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특집 시 모음> 이재무의 '비, 바람, 눈, 별빛, 달빛이 되어' 외
+ 비, 바람, 눈, 별빛, 달빛이 되어
비가 되어 당신의 이불 적시고 싶었어요
바람이 되어 당신의 창문 두드리고 싶었어요
눈이 되어 당신의 뜰에 내리고 싶었어요
별빛이 되어 당신의 눈결에 뜨고 싶었어요
달빛이 되어 당신의 밤길 밝히고 싶었어요
(이재무·시인, 1958-)
+ 당신의 꽃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 강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직 전하지 못한 편지가 있습니다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를 저는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박남희·시인, 1956-)
+ 사랑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정호승·시인, 1950-)
+ 복종
밥을 먹다가
바로 앞 당신 생각으로
밥알 몇 개를 흘렸답니다
왜 흘려요?
당신이 내게 물었지요
난 속으로 가만히 대답했답니다
당신이 주워 먹으라 하신다면 얼른
주워 먹으려구요.
(곽재구·시인, 1954-)
+ 송가
그대가
눈을 사르르 뜨면
꽃잎 피어나듯이
새 하늘이 열리고
그대가
눈물을 흘리면
땅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맛보고
그대가
나만 보고 있을 때
햇빛이 쨍쨍 반짝이며
얼굴에는 절로 볼우물이 생겨요
만일에도
그대가 안 계신다면
아, 어둠만이고
나에겐 천지가 없어요.
(박재삼·시인, 1933-1997)
+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 세상 다 사라져도
이 세상 다 준다 하여도
그대 하나만을 사랑합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함께 나눌 수 있는 꿈을 위해
내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대 고운 모습
하나만을 사랑합니다
비록 몸은 가난하여도
마음은 부자입니다
비록 내 생활은 초라하여도
내 가슴은 따뜻합니다
그대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그 하나만으로
나는 정녕 그대를 사랑합니다
내 혼신을 다해
그대 하나만을 사랑합니다
(심성보·시인)
+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이라면
그 중 하나는
나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이라면
그 중 하나는
나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뿐이라도
그는 바로 나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까닭일 겁니다
(문은희·시인)
+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사랑한다 말하기도 버거워
입을 굳게 닫을수록
내 마음은 더욱 또렷하게
당신을 사랑한다며
쿵쿵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아요
아! 나는 숨길 수 없습니다
당신을 향한 눈빛과 미소
그리고
불타는 이 가슴을 숨길 길이 없네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밤하늘에 뜨는 별과 달
낮이면 더욱 선명한 태양과 구름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겁니다
세상이 다 안다 하여도
당신에게 말하고픈 가장 소중한
나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유찬·시인, 1967-)
+ 너에게
왜 그대인지
왜 그대여야만 하는지
이 세상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그대여야만 하는 이유가 내겐 있습니다
한 순간, 한 호흡 사이에도
언제나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허공의 옆구리에 걸린 잎사귀 하나가
수백 번 몸 뒤척이는 그 순간에도
아침 햇살의 이른 방문에
부산을 떨며 떠나는 하루살이의 뒷모습에도
저미는 내 가슴을 뚫고 자라나는
선인장의 가시 끝자락에도
그대가 오도카니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운명 같은 그대여
죽어서도 다시 살아도 지울 수 없는 사람아
그대가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김현태·시인, 1972-)
+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그대 갈매기 되어 날아가면
나 잔잔한 바다 되어 함께 가고
그대 비를 맞으며 걸어가면
나 그대 머리 위 천막 되어 누우리라
그대 지쳐 쓰러지면
나 바람 되어 그대 이마 위 땀 식혀 주고
여름 밤 그대 잠 못 이뤄 뒤척이면
방충망 되어 그대 지켜 주리라
눈이 와서 그대 좋아라 소리치면
난 녹지 않는 눈 되어 그대 어깨 위에 앉고
낙엽 떨어지는 날 그대 낙엽 주우면
난 그 낙엽 되어 그대 책 안에 갇히리라
그렇게 언제나 그대 있는 곳에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여경희·시인, 1972-)
+ 긴급체포
당신을
체포합니다.
당신은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온통 내 마음을
빼앗아갔고
당신은
허락 없이
내 마음속 깊이
무단 침입하였으며
당신이
내게 남겨준
사랑의 편린으로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였고
당신이
그리워
긴 밤을 꼬박 새운
내 몸을 상해하였으며
당신은
타인 앞에서
당당하던 내 위상을
초라하게 추락시켰고
당신은
혼미케 하는 미소로
당신 없이는 살아갈 의미 없는
평생 헤어날수 없는 중독을 시켰으며
결정적으로
당신의 심연한 눈동자에
나를 익사시킨 살인죄로
당신을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긴급
체포합니다.
(공석진·시인)
+ 반달
오늘은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거리의 연인들의
행복한 웃음 사이로
당신 모습 맘속에 그리며
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왠지 외로운 모습의
반달 하나
나도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저렇게 홀로 쓸쓸하였을까
너의 반달과 나의 반달이
다정히 기대어
우리의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두둥실 두리둥실
명랑한 보름달로 살고 싶어라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