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시 모음> 이영식의 '눈물도둑' 외
+ 눈물도둑
애야, 도둑이 들었나봐
누가 내 보석을 훔쳐갔나 보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구나
안구건조증이라는 게 뭐냐?
눈꺼풀이 자꾸 달라붙는구나
눈물도 나올 때 흘리거라
남의 아픔에 등돌리지 말고
값싼 눈물일수록 귀히 여겨라
공옥진 병 신춤을 보면서
웃느냐? 짭조름히 울어라
가끔은 삼켜, 눈물 맛도 보아라.
(이영식·시인, 경기도 이천 출생)
+ 눈물·1
숲 가까이 혼자 가서 우는 소녀여
네 눈물은 강하다
네 눈물은 지금 악을 죽이고 있다
네 눈물 때문에 조국이 있다
세계 도처의 양심이
비에 젖으며
새로운 풍경으로 태어나고 있다
네 눈물 때문에
(고은·시인, 1933-)
+ 눈물과 웃음 사이
어린아이는 끄덕하면 잘 웃고
끄덕하면 잘 운다
눈물과 웃음은 멀고도 가까운 사이
신이 준 고귀한 선물이다
눈물이 넘칠수록 기쁨이 피어나고
웃음이 넘칠수록 슬픔이 흘러내린다
눈물 속에 웃음이 섞여 나오고
웃음 속에 눈물이 섞여 나온다
벽시계 추처럼 울고 나면 웃을 일이
웃고 나면 울 일이 생긴다
눈물과 웃음은 사랑 속에선 함께 살고
우울을 없애주는 가장 좋은 약이다
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고
웃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바람이다
눈물과 웃음이 많은 사람은
맑은 물과 바람이 많은 산과 같다.
(차영섭·시인)
+ 사람의 눈물이 아름답다
꽃잎에 맺힌
이슬의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연꽃잎에 떨어진 빗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
혼을 앗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슬픔이 녹아질 때
아픔이 녹아질 때
기쁨이 녹아질 때
온 육신이 울어야만 비로소 솟아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물
이슬보다
빗물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눈물 한줄기
당신이 그리워
오늘도 난
또
눈물 한줄기 흘립니다.
(황봉학·시인, 1941-)
+ 혼자 울고 싶을 때
이 나이에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손등에 뜨거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젠 제법 산다는 것에
어울릴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어색한 걸 보면
살아감에 익숙한 이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모두들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나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만 같습니다
이젠 어른이 되었는데
자식들도 나만큼이나 커가는데
가슴이 아직도 소년시절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있나 봅니다
나이 값을 해야 하는데
이젠 제법 노숙해질 때도 됐는데
나는 아직도 더운 눈물이 남아 있어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눈물에 대하여
모든 눈물은
빛나는 나라에서 올 것
그리고 돌아보지 말 것
스스로 거두지 말 것이며
다만 눈물로 빛나기만 할 것.
눈물은 눈물끼리
껍데기는 껍데기끼리 모여
하나가 될 때
눈물은 어두워지지 않고
살아서 빛나는 튼튼한
이름 하나를 남길지니
껍데기뿐인 눈물은
껍데기의 나라로 돌아가고
모든 돌아보는 것들은 다시 오지 말고
스스로 거두는 것들만 어둠의 땅에 오래 남아
씨앗을 뿌릴 것.
그리하여 부르면 대답하는
눈물 하나로 우뚝 솟을 것.
(김세완·시인, 1953-)
+ 눈물의 노래
네 눈물은 아름답구나, 다이아몬드 같다.
밤의 검은 이파리가 너울거리는
나무 아래서
나는 너에게 말했다.
이 눈물은 다이아몬드가 아니에요.
석탄입니다.
너는 고통으로 초췌한 얼굴을 들어
나에게 말했다.
석탄만한 절망이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나올 리 없지, 이런 말을
너에게 했는지 안 했는지
어렴풋한 기억의 모서리가 지워져 있다.
조그만 빨래집게 두 개가
물먹은 솜 같은 커다란 빨래를
가냘픈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앙상한 네 개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면서
빨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벌을 받고 있는 중일까.
그때 나는 너의 눈물을 기억해 낸 거야.
다이아몬드 두 방울이
석탄덩어리를 꽉 잡고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그렁그렁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 두 방울.
눈물은 꿈을 닮는다는데
네 눈물은 탄광 속에 이글거리는 생명의 불꽃
다이아몬드 날개를 가진 것 같다.
(김승희·시인, 1952-)
+ 내 품에, 그대 눈물을
내 가슴은 편지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 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 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사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 씨처럼 달려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구나
전자레인지 속 빵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 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갈 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의 온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 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 거야
(이정록·교사 시인, 1964-)
+ 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더 이상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독을 버리는 일
그 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정호승·시인, 1950-)
+ 눈물은 힘이 세다
아내가 잔다
아내의 눈물이 잔다
밤새 울부짖던 눈물이 지쳐 쓰러져 잔다
아내의 눈물이 깰까봐
나는 없는 자존심마저 다 내어준 채
베란다 딸린 차가운 변방으로 밀려나 놀란 가슴 쓸어내린다
눈물은 아내가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다
눈물의 포효는 점점 위력을 더해간다
눈물은 힘이 세다
눈물은 맹독의 발톱을 가졌다
야차 같은 저 눈물의 횡포를 겪고 나면
남는 건 늘 싸늘한 폐허뿐이다, 내겐 폐허만 남았다!
폐허를 건너는 밤이 너무 길다
무장해제 당한 밤은 너무 무섭다
언제부턴가
아내의 눈물에 발톱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말수가 줄어든다
쌀을 씻는 일도 잦아졌다
눈물의 포효가 커질수록, 횡포가 극에 달할수록
나는 점점 눈물에게 복종되어 간다
눈물 앞에선 모든 게 내 탓이다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야 산다!
(고영·시인, 1966-)
+ 이슬, 그리고 눈물
동터 오는 새벽녘
꽃잎에 맺힌
이슬은 얼마나 영롱한가
영혼이 맑은 사람의
눈동자에 어린
눈물은 얼마나 순수한가
이슬이 있어
눈물 같은 이슬이 있어
꽃잎은 더 아름답고
눈물이 있어
이슬 같은 눈물이 있어
영혼은 더 깊고 순결하다
오!
찬란한 햇살이여
그 눈물에 입맞춤하라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