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 시 모음> '약해지지마!' 외 + 약해지지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 아들에게 아들아!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를 떠올리렴 누군가와 맞서면 안돼 나중에 네 자신이 싫어지게 된단다 자 보렴 창가에 햇살이 비치게 시작해 새가 울고 있어 힘을 내, 힘을 내 새가 울고 있어 들리니? 겐이치 + 비밀 나 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그렇지만 시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격려 받으며 이제는 더 이상 우는소리는 하지 않아 아흔 여덟 살에도 사랑은 한다고 꿈도 꾼다고 구름이라도 오르고 싶다고. + 아침은 올 거야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해가 비출 거야. + 살아갈 힘 구십 세를 넘긴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네 + 나 구십 세를 넘긴 뒤 시를 쓰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보람있습니다 몸은 여위어 홀쭉해졌지만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불 수 있고 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입은 말이죠 "달변이시네요" 모두가 칭찬해줍니다. 그 말이 기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요 + 너에게 못한다고 해서 주눅들어 있으면 안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서서 뭔가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 바람과 햇살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과 햇살이 몸은 어때? 마당이라도 걸으면 어때? 살며시 말을 걸어옵니다. 힘을 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영차'하며 일어섭니다. +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내가 대답했네 애쓰지 말고 편하게 가는 게 좋은 거예요 모두 같이 웃어댄 오후의 한때 + 외로워지면 외로워질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 그 온기는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힘낼게요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 + 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의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해줬다고 기쁜 듯이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정성껏 97세인 지금도 화장을 하고 있지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 나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부부가 오는 날이랍니다. 혼자 산 지 십팔 년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 답장 바람이 귓가에서 "이제는 슬슬 저 세상으로 갑시다" 간지러운 목소리로 유혹을 해요 그래서 나 바로 대답했죠 "조금만 더 여기 있을 게 아직 못한 일이 남아 있거든." 바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스윽 돌아갑니다. + 행복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내가 빛나고 있습니다. + 저금 나는 말이에요. 사람들이 친절히 대해줄 때마다 마음속에 저금해두고 있어요. 외롭다고 느낄 때는 그것들을 꺼내 힘을 내지요.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요. 연금보다 나을 테니까요. +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양 갈래 머리를 한 내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 끝없이 넓은 유채꽃밭 92세인 지금 눈을 감고 보는 한때의 세계가 정말 즐겁구나 + 어머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 추억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 96세의 나 시바타씨 무슨 생각하세요? 도우미가 물었을 때 난처했습니다. "지금세상은 잘못되었어 바로 잡아야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 말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수정을 하지 + 잊는다는 것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가는 것의 행복 잊어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소리가 들려오네. (시바타 도요·일본 시인, 1912-) *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인 2010년 첫 시집 『약해지지마』(じけないで) 발간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