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에 웅크리고 있는
냄새 하나하나 끄집어 내다보면
금세 허무에서 희망의 기분으로 바뀌고
달가닥 달가닥 소리 귀청을 찢는다
그 소리엔 온갖 도시락에 얽힌 애환이
새싹처럼 아장아장 눈 비비며 돋아난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숨결이었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정성이었다
도시락은 까먹는 즐거움이었다
도시락은 추억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반기룡·시인)
+ 슬픈 도시락
춘천시 남면 발산중학교 1학년 1반 류창수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혼자 먹는 도시락,
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볼 때면
그는 씩- 웃는다
웃음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
어머니 없는 그 아이는 자기가 만든 반찬과 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속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도시락 속에 숨어서 울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은 왜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인지?'
깍두기 조각 같은 슬픔이 그의 도시락 속에서
빼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이영춘·교사 시인, 1941-)
+ 도시락
꼬르륵 아이 배고파
점심시간을 알리는
내 몸의 신호음들
그래 조금만 노래해라
기쁘게 해줄 테니
도시락을 여는 순간
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오이무침
성큼 성큼 집어먹으며
엄마의 손길에 눈물이 글썽.
(김세실·아동문학가)
+ 어린 딸에게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시인, 1943-)
+ 도시락 검사
쌀이 남아돌아 고민인
이 풍요의 세월엔
상상도 못할 일이지
모두
책상 위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검사를 받았다
워낙 못 살던 시절이라
쌀이 조금 섞인 꽁보리밥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부잣집 아이들은
쌀밥을 싸 와서
선생님께 혼이 났었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도
맛없다며 햄버거 조각이나
먹는 요즈음 아이들
배고픔이 뭔지도 모르는
행복한 세대들
니들이 도시락 검사를 알아
쌀밥 싸 왔다고 혼나던 시절
상상이나 하겠니.
(우공 이문조·시인)
+ 도시락
학교길 서둘러 대문 앞 나설 때면
어머니가 넣어주시는 네모 도시락
누나부터 동생까지
크기대로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누나는 동그랑땡 나는 계란말이
개구쟁이 동생은 콩장이 가득.
점심시간 되기 전에 궁금해서 또 한번
사~알~짝 열어보니
어머니 정성이 도시락 가득.
즐거운 점심시간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눠먹고 바꿔먹고
튼튼한 우리는 개구쟁이들.
집 가는 길 뛸 때마다 딸그락 떨그럭
같이 가자 빈 도시락 춤추는 소리
어머니 손길이 내닫는 소리.
(강민진)
+ 꽃 도시락
이 여름에는 한데 놓아도
결코 쉬지 않는
나리꽃, 접시꽃, 투구꽃, 달맞이꽃
들녘에 가득한 꽃을 따서
도시락에 담아
당신에게 보내 드리련다
내가 보내준 꽃향기를 맡고
살 떨리도록 피 맺히도록 중독되라고
내가 전해준 꽃밥 먹고
꽃처럼 붉은 마음 피어나라고
꽃보다 고운 눈길 보내달라고
내가 건네 드린 도시락 받아서
배고플 때 한 술 드시면
가슴속에 지녔던 얼음의 꽃이
구토처럼 터져 나오겠고
뱃속에 지녔던 곰팡이 꽃이
밑으로 다 쏟아져 나오겠고
한 술 더 드시면
옥에 갇힌 춘향이가
창살에 걸린 달만 바라보듯이
구름다리에 못 박힌 황진이가
바위에 휘돌아가는 물만 바라보듯이
꽃 도시락 다 드시고
임자 같은 나
한 사람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게 꽃으로 다가와서
온종일 나의 주인이 되시라
살 같은, 피 같은 꽃 드시고
내 속에서 평생 꽃집 짓고 사시라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