처럼 활활히 솟구치나니
아 진정 4월은
부활의 달.
(박화목·시인, 1923-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