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 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정현종·시인, 1939-)
+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죽어서 흙될 일 생각 말고
살아서 너는 흙으로 살아라
온갖 썩는 것 더러운 것
말없이 품 열고 받아들여
오래 견디는 참 사랑
모든 것 삭이는 세월에 묻었다가
온갖 좋은 것 토해 내어
마침내 열매 맺히도록
다시 말없이 버텨주는 흙으로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오오, 거룩한 흙으로 살아라
(이현주·목사)
+ 한 삽의 흙
밭에 가서 한 삽 깊이 떠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삽날에 발굴된 낯선 흙빛,
오래 묻혀 있던 돌멩이들이 깨어나고
놀라 흩어지는 벌레들과
사금파리와 마른 뿌리들로 이루어진
말의 지층
빛에 마악 깨어난 세계가
하늘을 향해 봉긋하게 엎드려 있다
묵정밭 같은 내 정수리를
누가 저렇게 한 삽 깊이 떠놓고 가버렸으면
그러면 처음 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가슴으로 엎드려 있을 텐데
물기 머금은 말들을 마구 토해낼 텐데
가슴에 오글거리던 벌레들 다 놓아줄 텐데
내 속의 사금파리에 내가 찔려 피 흘릴 텐데
마른 뿌리에 새순을 돋게 할 수는 없어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말을 웅얼거릴 수 있을 텐데
오늘의 경작은
깊이 떠놓은 한 삽의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
(나희덕·시인, 1966-)
+ 흙
풀씨가 들어와 앉으면
풀씨네 집이 되고,
고욤나무 뿌리 내리면
고욤나무네 집이 되고,
땅강아지가 들어가 살면
땅강아지네 집이 되고,
두더지가 파고 들어가면
두더지네 땅굴이 된다.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풀씨를 위해
봄 하늘 구름은
빨리
봄비가 되고 싶다.
땅 속
촉촉이 젖어들고 싶다.
바위 틈
촉촉이 스며들고 싶다.
흙 속
여기저기 묻힌
바윗돌 이 틈 저 틈 끼인
지금 막 눈 뜰
이름 모르는
풀씨를 위해.
(이창건·아동문학가, 1951-)
+ 가물 때 땅은
빗방울을 다 받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방울방울 다 받으려고.
산골에는 도랑을
마을에는 시내를
들에는 강을
넓디넓은 바다까지
다 열어 놓고.
그 큰 땅이 자그마한 빗방울을
다 받으려고
고기들 입까지 오물거리게 한다.
(박두순·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