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희미한 고향집과 어머니,
그 개구쟁이들,
그들을 도로 돌려주소서.
조그만 카드 속에 정성을 담던
그 소년들도 돌려주소서.
첫아이 보았을 때 기도 드리던
그 아빠와 엄마도 돌려주소서.
아이들과 손잡고 이야기하며
성당을 찾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한번 더 그 종소리 듣게 하시고
눈 내리는 아침을 걷게 하소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소서
(김시태·시인, 1940-)
+ 성당의 종소리
새벽 여섯 시만 되면 종소리 들린다.
오래 전엔 삼십 리 밖에까지 들렸다는 종소리가
성당을 이웃하고 살아도 귀기울여야만 들린다
문을 열고 나서면
자동차 소음에 우리의 귀는 오히려 체념
밤이 늦어도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하늘 맑아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세상의 끝에 서 있나 보다
나무 그늘에는 녹슨 종 하나
누구를 오래 기다리는지
거칠고 푸석한 낡은 몸뚱이
저 홀로 너무 적막하였네
뾰족 지붕 위에는
텅 비어 눈부신 종 탑이 있어
내 눈길 오르다간 자꾸 미끄러지는데
이웃한 산사에서 울려오던 종소리
아하 미사 종소리
수녀님도 서둘러 성당으로 오르고
늙은 백구도 깨어나 미사 드리는 시간
마당엔 지금 막 피어난 들꽃 한 송이
부시시 기지개 켜고 있었네
(홍수희·시인)
+ 성당 부근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성당 가까이 살던 그해 겨울
지붕들이 낮게 엎드려
소리 없이 젖어 잠들고
그런 밤에 내려온 별들은
읽다만 성경 구절을
성에 낀 창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눈사람이 지키는 골목길을 질러
상한 바람이 잉잉 울고 간 슬픔을
연줄 걸린 전봇대가 함께 울고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종소리가 은은한 향기로 울려퍼지면
저녁미사를 보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긴 그림자도 젖어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장작더미 위로
쌓이던 달빛도 지고 사랑하라
사랑하라며 창가에 흔들리던 촛불도 꺼진 밤
그레고리오 성가의 앉은 음계를 밟고
양떼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성당 뜨락엔 마리아상 홀로 남아
산수유 열매 같은 알전구 불빛을 따 담고 있었다.
(정세기·시인, 1961-2006)
+ 작은 성당 -징검다리 1
이름 모를 풀꽃들 듬뿍듬뿍 피어 있는
언덕, 그 풀꽃 흔드는
작은 바람 만나면서
오솔길 한참 걸어서 올라가면 거기
관목들 사이 반쯤 문 열고 서 있는
목조(木造) 성당
의미를 알 수 없는 라틴어와 그레고리 성가 속에는
하느님보다 먼저 다가오는
미지의 지평이 있었다.
작은 마을을 울리고 파장을 이루면서
어린 혼을 불러내던
서러움 같기도 기쁨 같기도 한 종소리,
때때로 비 내리고
때때로 안개 짙게 깔려
젖은 꽃덤불 사이 알 수 없는 길 찾아
이리저리 헤매어 다녔다
가보지 않은 길 헤치면서
저물녘 고갯길을 넘나들었다.
외방인(外邦人) 같은 늙은 수녀의 손에 이끌려
매번 다시 돌아오는 성당 문 앞에는
해독할 수 없는 천상(天上)의 언어가
아득히 십자가로 서 있고 나는
자주 어지럼증으로
발목이 휘청거렸다.
(강계순·시인, 1937-)
+ 자비의 품안에서
어쩌다 가보는 산골성당
낯선 할머니들 틈에
개밥에 도토리로 끼어 있을 때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왜 떠오르나
패륜으로 내놓은 옛시인 베를렌
제 어미의 팔을 비틀고
아내의 머리에 불도 지르고
술집과 구호병원 떠돌다
아내 아닌 여자의 거처에서 숨진다
종부성사도 무엇도 다 놓친
정월의 차가운 타일바닥
신부가 와보고는 그러나 말한다
망자는 가톨릭이라고
다시 말해 구원받았다고
먼 나라 법국에서 날아온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듣던 중 반가운 한 소식이구나
누구라도 그 시인보다
한술 더 뜨기는 어려우니
(심호택·시인, 1947-2010)
+ 대성당을 바라보며 - 쾰른
내가 세들어 살던 집 라흐니히트 부인 말에 의하면 대성당은
이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습의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해.
그 시절 건물들 중 하늘에서 보기에 대성당만큼 이 도시의 위치를 확인하기 수월한 것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대성당만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전될 수 있었다는 거지.
하! 이런 게 바로 인생의 겁나는 아이러니 아니겠어?
가장 눈에 잘 띄어 공격 표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주위를 비추는 등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무사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 말이야.
왜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잖아,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폭풍의 세월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가면서
무슨 거창한 근신이나 하고 있는 양 착각하고 있는 당신,
폭격 조심하라구!
(이응준·시인, 1970-)
+ 聖堂 비둘기
로스앤젤레스 시내중심 메인街 聖비비앤나 성당에서 정오의 종이 울린다. 종탑은 당당히 서있고 자비로운 종소리 울리는데 슬픈 날개를 접고 고개를 떨군 비둘기 한 마리. 성당의 철책 너머 인도를 가득 메운 헐벗고 집 없는 스키드 로우(Homeless Skid Row)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무엇 하나 가진 것 없이 허공에 풀린 시선마저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알몸들의 끝없는 방황을 바라본다. (아, 저들은 이 험한 세상, 인정 없는 거리를 얼마나 멀리서부터 걸어왔을까?)
다 닳아 아픈 다리를 이끌고 유니언 밋션 구호소(Union Mission Rescue)로 향하는 아직도 살아있는 자들이여, 성당의 철책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리고 성당은 바로 이웃 구호소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보통 외면이 아니고 성스러운 교회의 무관심. 일요일마다 여기 어떤지 아세요? 잘 차려입은 교인들이 순례자의 행렬지어 밀려오는 시각이면 스키드 로우사람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자기들의 땅마저 그들에게 비켜주어야 해요. 한 마디로 말해서 건성으로 자비만 흘리는 세상, 거짓 순례자들이 많아요! 이제 나는 하늘을 뚫고 날아가서 피흘리며 하느님께 그들을 고발하고 싶어요. 한참 분개한 후 고개를 들고 날개를 벌려 아픈 영혼들의 머리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비둘기.
(이풍호·재미 시인, 충남 예산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