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에 관한 시 모음> 원성 스님의 '자유인' 외 + 자유인 큰 산은 추위와 더위에 의연하며 바다는 더럽고 맑음을 가리지 않는다. 하늘은 크고 작은 것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대지는 사랑을 나눠줌에 아낌이 없다. 태양은 그림자를 드리워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며 달빛은 어두운 나락에 희망을 건네준다. 구름은 모였다 흩어짐에 걸림이 없고 바람은 형상을 버려 자유롭다. 수행하는 대자연을 닮아 고요하매 스님들은 대자연을 닮아 얽매이지 않는다. (원성·스님, 1973-) + 한 켤레의 고무신 별도 보이지 않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습니다. 작은 흐느낌으로 작은 속삭임으로 바라만 보는 한 켤레의 고무신 내 몸뚱이 하나 의지하고 사는 그것에게 되풀이하는 이야기 "그래,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꾸나." (원성·스님, 1973-) + 노스님의 방석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년 방석의 침묵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퇴설당 앞뜰에 앉아 몽둥이로 방석을 탁, 탁, 두드린다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독한 늙은 부처야! (박규리·시인, 1960-) + 운전하는 스님 - 개미 매연이 쏟아지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던 개미가 승용차를 몰고 가는 스님을 보고 웃는다 '구도求道는 걸어서 얻는 것인데 가다가 길이 없으면 차를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물 위도 걸어가는데' 하며 차를 비켜간다 (이생진·시인, 1929-) + 스님 앞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 산 11번지 백련암 공월 스님 앞 주소는 맞는데 답장이 없다 떠날 때도 그녀는 말이 없더니 (이생진·시인, 1929-) + 뚱뚱한 스님 살찐 스님을 보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산채만 먹고도 저렇게 살이 찌나?" 부처님도 그를 보면 "자네 살 좀 빼게" 하실 거다 (이생진·시인, 1929-) + 거지와 스님 무교동에 들어서면 사람들도 비싼 땅값에 맞추느라 목에 힘을 주고 바삐 움직인다. 총총 걸음들이 흐르는 무교동의 아침길에 온몸으로 여유를 만끽하는 거지가 나타나 가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히죽히죽 웃음을 주건만 사람들은 멀찌감치 피해간다. 가사장삼을 걸친 스님도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며 무교동 사람들과 한무리에 섞이다가 거지 앞에 딱 섰다. 가사장삼자락이 들추어졌다. 지폐 한 장이 스님의 손에서 거지의 손으로 옮겨갔다. 짧은 순간 두 사람은 지폐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받았다. 무교동은 여전히 사람의 물결로 바빴지만 가장 스님다운 스님과 가장 거지다운 거지로 사랑의 기운이 뻗쳐 나갔다. (조성심·시인, 전남 목포 출생) + 스님이 낳은 자식들 스님도 때로는 외롭습니다 스님도 때로는 남자입니다 툭 불거진 산길 따라 울창한 숲을 헤쳐 오를 때 꽃향기가 스님을 유혹했습니다 물 오른 나무에게 키스를 하고 꽃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까맣게 잊었습니다 달콤한 순간의 언어 때문에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혼자서 그 많은 솔방울을 키우고 살이 터지도록 몸은 흔들거려서 솔씨를 몸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어린 싹은 스스로 잎을 틔워서 어엿한 소나무가 되었습니다 소나무는 스님이 낳은 자식들입니다 아버지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자식들은 내세만 기다립니다 (오양심·시인) + 스님과 목사님 스님과 목사님이 선운사 뜰을 정답게 걷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몇 해 전 목사님 따라 선운사에 왔을 때 산사에는 들어서지도 못하고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밤새 기도만 하고 산만 오르다 내려갔다 오늘은 스님과 목사님 따라 선운사 뜰을 거닐며 나는 지은 죄가 많아 내 안에 예수님도 부처님도 온전히 모시지 못한 채 먼발치서 그들의 정겨운 웃음소리만 훔쳐볼 뿐이다 (김경애·시인, 1971-) + 덕진공원에서 스님을 보다 전주시 서남쪽에서 사람을 불러 세우고 있는 덕진공원으로 연꽃 보러 간다 연꽃 속에 숨어 있는 스님 얼굴 보러 간다 꽃잎과 꽃잎으로 이어진 출렁이는 긴 다리 그 다리 밟고 사람들 꽃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스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 여기서도 툭- 저기서도 툭- 툭-툭- 튀어나와 사람 사이에 눕는다 한나절 지나 저녁 노을 기우는데 문득 가슴 한 켠으로 획-스치는 소리 "스님은 네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가섬*의 굵은 목소리가 귀먹고 사는 내 귀청을 모질게 때리고 자나간다 연꽃은 간데 없고 천지가 온통 부처님 얼굴로 가득하다 (이영춘·교사 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가섭: 부처님의 제자 + 중광 스님의 말년 어느 날 내설악 깊은 산중 백담사에 상처 입은 짐승 한 분이 오셨다 빨간 빵떡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땟국물 흐르는 승복에는 코흘리개 손수건 한 장이 달랑 매달려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살이 베였다는 수좌였다가 온몸으로 화폭이고, 물감이었던 화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한 마리 순한 짐승이 된 그 분은 어슬렁어슬렁 경내를 거닐다 반가운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두 손을 높이 들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그리곤 했다 그러면 벌건 대낮에도 순한 짐승 같은 별들이 반짝반짝 뜨곤 하는 것이었다 (이홍섭·시인, 1965-) + 성엽 스님 눈부신 마가렛 꽃길에 치마를 감춘 스님의 고된 발자국이 숨어있다 벚꽃도 지고 민들레도 흰머리 풀은 지 오랜 6월 한나절 작설차 우려내는 스님의 가는 손가락 다 두고 가세요 힘겨운 병고 수많은 번뇌 다 두고 가세요 미륵부처님 앞에 삼배하기도 어설픈 불자 죽비로 내려치지 않고 오고 가며 들린 인연이라도 어깨 눌리는 일들 다 풀고 가라 마음을 치신다 올이 성글은 푸대자루 같은 몸뚱이에서 풀풀풀 날리는 삶의 찌든 먼지들 정갈한 스님의 말씀으로 탈탈 털어낸다 꽃길 밟으며 돌아오는 길 소리 없는 범종의 무게를 법문으로 들으며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목필균·시인) * 성엽 스님 : 충남 아산에 있는 대윤사 주지스님 + 인암 스님 풍경소리 없는 도심지 법당에서 청정한 마음 다듬기 부처님 믿는다는 것은 알기 위한 길 하나하나 깨우쳐 나가는 길 절제의 식탁을 차리는 길 흐려진 눈 크게 뜨고 어리석은 마음 버리고 정신차려 깨달아서 세상 이치 훤하게 몸과 마음 부자 되라고 한 명 불자 앞에서도 두 명 불자 앞에서도 목탁소리 울리고 요령소리 울리고 염불 소리 울리고 짧은 호흡 선 굵은 울림으로 법당 그득 채우는 바위 같은 불심 인암 (목필균·시인) + 삼막사 스님 해는 붉게 익어 속찬 열매로 서산에 덩그러니 매달리고 하늘도 땅도 너그러이 눈감아 속세에 떠도는 허물 땅거미 내리어 덮으실 제 마디마디 육신 꺾어 부처님 전 예불 올리는 삼막사 스님 애간장 녹아 흐르도록 자신을 태워 사르고 또 사르고. 승복 속 하얗게 비운 마른 가슴에 더 씻길 그 무엇 남았길래 무심히도 흐르는 번뇌의 강 저리 깊어서 이 밤 百拜로 건너시려나. 관악산 허리 긴 능선 성불의 너럭바위 이루시어 하늘 가까운 이곳 山頂에 오른 뭇 세인들 발끝에 묻혀온 俗塵 털어 주시길 이 밤 千拜로 비오시려나. 三界의 얽힌 죄업 한줌까지 올올이 풀어내시려 묏봉 피 서리게 토해내는 묏등 뼈 휘도록 깎아내는 저 통성 염불소리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김윤자·시인, 1953-) * 삼막사: 관악산 해발 455.5m에 위치한 절. + 법정 스님 그립습니다. 스님 새와 바람처럼 살다가신 삶이 어떻습니까? 가끔 속물스런 생각으로 어떤 업보를 지녔기에 세상에 와서 하나쯤 소유해도 될 것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는가, 생각했습니다. 남은 사람의 가슴에 메워지지 않는 구멍 하나 내놓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부는 바람에 허전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산골 오두막집 회색적삼 걸치고 오르지 수행하며 청빈과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시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립습니다. 물소리 따라가면 스님 향기 찾을 수 있을까요? 바람소리 따라가면 스님 만나뵐 수 있을까요? (한상숙·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