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시 모음> 김시종의 '환경 시대' 외 + 환경 시대 지난날에는 하늘을 가리는 공장 굴뚝의 연기가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흑향(黑鄕)을 이상향으로 알고, 농촌은 지탄의 대상이었다. 경제 개발이 잘 되어, 저금 통장에 동그라미가 불어나자, 어느새 동경하던 흑향이 공해의 대명사로 저주를 받게 됐다. 인간의 행복은, 비포장의 굽은 길이 포장된 직선 도로로 되는 것에도, 굽은 도랑이 직강 공사로 반듯한 하천이 되는데 있지 않음을 뒤늦게사 깨달았다. 파란 숲 푸른 하늘 맑은 시냇물 깨끗한 공기가 우리의 참된 터전이자 행복한 삶터. 앞으로 우리의 꿈도 원시인처럼 맑은 물 마시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가슴에 담으며, 활짝 펴고 사는 데 있다. 뉘게나 환경권이 보장되는 환경 시대야말로, 현대인이 동경하는 에덴 동산이다. (김시종·시인, 1942-) + 기다림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아프다 아프다 옛날의 우리는 마냥 사람이었다. 투사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다. 자연이었다. 토끼처럼 풀을 먹어 파란 물든 이빨 물 속의 물고기처럼 미끈했고 투명했고 깨끗했다. 요리는 없어도 맛있는 것 많아 정말 싱싱했고 정말 건강했다. 하늘 아래는 언제나 축복 더불어 자연끼리 노래 불렀다. 농약이 없어 중금속이 없어 없는 것이 많아 없어서 좋았을 태평성대. 단련돼 실한 다리로 달렸고 구릿빛으로 빛나는 단단한 어깨로는 여자를 끌어안고 세상을 끌어안고 그래도 넘치던 그날의 행복. 계속된 행복을 차버리는 욕심과 교만은 독버섯이 되고 일그러진 지혜로 만든 망치가 투정을 부리듯 여기저기서 개척의 투사들의 손에 잡혔다. 상처나기 시작한 땅 나무는 시들고 숲은 병들고 강에서는 고름이 흐르고 견딜 수 없는 지구의 통증. 우리는 아프다 아프다. 죽음보다 더한 신음을 하며 대지 위에서 지는 두 개의 태양을 본다. 불모의 지평선에서 눈이 멀어진다. (강남주·시인, 1939-) + 쓰레기 동(洞) 멀쩡한 옷 산더미로 버려진 쓰레기 동엔 미인들 많이 산다. 매일 새로 옷을 갈아입어도 멋이 나지 않는 신사 숙녀들 많이 산다. 멋쟁이 단벌 신사 나무들 앞에 무릎 꿇어야 할 쓰레기들 많이 산다. 모두 미쳤다. 딸도 엄마도 연산홍도 다 미쳤다. 시도 때도 없이 벙근다. 고추같이 추운 날 얇은 여름 옷 입고 여름 꽃 여름 과일에 묻혀 여름처럼 사는 도적촌 아이들 보면 간수를 넣지 않은 두부처럼 엉긴 데가 없다. 비닐 하우스 과일처럼 맛이 없다. 북한강을 살리자 낙동강을 살리자 소나무를 살리자 두루미를 살리자 살리자 살리자 어딜 가나 살리자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너희나 죽지 마라'. 불쌍한 것들, 밤마다 헛것이 보여 헛소리를 한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선녀 옷자락 잡고 늘어지는 나무꾼들. 선녀는커녕 어린 새끼 버리고 가는 잡년이건만. (김동호·시인, 1934-) + 곤충들의 신음소리 신유항 교수의 저서, 한눈으로 보는 '한국의 곤충'의, 정밀한 사집첩을 들쳐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에 손쉽게 보고 놀던 곤충들이 보이질 않는다 멸종한 것이리 그 많던 곤충들이 앙상하게 남아 추려서 나열되어 있는 사진들, 가련하여라 지구는 이제 살 곳이 못된다 살아 남을 수 있는 땅이 아니다 머지않아 인류도 이렇게 멸망하리니 사랑이다, 그리움이다, 꿈이다,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오, 신이여 천재를 내려주소서 지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당신의 복음을 내려주소서 지금도 곤충들의 신음소리가 애절합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버즘나무 가을, 겨울 지나 봄은 다시 오는 데도 버즘나무는 묵은 열매를 꼭 잡고 서 있다. 오수와 폐유에 절은 땅 어디에도 씨앗이 싹 틔워 살아남을 곳은 없기에 버즘나무는 열매를 놓아줄 수가 없다. 길은 아스팔트로 덮어 차들에게 주고 한 뼘 갓길에 불안하게 서 있는 나무. 이 가엾은 열매를 어찌하나 걱정하며 서울거리에 서있는 늙은 버즘나무 (김종상·시인, 1937-) + 어떤 나무의 분노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의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것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법정·스님, 1932-2010) + 서울의 하늘 서울 사람들 용케도 살아가는 걸 보고 어질어질 막차로 떠난다는 老詩人노시인, 그분은 어디서나 구역질하는 가로수들을 봤겠지. 서울 양반들 딱도 하셔라, 하면서. 복개된 淸溪川청계천을 청계천이라 부르듯이 서울 사람들은 복개된 하늘 역시 하늘이라 부르는군,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로 그분은 말했겠지. 누가 면사포를 벗기듯 저 쌓아 놓은 鉛版연판의 보자기 한 귀를 잡아당겨 벗겨 버린다면 하늘은 예전대로 서울 정수리에 쓰르라미 소리처럼 쏟아질까, 그분은 어느 거리에서 몽유병자같이 중얼거렸겠지. 늘 시냇물 소리로 뼈끝까지 씻어내고 풀밭에서 뒹굴고 노는 바람을 보는 그분의 눈으로 재어 본다면 서울의 하늘 매연 두께는 몇 길이나 될지 자네도 한번 짐작해 보게.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서울 향가(鄕歌) 새벽 어둠을 뚫고 여기저기 몰래 뿜어내는 흰 머리 산발한 연기 재활용품이 비 맞아 썩고 수은 건전지 특수 쓰레기가 소각장에서 폐기되어도 겨울 스모그는 안개의 강으로 스물스물 흐른다 한강 낙동강의 發源地 삼척 오십천에 붉은 철녹이 흘러 뻘밭이 되어도 그 물이 좋다며 오직 그 물뿐이라며 천만이 넘는다는 서울 사람들은 그래도 날마다 즐겁게 마신다 자동차와 인파가 뒤섞여 어깨를 나란히 걷고 성스러운 고독을 느끼며 아프고 어두운 세기말을 사는 서울 시민. (이지영·시인) + 나뭇잎 밥상 꽃잎으로 물 한 잔 뜨고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을 나뭇잎에 올려놓는다 지상에서 가장 가벼운 밥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밥상이다 톱으로 잘라낼 필요도 없고 못 박을 이유도 없으며 들판에 산자락에 지천으로 깔려있어 손만 내밀면 얻을 수 있는 밥상이다 뼈를 잘라내거나 살을 태울 일도 없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을 치며 뉘우치지 않는 밥상이다 밥 먹고 그릇째 던져 놓으면 벌레 먹고 썩어서 나를 살리고 지구를 구하는 밥상이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꽃 한 송이 피우게 하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상심(喪心)한 낮 달의 치마끈을 붙잡고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한다 열꽃이 핀 창백한 낯 빛 부러지고 상한 손 흔들며 새들도 힘겨운 작별인사를 한다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나, 시뻘건 울음을 토하며 일어서는 산 분노하는 저 강물 지친 날개 쉬어갈 한 평 땅도 없다 죽기를 작정한 미욱한 인간들의 가열찬 몸부림 그들도 더 이상 기다릴 여유조차 없다 우주는 지금 부러진 늑골 폐경기(肺經期)에 신음하는 그믐달이다 서둘러 햇살과 바람을 불러들여 열두 폭 병풍(屛風)에서 울고있는 새들이 푸른 창공을 날게 하고 꽃 한 송이 피우게 하라 그리하여 손에 손 꼭 잡고 아름다운 이 강산을 노래하게 하라. (최광림·시인, 2003.1 환경뉴스신문 신년 축시) + 어느 날 풀잎에 베어 풀이 칼을 지니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는 풀이 바람 자를 칼을 지니고 있다 농부들은 제초제 한 번으로 모든 풀들을 제거했다고 생각하지만 풀은, 풀들의 칼은 메뚜기 이빨에 잘리면서도 숨긴 칼의 날을 세우고 어쩌면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황혼을, 서리를 맞을지라도 풀이 지닌 풀잎칼은 푸른 눈을 번득이면서 농부의 팔뚝을 노리고 있다. 어느 방심의 순간 풀잎칼은 농부의 심장에 와 닿을지도 모르는데 농부는 제초제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정윤·시인, 1957-) + 수몰민 들꽃이 지천에 깔렸던 고향엔 수초가 자라 물고기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챙기지 못한 손때 묻은 물건들 낡아진 신발과 무너진 돌담 마을을 휘감아 돌던 실개천 모 대신 논을 점령한 잡초들 콩 깨 고추를 심었던 울안의 텃밭 잊지 못할 삶의 역사가 기록되고 추억의 고향으로 어머니의 품 같은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았다 수면 위로 간간이 비쳐지는 달빛과 햇빛으로 허상이 보이기도 하는 그 추억들을 어디서 찾아보리 사랑하는 나의 고향이여 (김택천·시인, 1967-) + 환경기상도 시험출제 중 삶이 환경을 창조할 수는 없는 걸까 환경 속 인간이란 삶의 명제를 기상도 철학으로 삶을 풀어 본다. 추억과 망각 사이의 삶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전율의 획을 그을 좋은 일은 추억으로 두려움의 지진으로 남을 일은 망각으로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한다.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의 양극화 양가감정이 서로 악수한 날, 갠 날의 일상으로 화해를 하고 폭풍우와 흔들려 울었던 삶, 폭설로 뽀사시 하얀 웃음으로 덮어주며 폭서의 땀 흘린 삶, 혹한의 급냉, 담금질로 연단하는 철학적 나날의 삶임을 각인시킨다 오늘도 환경은 내게 또 다른 시험출제 중이다. (안상인·시인, 충북 옥천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