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동심으로 생각하는 신앙> 이경숙의 동시 '나무처럼 살기' 외
+ 나무처럼 살기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이경숙·아동문학가)
+ 하느님에게
때 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세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미술 시간
그림붓이 스쳐간 자리마다
숲이 일어서고 새들이 날고,
곡식이 자라나는 들판이 되고.
내 손에서 그려지는
그림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그려서 만든 것은 아닐까?
색종이를 오려서 붙여 가면
집이 세워지고 새 길이 나고,
젖소들이 풀을 뜯는 풀밭도 되고.
색종이로 꾸며 세운
조그만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세운 것은 아닐까?
(김종상·아동문학가)
+ 하루 붕어빵
붕어빵 굽는 하느님
낮이 노릇노릇 구워지니
뒤집어
밤을 노릇노릇 익혀낸다
민철이 유치원에서 한 입
엄마 에어로빅 장에서 한 입
아빠 회식 자리에서 한 입
맛있는 하루 붕어빵
골고루 나눠 먹는다.
(조하연·아동문학가)
+ 종이꽃의 기도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해 주십시오.
땅 속 깊은 곳에 생각을 뻗치게 해 주십시오.
살은 늘 메마른 채
마음만 살아 있어요.
피가 도는 잎으로
푸른 피가 도는 그런 잎으로
몸을 움직여서
물을 먹고 싶어요.
땅 속에 뿌리를 내리게 해 주십시오.
땅 속 깊이 생각을 뻗치게 해 주십시오.
살아 있는 모든 것과 같이
살아 있는 꽃을 피우고 싶어요.
(전원범·아동문학가)
+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비 오는 날
연잎에
빗물이 고이면
가질 수 없을 만큼
빗물이 고이면
고개 살짝 숙여
또르르 또르르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가질 만큼 담는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 고르는 손
보이니?
소반 위에
쏟아놓은 콩을
할머니가 한 알 두 알
고르시는 거
메주를 맛있게 쑤려면
흠 없는 콩만 골라야 한대
지구 위에
쏟아져 있는
우리도
누, 군, 가,
고르고 있을 것 같지 않니?
(오은영·아동문학가)
+ 더 주고 싶어
퐁퐁
샘솟는
옹달샘마냥
마냥
주고도
모자란 마음.
풋고추를
빨갛게
풋사과를
빨갛게 익혀 놓고도
해님은
서산마루에서
머뭇머뭇
마냥
주고도
더 주고 싶어.
(김재용·아동문학가)
+ 별똥별
하늘 운동장에
야구 경기 열렸다.
관중석엔
총총총 모여든
은하마을 별들
"와 홈런이다"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공 하나
"와와와"
은하마을 꽉 채운
별들의 함성
들리는 듯하더니
어!
서로 무승부였나?
양 팀 모두
눈빛들이 반짝거린다.
(심효숙·아동문학가)
+ 지구도 대답해 주는구나
강가 고운 모래밭에서
발가락 옴지락거려
두더지처럼 파고들었다.
지구가 간지러운지
굼질굼질 움직였다.
아, 내 작은 신호에도
지구는 대답해 주는구나.
그 큰 몸짓에
이 조그마한 발짓
그래도 지구는 대답해 주는구나.
(박행신·아동문학가)
+ 가랑잎의 몸무게
가랑잎의 몸무게를 저울에 달면
'따스함'이라고 씌어진 눈금에
바늘이 머무를 것 같다.
그 따스한 몸무게 아래엔
잠자는 풀벌레 풀벌레 풀벌레……
꿈꾸는 풀씨 풀씨 풀씨……
제 몸을 갉아먹던 벌레까지도
포근히 감싸주는
가랑잎의 몸무게를 저울에 달면
이번엔
'너그러움'이라고 씌어진 눈금에
바늘이 머무를 것 같다.
(신형건·아동문학가)
+ 구석
마당이 환하다.
햇살은 밝게 비치고
바람이 향기롭게 맴돈다.
그런데 저기
마당에서 밀려난 벌레들과
여린 풀들
온갖 잡동사니들은
구석에 모두 모여 있다.
가끔 길 잃은 햇살이
한 줌 빛을 뿌리고 가는
어두운 구석.
누가 알까
마당이 저리도 환한 것은
구석이 있기 때문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서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할아버지, 성당에 가시다
한 번도 가지 않은 성당
딱 한 번 가셨어요.
누워서 가셨어요.
한 번도 듣지 못한 찬송가
딱 한 번 들으셨어요.
한 번도 부르지 않은 하느님
그 품에 안기셨어요.
처음으로 안기셨어요.
"요셉아!" 부르면
누군가 하실 텐데......
주기도문도
못 외실 건데......
그래도 하느님
우리 할아버지
잘 봐 주세요.
(김미혜·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