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 시인의 '꽃잎' 외 + 꽃잎 꽃잎처럼 스러질 목숨이라면 꽃잎처럼 살기로 하자 이 세상 무수히 많은 꽃잎들 중의 이름 없는 하나로 살기로 하자 나는 나의 꽃으로 너는 너의 꽃으로 세상의 어느 모퉁이 한 점 빛이 되기로 하자 이 짧은 목숨 마감하는 그 날까지 꽃잎처럼 순하게 살기로 하자 + 꽃잎 꽃잎은 겨우 한 계절을 살면서도 세상에 죄 지은 일 하나 없는 양 언제 보아도 해맑게 웃는 얼굴이다 잠시 살다가 총총 사라지는 가난한 목숨의 저리도 환한 미소 마음 하나 텅 비워 살면 나의 생에도 꽃잎의 미소가 피려나 + 꽃잎 햇살 밝은 낮이나 달빛 어스름한 밤에도 꽃잎은 늘 웃는 모습이다 찬이슬 내리고 비바람 몰아쳐도 꽃잎은 쉽사리 웃음 거두지 않는다 여린 속살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모진 손길에도 다소곳이 환한 미소를 지을 뿐 꽃잎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 꽃잎 누가 꽃잎을 가볍다 말하는가 실바람에도 솜털처럼 날리는 꽃잎이지만 꽃잎의 보이지 않는 마음은 참 묵직하다 묵묵히 제 철을 기다렸다가 한철 한바탕 피었다가도 때가 되면 아무런 미련 두지 않고 오! 저렇게 사뿐히 떠날 줄 아는 저 꽃잎들의 의연한 모습을 보라 + 꽃잎 꽃잎만큼만 살고 싶어라 솜털처럼 가벼운 나비의 애무에도 견디지 못해 온몸 뒤척이다가도 세찬 소낙비의 앙칼진 강탈에는 그 여린 몸뚱이로 꿋꿋이 버티어 내는 저 꽃잎처럼만 살고 싶어라 가볍게, 하지만 가끔은 무겁게 + 꽃잎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하나 우습게 보지 말아라 사람의 목숨살이도 꽃잎 같은 것 들숨과 날숨의 얇은 경계선에서 세월의 가지에 꽃잎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영원의 한순간을 살다 가는 사람의 목숨이란 너나 할 것 없이 아! 얼마나 가난한 것인가 + 봄날은 간다 꽃잎 바람에 나부끼며 봄날은 간다 님 향한 내 그리움은 끝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득한 세월 너머 아, 나의 그리움에도 끝이 있으면 좋으련만 님 향한 내 그리움에는 종착역이 없다 지는 꽃잎에 님의 모습 아롱지며 봄날은 간다 + 꽃잎 여든 여덟 해의 고단한 세월의 나래를 접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도 꽃잎 같은 잠을 주무시던 어머님 부디 한 말씀만 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소원했지만 어머님은 평소의 고운 모습으로 말씀을 대신하셨다 그 깊은 고요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느새 어머님은 내 맘속에 한 잎 꽃잎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송이송이 피어나는 사랑의 추억들 그 추억의 힘으로 어머님은 영원히 내 안에 살아 계시옵소서 + 꽃잎, 지다 어제는 잔뜩 찌푸린 날씨이더니 당신의 영혼 하늘로 돌아가는 길 환히 밝히려는가 오늘 햇살은 밝기도 하여라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애틋한 정(情)으로 지난 세월 우리 둘 참 좋은 길동무였는데 아, 당신은 한 잎 꽃잎으로 졌네 당신의 작은 빛이고자 지극 정성을 다하였건만 이제는 당신이 나의 빛 되어 주오 무너지는 나의 억장가슴속 고운 빛으로 되살아오는 꽃잎이여 나의 사랑했던 사람이여 * 정연복(鄭然福) : 1957년 서울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