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사를 낳았다
배고프다고 울고
잠이 온다고 울고
안아달라고 우는
천사, 배부르면 행복하고
안아주면 그게 행복의 다인
천사, 두 눈을 말똥말똥
아무 생각하지 않는
천사
누워있는 이불이 새것이건 아니건
이불을 펼쳐놓은 방이 넓건 좁건
방을 담은 집이 크건 작건
아무것도 탓할 줄 모르는
천사
내 속에서 천사가 나왔다
내게 남은 것은 시커멓게 가라앉은 악의 찌끄러기뿐이다.
(이선영·시인, 1964-)
+ 딸에게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김용화·시인, 1971-)
+ 어머니의 편지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시인, 1947-)
+ 아들에게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문정희·시인, 1947-)
+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그리고 판자에는 구멍이 났지.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았다.
맨바닥이었어.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도 도달하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까지 올라갔지.
그러니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약간 힘든 것일 뿐이니까.
너도 곧 그걸 알게 될 테니까.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나도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으니까.
난 아직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랭스톤 휴즈)
+ 진경산수(眞景山水)
자식이라는 게
젖을 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새끼라는 게 제 발로 걸어
집을 나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시도 때도 없이
- 아버지 돈
그래서 돈만 부쳐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글쎄
어느 날 훌쩍 아내가 집을 나서며
- 저기 미역국 끓여 놓았어요
- 나 아들에게 갔다 오겠어요
나는 괜히 눈물이 났다
이제는 내 아내까지 넘보다니
- 이노무 자슥.
(성선경·시인)
+ 자녀를 위한 기도
나를 고쳐 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래서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가게 해 주소서.
(작자 미상)
+ 아버지의 기도
내게 이런 자녀를 주소서
약할 때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감을 잃지 않는 대담함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주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허락하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소서.
깨끗한 마음과 높은 목표를 인생을 살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소서.
또한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 있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훗날에 아비 된 저도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더글라스 맥아더·미국 군인, 1880-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