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키가 겨우 한 자나 될까 하는
돌부처
歷史나 이승의 업이 내내 돌의 무게로
누른다 하더라도
지금은 어느 세상을 꿈꾸는가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무표정으로
참 오랜 설법을 한다
불쑥 세상을 털고 일어서면
그 키가 하늘을 닿을라
잔설께를 비추던 암벽의 그림자가
한 자나 멀리 비킨다
나도 서둘러
마음을 비킨다.
(김영천·시인, 1948-)
+ 눈부처
당신의
물빛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면
당신은 어디에도 없고,
외려 내가 촉촉이 젖은 채
나를 뚫어지게
응시합니다.
있는 중에 없거나
없는 중에 더욱 깊이 있거나
당신은 나에게 가끔씩
참,
불가사의합니다.
(김영천·시인, 1948-)
+ 나무부처
불영사 넘어가는 길에
거대한 굴참나무가 누웠다.
지금도 넘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가
산을 울리는 것 같다.
가지와 뿌리는 벌레들에게 다 주고
반쯤 썩은 몸통에선 다시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까치들이 우짖는 산비탈에는
그 아들 손자의 손자뻘 되는
굴참나무들이 관세음보살처럼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의 고행 끝에
흙으로 돌아간 굴참나무,
이젠 나무부처가 되어
극락정토에 누웠다.
(권달웅·시인, 1944-)
+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임영석·시조시인, 1961-)
+ 부처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오규원·시인, 1941-2007)
+ 소년 부처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정호승·시인, 1950-)
+ 부처꽃
성전암으로 올라가는
옥같이 푸른 물에
사월 초파일 煙燈에 타오르는 촛불처럼
부처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바람에 하늘거린다
참새가 날아가며 머리에 똥을 싸도
천년을 빙그레 미소만 짖는
觀音菩薩의 인자한 미소처럼 편안하고 소박하게
매미들 우는 소리 들으며
참선하는 스님인가
붉은 꽃대를 다소곳 숙여
조용히 합장한다
산을 오르는 자는 무엇을 채우려 올라가는지
무엇을 비우고 떠나는지 알 필요 없이
늘 제 자리에 만족하며
때 되면 꽃 피우다 씨 뿌리고 스러져
물 같은 삶을 제시해주는
살아있는 부처이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부처꽃
몇 겁의 연緣을 살다
탈속하고
부처,,, 꽃
청 빛, 하늘가 연못가 아니하고
덤불 속 편안도 하시구나
칠 선녀 고이 보내
연못 위 선(善)으로 앉히시고
무지렁이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풀숲
눈에도 잘 뵈지 않는 밥풀 만한 보랏빛
꽃, 부처라 한다
바람이 마구 흔들어 댄다
역시 탈속일까
부처의 미소
참 평안도 하시다.
(최영희·시인)
+ 돌부처
비 바람 눈 서리
얼굴 때려도
해(日) 오고
달(月) 갈 때
마음 씻어
연화반석 위에 핀
혜안(慧眼)의 미소
부귀도
권세도
구름이라 이르네.
(이춘우·시인, 경북 영덕 출생)
+ 돌부처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페놀 오염이 아니다.
인신매매가 아니다.
金 교수가 엄숙하게 웃는 일간신문이 아니다.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돌 속에 갇힌 내 우울이다.
입, 코, 귀 다 잘려나간
가슴 없는 눈,
눈 없는 가슴,
저 꼴불견의 내 이데올로기다.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이런 나를 등쳐먹는
나의 식도다.
(김영호·시인, 충북 청원 출생)
+ 돌부처의 미소
봄인 듯 여름이고 가을인 듯 겨울이니
돌고 도는 세월의 수레바퀴
오너라 가거라 말없어도
가는 듯 오고 오는 듯 가는 사람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풍화되지 않는 불심 응고시킨 육신
아는 듯 모르고 모르는 듯 아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세상사
말없이 미소짓는 천년고찰 돌부처
(목필균·시인)
+ 돌부처의 미소-용화사 미륵존불
부안 바다에 정박했던 바람이
미륵골 대숲에서 수런거리며
천수경을 읊는다
아들 점지해주던 영험도
입으로 지은 허물 닦아주던
진언도 생매장되어
안으로만 내공을 쌓았는지
코가 떨어져 나가도
귓불이 잘려 나가도
기척도 없다
땅 속에 묻히고도
다시 세상 빛을 봐도
묵언수행
오가는 사람 덧없어
……. …….
천이백 년 고행 길
안으로 삼켜지는 목탁소리
풍화되지 않은
돌부처의 미소만이
한겨울 눈부신 햇살로
돋아난다
(목필균·시인)
+ 무위사 돌부처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헤진 옷 주름진 얼굴이지만
여기 와서 뵈니 참 보기 좋네요
낮이면 산바람도 쐬고
밤이면 월출산 달구경도 하세요
지친 어머니 얼굴 여기서 다시 뵈니
눈물보다 먼저 반가움이 앞서네요
가부좌로 앉아 계신 우리 어머니
사십년 행상길에 갈라진 발바닥
바셀린 바르고 비닐로 동여매어
양말도 제대로 못 신고
늘 누비보선에 절뚝이시던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말씀 없으셔도 어머니 살아온 세월
흰머리 주름진 얼굴에 가득하네요
금난가사 입지 않고 후광이 없어도
어머니 모습 참 거룩하네요
(김경윤·시인, 전남 해남 출생)
+ 부처님 사시는 곳
풍경소리 드리운
부처님 사시는 곳
조계사 주변에는
전투경찰이
왜
보초를 서야 하나
젊음이
해탈문 밖에서
타는 봄날
오늘도
초병의 눈초리에
한 여자가
가슴과 다리를 수색당하고
부처님 사시는
뜨락으로
쫓기듯 종종 걸음...
(한문수·시인, 1960-)
+ 부처님 만나는 나무
두 팔 벌린 나무 그늘 아래
늙은 아낙네
잘 익은 열매 줍고 있네
내 다만 처음 보는 씨앗
작은 잎사귀조차 신비하여
아하! 아하! 연발케 하는
염주나무 보리수
석가모니 열반의 세계로
부처님 얼굴 같은 나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최상고·시인)
+ 앉은뱅이 부처꽃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산중 절에 가서
쇠의 몸에 번쩍 번쩍 금옷 입힌
부처를 찾지 마라
길가 교회에 가서
흙으로 빚고 돌로 조각해 놓은
예수를 찾지 마라
살과 피와 뼈 만들어 주고
숨쉬게 해준
네 아버지 어머니가 부처다
무덥고 추운 세상
두 어깨를 펼치고
이파리 무성하게 드리워
그늘 짙게 만든 느티나무 같은
장작이 되어 뜨겁게 불타오른
아버지가 부처다 예수다
연약한 장미꽃 한 송이로 피어
일편단심 붉은 마음 던지며
쓰레기같이 더러운 세상
향기 나게 만드신
어머니가 보살이다 마리아다
이 땅에서 미륵을 찾지 마라
저 하늘에서 천사를 찾지 마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로부터
낳은 네가 낳은
너의 아들과 딸이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다
악마와 싸워 이길 천사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로부터
부처를 찾아라 예수를 찾아라
세상의 모든 자식으로부터
미륵을 찾아라 천사를 찾아라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개부처손
개두릅 개복숭아 개살구 개머루 개꿈 개떡 같은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닌 함부로 된 걸 말하는 개, 라는 접두사가
부처님 손바닥처럼 생긴 풀 앞에 그것도 좀 모자란 듯한 잘디잔 손바닥
앞에 이름 붙어
개부처손이라 했다
납작한 바위를 감싸며 깊은 그늘 만들고 있는
고작 엄지손톱만한 초록빛 개부처손 앞에서 서성거린다
저잣거리의 좀 덜된 무명씨 같은 이도 부처 될 만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막된 人事보다 개가 부처를 이루는 게 도리라는 것도 같고
개나 소나 팽나무나 바위나 그저 데면데면하게 바라보던 것들 중에
이미 부처를 이룬 것들 수두룩할 것 같고
(김선우·시인, 1970-)
+ 부처바위
경주 남산 스님 한 분 바위 속에 갇혀 있다. 반야나무 망고나무 잎 아래 결가부좌 튼 채 안으로 금이 가고 금길 따라 빗물이 흘러드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 죽어서 바위는 모래알을 남기고 고승은 사리알을 남긴다는데…… 천년 비바람에 가사 옷주름이 지워지고 얼굴선이 희미해지면서 둘은 이제 어지간히 닮아도 보인다. 그러나 바위가 사리알이 되기까지, 스님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크낙한 저 침묵은 또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선정에 든 바위에서 흐르는 눈물, 모래 쓸리는 소리가 아릿하다.
(손택수·시인,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