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삶과 신앙을 배운다> 황지우의 시 '소나무에 대한 예배 외'
+ 소나무에 대한 예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시인)
+ 나무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내 영혼을 심을 수 있다면
나무를 키우는 정성으로
내 영혼을 키울 수 있다면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내 영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내 영혼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나무가 노래하고 사랑하듯이
내 영혼이 노래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나무가 하늘을 향해 감사하며 기도하듯이
내 영혼이 하늘에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나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듯이
모든 것을 내 영혼으로 베풀 수 있다면
오, 하느님!
당신의 사랑으로
내 영혼도 한 그루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작자 미상)
+ 나무들
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굶주린 입으로
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잎새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이면 머리에
방울새 둥지를 얹고
가슴엔 흰눈이 내려앉고
비와 함께 다정하게 살아가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에 의해 쓰여지지만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네
(조이스 킬머·미국 시인, 1886-1918)
+ 나무 나이테
올해도
한 곳에서 한눈팔지 않고
새에게, 다람쥐에게
벌레에게, 개미에게
바람에게, 나그네에게
열심히 베풀며 살았다고
하느님께서 나무에게
작년보다 큰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주셨다
(권창순·아동문학가)
+ 나무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고 높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정완영·시인)
+ 나무들의 아버지
산에 갔더니
나무들이 줄지어 나를 맞았습니다
서어나무 정금나무 층층나무
야광나무......
예쁜 이름들을 목에 걸고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람으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아 보았나요
아그배나무 산뽕나무 물박달나무
호랑버들 왕괴불......
내 이름 지으신 이가 떠올랐습니다
추억 속에도 안 계신
나의 아버지
다릅나무
모감주나무
졸참나무 물푸레나무........
이따금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세상이 어두운 건
준경(俊卿)......처럼 잘 되라고 지어준 이름들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의 아버지는 누구신가요
참 훌륭한 자식들을 두셨습니다
(윤준경·시인)
+ 나무
목불木佛이 되어
연화좌에 모셔진 것도
장승이 되어
동구 밖을 지켜선 것도
나무입니다
죽어서 다시 사는 나무.
책상이 되어
공부를 도와주는 것도
기둥이 되어
추녀를 떠받치는 것도
나무입니다
죽어서 큰일을 하는 나무
(김종상·시인)
+ 나무에 대하여
대추나무를
전지하면서 살펴보니
나무의 가지와 가지들은
결코 서로 다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가 위로
혹은 옆으로 내뻗어가다가
다른 가지와 마주칠 때
반드시 제 몸을 휘어서 감돌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나무들을 보니
나무란 나무는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무의 이치를 알고서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차고 꺾고 심지어는
제 살기 위해서 남까지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 중에서도
풀과 나무를 만지고 살거나
마음속에 풀과 나무를 가꾸고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무의 겸양과
조화로움을 조금은 닮아 있는 것이었다
(이동순·시인)
+ 나무
아름드리 나무이든
몸집이 작은 나무이든
나무는 무엇 하나
움켜쥐지 않는다
바람과 비와 이슬
햇살과 별빛과 달빛
온몸으로
포옹했다가도
찰나에 작별하는
비움의 미학으로 산다
보이지 않는 뿌리 하나
굳게 지키면 그뿐
눈부신 꽃과 잎새들도
때가 되면 모두 떠나보내
한평생
비만증을 모르고
늘 여린 듯 굳건한
생명의 모습이다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