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시 모음> 이영춘의 '포장마차 어머니' 외 + 포장마차 어머니 어머니는 새벽 세 시에야 돌아오고 우리들은 늘 어머니 손길 대신 조그만 뜰에 내려와 싸늘하게 졸고 있는 별들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샜다 우리들의 밥상에는 늘 밥 대신 라면이나 국수올들이 어머니 사랑처럼 줄지어 오르고, 그러나 끝끝내 우리들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새벽 세 시에야 돌아와 누운 어머니의 긴 앓음 소리에 우리가 먹은 국수올들이 새삼 어머니의 목숨이란 것을 알았다 (이영춘·교사 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포장마차 온 세상이 찬바람에 싸여 꽁꽁 얼어붙고 있지만 포장을 살짝 걷고 들어오세요 따뜻함이 있어요!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포장마차 깊은 밤에 졸던 신호등도 꺼지고 삼켜야 할 고통 정지할 수 없는 운명 흔들거리는 시간 속에 땡전 한 닢 주워 거친 삶의 복판에서 응달진 거리 이리저리 헤매다 살그머니 찾아드는 작지만 큰 내일을 위한 여백의 장소. (노태웅·시인) + 포장마차 여기 허물만 남아 저무는 시간이다 위에서 아래에서 쌓이는 불만을 풀어놓는 쏟아 붓는 수액은 아린 속을 태운다 그대 여기 아픔을 털어놓는 꿈길이다 혼자이거나, 둘, 셋 넷, 다섯일지라도 나누지 못했던 꿈을 섞어 태운다. 날려보낸다. 여기 이 자리에 몇 개의 밝은 전등이 어둠을 지우며 졸고 있다 졸리운 삶이 걸려 있다 바람 불어 삶을 흔든다 엷은 천막이 겨우 버티고 가늘은 삶을 지킨다 고달픈 새벽을 맞는다. (도경원·시인, 1951-) + 포장마차 퇴근길 친구들과 딱 한잔만 하자며 들어서는 포장마차 누구를 기다리고 누구를 만났기에 반기는 웃음소리 그렇게도 좋을까 한잔을 권하고 또 한잔 받고서 시간을 잊어버린 채 인생사 이야기 끝이 없구나 연인들 술잔은 사랑으로 가득 넘치고 친구들 술잔엔 변치 않는 우정으로 슬픈 이에겐 마음 달래주는 한잔 술로 지나간 시간들 속에 잊을 수 없는 많고 많은 추억들이 담겨있는 곳이기에 누구나 더러는 옛날이 그리워 부담 없이 즐겨 찾고 주머니가 가벼워도 부담 없는 포장마차 (손채주·시인) + 포장마차 눈이 펑펑 내리는 밤 밤늦게 길 가던 사람들이 포장마차 긴 의자에 앉았다 거기에는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세상 살아가는 비결이 있다 그래서 포장마차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한 페이지의 시사정보를 엮어 가는 동안 끈적끈적한 인간의 정이 흐르고 있다 긴 의자를 독점하고 앉아 있는 중년신사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삶을 연출하고 외로움을 달래는 연사가 된다 겨울 바람도 잔잔하고 가로등도 졸고 있는 시간 낯선 얼굴들이 백년행락을 즐기고 별도 총총한 밤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흥얼대는 노래 소리에 밤은 깊어가고 있다 (신순균·목사 시인, 1940-) + 포장마차의 추억 내 젊음이 한창이던 어느 가을 밤 나는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있었네 마주앉은 친구들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창백한 얼굴들 때때로 들뜨고 때때로 가라앉는 대화 가끔씩 부딪치는 술잔 음악도 없는 썰렁한 공간에 릴케와 하이네가 마주앉고 괴테도 다녀가고 칸트와 헤겔도 스쳐가는 동안 일본을, 미국을, 대통령을 안주 삼아 마시는 쓴 소주가 위장 속에서 용트림하여 눈은 정열로 충혈되고 의식은 안개 속으로 빨려들었지 그 안개 지금도 걷히지 않아 그들의 발길 찾을 수 없고 그 포장마차 그 자리엔 어느 취객의 넋두리만 남았네. (이승철·시인, 1958-) + 포장마차에서 길가다 빈창자 달래려고 목로에 앉으니 반기는 주모의 고운 웃음이 삶의 주름보다 짙다 길손 떠난 빈자리는 아직 온기가 서렸는데 개구리 뒷다리 내밀며 남정네들에게 좋단다 정류장 불빛은 졸고 바람소리는 차가워도 오가는 술잔 속에 포장마차는 불탄다. (김용진·시인) + 그 골목 포장마차에 가면 그 골목 포장마차에 가면 지친 하루를 데려다 술잔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좋은 이모가 돼지 창자 속에 꽉꽉 채워 넣은 정들을 뭉텅뭉텅 썰어 접시 위에 담아주면 그걸 안주 삼아 술잔을 비우는 사람들이 있다 허름한 포장마차 이모 집에 가면 마음을 보내놓고 껍데기만 모여 앉아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짝이 맞지 않는 나무 젓가락으로 석쇠 위에 덜 익은 말(言語)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마음을 맡겨놓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막소금에 절여져서 시들어버린 시간을 양념해서 비벼먹고 모두가 이모가 되는 사람들 간이 잘된 얼큰한 사랑이 고픈 사람들이 있다 제 피를 짜서 남을 취하게 하는 25도의 눈물을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고 빈 병처럼 흔들리며 바람에게도 잔을 건네고 전봇대에게도 어깨를 빌려주고 싶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김시탁·시인, 경북 봉화 출생) + 포장마차에 들고 싶다 비는 술집 셔터처럼 갑작스럽게 내렸고 우리는 자정을 피해 포장마차에 갔었네 어깨동무하고 몇 잔 더 마셨을 뿐인데 한 친구의 첫사랑이 잔에 채워졌네 다리 사이 탱탱한 두 바퀴를 품은 밤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달려갈 수 있다고 다만 잠시 서 있는 포장마차일 뿐이라고 촉수 낮은 전구 아래 힘껏 목을 세웠네 꼼장어이거나 똥집이거나 오돌뼈였을 그리움은 새벽이 깊어도 침 넘어가고 잘 해봐, 반드시 할 수 있을 거야 손 흔들어주면 먼저 자릴 뜨는 친구는 빗속 파이팅 손짓으로 택시를 잡았네 떨리는 젓가락으로 들어내는 것이 삶이고 사랑 아니냐고 넥타이 늘려 맨 친구는 탁자에 머릴 대고 곯아떨어졌네 남은 우리는 비 오는 날 청춘에 대해 골몰해지기로 하는데, 포장마차 벌려 머리를 들이민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의 그것처럼 촉촉한 것이었네 (윤성택·시인, 1972-) + 포장마차 실어증 걸린 사내가 가슴 두드리며 소주잔을 비운다 포장마차는 어지럽게 돌며 아직도 달리는가 카바이트 주홍불이 바람에 춤춘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가슴을 많이 메웠어도 관음보살 같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또한 어쩔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을 낙지 다리에 붙은 수많은 바퀴 달릴 수 없는 비좁은 의자 위에서 나는 잠든다 그것은 추억이었던 것일까 늙은 사내 하나 지친 얼굴로 연탄불 앞에 서성인다 포장마차는 밤 깊은 줄 모르고 그렇게 달리는가 칼날 같은 달빛 아래 얼음이 언다 (유창섭·사진작가 시인, 1944-) + 포장마차 아이들의 왁자한 숨바꼭질이 끝나고 가로등도 연무에 녹아드는 시간 쥐 죽은 듯 조용한 동네 공원 입구 고향집 같은 포장마차 한 대 갓 없는 백열등 달고 하얗게 떠 있다 주홍 천막에 어른대는 취객의 혼곤한 몸짓, 쐬주 두 홉은 족히 비웠나보다 주인장의 대꾸에 내두르는 팔추임새 따라 화덕 위 꼼장어는 추억까지 농익는다 사내의 목메인 노래엔 어머니가 있고 빈 잔에는 불효의 눈물이 차오른다 고층빌딩 숲속 아래 점점이 누운 불빛들 스러진 내 꿈의 편린들이 박힌 수채화 같다 오늘의 노동을 손 안에 싸서 성근 별 사이로 슬그머니 풀어놓는 나의 오늘도 술잔 위에 잠긴다 잠들지 않는 거리의 등불을 등에 지고 걷는 사내들 신새벽에 넘치는 빛과 그림자. (황종택·시인) + 포장마차 낮게 불이 켜지는 도시가 좋다 해가 지고 빌딩에 불이 꺼지면 가슴에 낮은 불을 켜고 은밀한 곳으로 잦아든다 바람이 떠난 도시, 슬픔은 투명한 풍경을 비춰 준다 은은한 불빛 향기가 멀리 새어 나가면 때묻고 상처받은 구두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선다 서로 입술을 나누는 잔이 아름답다 언제 그렇게 둘러 모여 눈을 바라보며 잔을 부딪히고 말을 맞추어 본 적이 있었던가 빈 잔에다 강과 바다를 담는다 나무를 담고 새를 담는다 산을 담는다 그렇게 나를 담는다 그림자가 잔을 든다 (강영환·시인, 195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