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관한 시 모음> 김종익의 '병원 입원실에서' 외 + 병원 입원실에서 환자들의 숨소리도 잠든 새벽 1시 이야기나 하자며 통증이 나를 깨운다 눈감고 자는 체한다 그는 송곳으로 머리와 다리를 마구 찔러댄다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운다 울음소리는 체면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슴속으로 강물 되어 흐른다 날카로운 송곳까지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친구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싶다 흔들리는 외나무다리를 빨리 건너갔으면 잎으로 또는 뒤로 이 공간, 시점을 몇 점 건너뛰고 싶다 (김종익·시인) + 그 병실에서 달리기하는 아이 산책하는 아이 병실 창문으로 부러운 듯 내려다보던 그 길을 혼자 걸어봅니다. 걸으면서 내가 내려다보던 그 병실 창문을 올려다봅니다. 지금도 누군가 그 병실 창문으로 나를 부러운 듯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병실로 달려가 그 아이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전영관·시인, 충남 청양 출생) + 병원에서 둥근 해가 떴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났던 환자들 서넛 모여 지는 해 바라본다 고개 넘고 넘고 넘어 어렵사리 이곳에 온 둥근 해 뜨거운 청춘 어느새 다 보내고 그래도 쉬 떠날 순 없어라 찌그러지는 불꽃으로 푸른 나무 검게 태우는 해 바라보며 환자들 마지막 안간힘으로 붉은 얼굴들 햇빛 햇빛 끌어 모아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담배를 피운다 (차창룡·시인, 1966-) + 병원에서 열흘 넘도록 옆구리 통증 정밀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푸줏간 앞에 소 신세다. 암은 아닐까 죽는 건 아닐까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헝큰다. 밥은 모래알이고 코미디프로도 우습지 않다. 초조한 마음 곤두선 신경 심장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고 의사가 판사로 보인다. 폐, 간, 콩팥, 혈액, 장, 정상 "지방간이 심하니 운동을 하세요." 의사의 판결에 하늘이 맑다. 천근 다리가 솜처럼 가볍다. (박인걸·목사 시인) + 병원에서 밀폐된 공간 속에서 환자만 모여 누워 신음을 뱉는다. 간병에 야윈 보호자는 뭉칫돈 쏟아 가는 푸념이 전화통에 줄을 서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덕지덕지 피로가 매달린다. 끈적거리는 통증을 벗어나 햇살 쪼개지는 정원에서 나무그늘 아래 등을 기대면 느릿한 시간들이 타래진 세월 풀어헤치고 짓이긴 삶을 힘겨워 센다. (최풍성·시인, 전북 임실 출생) + 병원에서 아직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때 들여쉬고 숨 멈추고 방사선에 온몸 들쑤셔지고 초음파 贓器 가로지른다 입원과 퇴원, 정문과 영안실 사이 휠체어 갈라선다 희한은 묻어나 기쁨도 잠시, 희망도 조금 둘둘 휘말리면서 무엇인가 의심하고 찾아낸다 악성세포, 이름 지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은 애처롭고 지킬 수 없는 각오와 맹세 흩뿌려진다 지난 삶은 함축된다 가난은 드러나 외롭고 삶은 철저하게 計量된다 우리는 지금 병원 안에 있다 (김영환·시인, 1955-) + 어린 아이 병원에 어린 아이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돌아오며 돌아오며 울먹이는 마음아 줄창 콩밭으로 달려가는 꿩의 마음아 사람은 언제부터 맹목한 정에 살았던가 …. (나태주·시인, 1945-) + 어제는 병원에 어제는 병원에 가 큰 아이 보고 울먹였는데 오늘은 작은 아이 시골 보내며 울먹인다 잠시 떼놀 세 살바기 계집아이 안쓰러워 새 옷 사서 입히며 새 신발 사서 신기며. (나태주·시인, 1945-) + 셈본·1 - 순천향병원 외래병동에서 수에 무딘 머리를 굴리면서 계산을 시작한다 15+10=25 11+10=21 다 지워버리고 다시 계산을 시작한다 15+8=23 11+8=19 내 목숨의 끈은 십년일까? 팔년일까? 십년이면 큰 아이가 스물다섯이고 작은 아이가 스물 하나 팔년이면 큰아이가 스물셋이고 작은아이가 열아홉…… 후두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이웃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거기, 내 얼굴 같은 사람들이 미소로 나를 위로한다 (권복례·교사 시인. 1951-) + 병원에서 - 위암으로 고생하는 수미에게 물 한 모금 마음놓고 넘기지 못하는 고통을 누가 알아주랴 피 한 방울 생산해 내지 못하고 수혈로 하루를 이어가는 절망을 누가 알아주랴 눈에 밟혀 손을 놓지 못하는 아이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치도록 바라만 보다가 벽 속으로 통곡을 토해내는 네 모습이 가시처럼 아프다 아, 어쩔거나 정말 어쩔거나 버리지 못할 흔적들을 붙들고 야속한 마음, 얼룩진 설움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너를 보며 따뜻한 용기를 건네주고 싶은데 바보처럼 너도 울고 나도 운다 눈을 감으면 앙상한 네 모습이 떠오르고 시린 겨울 벽 속에서 떨고 있는 네 울음소리가 자꾸만 들리는데 아, 어쩔거나 정말 어쩔거나 (문혜숙·시인) +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빽빽하게 들어찬 어둠을 솎아내느라 형광등 불빛은 가늘게 떨고 있다 그 경계를 잘라내는 환풍기는 울음이 엉겨 잘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이 곳을 깨우기 위해 사이렌은 입구에서 검은 침묵을 매만진다 누구나 지상과 멀어지고 싶지 않듯 지하로 지하로 차를 몰고 내려온 이는 잘못 든 길처럼 숙명적이다 그가 홀연 빠져나와 차문을 힘껏 닫을 때 지하층 전체에 일순 울리는 소리, 누군가 들뜬 페인트처럼 후들거리며 벽면에 기댄다 어쩌면 통곡은 지루한 절차일지 모른다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고 우회와 우회를 거듭하며 나선 방향으로 낙하한 하역의 공간, 지하로 내려갈수록 生의 나사가 조여 오는 것일까 그가 못질하듯 구두소리로 걸어나간다 깊은 밤처럼 고요한 지하주차장, 길이와 폭으로 테두리를 두르던 주차선이 문득, 영정 사진에 가 있다 또 누군가 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윤성택·시인) + 성가복지병원 언제부터인가 미아 삼거리로 통하는 길목에 복지국가의 복지가 죽음 앞에서야 푯말로 서있다 산 입에 거미줄 칠까 맨몸으로 밥벌이하던 사람이 머리 속 핏줄이 터지는 날에는 거센 비바람이 친다 아스팔트를 기어다니던 벌레 같은 목숨 폐에 구멍을 내고 뱃속에 가득 부어버린 알코올로 썩을 염려가 없다고 웃어대던 누런 이 수치심도 빠져나간 가시 같은 몸뚱이가 마지막 다다른 하얀 시트 속으로 이승 옷을 벗어던지고 수녀님들 기도 속에 시구문(屍軀門)을 나서는데 현관 화단 노란 팬지가 나풀나풀 앞장선다 (목필균·시인) + 병원 문을 나오며 쇠털 같은 날 너무 함부로 써서냐 무쇠라도 닳을 때가 돼서냐 갈수록 가까워지는 게 건강보험증이요 약봉지 머리맡을 못 벗어난다 깊은 데도 뭔가 꼭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구석구석 눈을 주어 살펴보랬더니 용茸 같은 것이 발했다 한다 대장에 떼어내야 좋단다 물론 병원 잠도 할 수 있고 우리 집 자랑이 깨어지지나 않을까 마른가슴을 태우며 기다리다 시술을 받는다 속을 깨끗이 비우고 가서 검은 침대에 몸이 눕고 주사기가 꽂히고 얼마가 지났을까 몽롱세계를 흔들어 깨우더니 그만 나가자 곁부축한다 눈에서 딱정벌레가 왔다 갔다 한다 숨을 돌리고 만상이 바로 설쯤 부르더니, 깨끗이 제거됐다 한다 조직검사 뒤끝은 며칠 뒤에 나오니 돌아가고, 출혈이 있을 땐 냉큼 오란다 외판원처럼 웃음을 뿌리며 어슴어슴한 로비를 나선다. 우리 가정에 입원은 없다고. (강대실·시인) + 병원길에서 큰길에서 정문을 지나 병동으로 올라가는 우회로 벚꽃이 만개해 있다 학생들은 시험에 정신이 없고 시험이 끝나면 꽃은 다 지고 만다 한다 벗을 것 다 벗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는 꽃들이 텅 빈 나의 눈에 가득 찬다 꽃은 당당한 神의 섹스다. (홍해리·시인, 1942-) + 병원으로 가는 역사 나는 지금 한 낯설은 노인을 업고 거리를 뛴다 여름날 땡볕에 졸도한 노인을 짊어지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활동사진처럼 지나가는 백화점 부근을 지나 저기 보이는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다 다 쭈그러진 손. 어디선가 꼭 한 번 나를 가르쳤던 것 같은 촌스러운 옷차림의 노인. 그 시든 한평생의 역사를 등에 이고 뛴다 나는 포스트모던한 시대를 살고 있는 새파란 청년 나에게 실려 가는 이 노인의 시대가 어떻게 불려져야 할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내 양 어깨를 두른 노인의 낡은 손등에는 치욕과 슬픔의 핏줄이 시퍼렇다. 신세대에 업힌 구세대. 새로운 청춘 위에 업힌 저문 황혼에 흠뻑 젖어내리며, 나는 아직도 내 여름날의 역사가 치욕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길바닥에 쓰러진 한 노인을 업고 무작정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이응준·시인, 1970-) + 산, 하나님의 병원 한 마리 뱀처럼 산 속으로 사라진 길 회색 장삼을 입은 수도승도 길과 함께 숲 속으로 사라지고 저만 그들의 행방을 아노라 떠가는 구름이 벙글거리더라. 하나 아프지 않고 유쾌하게 울창한 숲의 온갖 향기로 치료하는 하나님이 차려 놓은 이 거대한 병원, 맑은 물과 바람, 새들의 노래 소리에 몸과 마음 구석구석 때를 씻어 헹구고 비쭉비쭉 치솟은 웅장한 산봉우리들은 산 같은 용기를 가지라 외쳐대고 더러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돌부리까지 걱정 근심 시기 질투 미움 탐욕 세상 보따리 다 팽개치고 돌아가란다. 영원한 생명 근원의 산으로부터 밀려드는 생기를 가득 채워 가란다. 우거진 잎새 사이로 곰보자국처럼 떨어진 햇살에도 전율하는 돌단풍과 그 둘레의 작은 풀잎들 순결한 사랑은 스치는 바람결에도 소스라치고 하늘 향해 반짝이는 잎새들의 해맑은 표정 아픈 곳을 싸매 주는 부드러운 붕대 같은 하얀 구름 가만히 떠가는 깊은 골짝 세상 어떤 음악보다 살아 역동하는 물소리 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을 양약(良藥)으로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과 지친 육신을 고치고 치료하는 오, 보이지 않는 위대한 손길! 작은 풀꽃들의 비밀 하나도 모르면서 바위는 여전히 성불을 위해 참선 중인지 머리만 내놓고 가부좌로 앉아서 세상 찌끼 다 토하고 내려가도 말이 없고, 멀어져 가는 새들의 노래에 뒤돌아보며 신비한 능력으로 치료받아 나무들처럼 싱싱해진 사람들은 선함과 아름다움과 진실함과 거룩함과 사랑과 기쁨의 신의 성품으로 가슴을 채우고 산의 수문장 전나무들의 씩씩한 전송을 받으며 싱그러운 물처럼 바람처럼 내려오고 있더라.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