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시 모음> 박희진의 '선생님 새해에는' 외
+ 선생님 새해에는
저 해를 꿰뚫고 날으는 새처럼
생명의 연소 속에 앞장을 달리소서
저 백두산 천지처럼 가득히 고인
영감의 높이에서 겨레를 살피소서
(박희진·시인, 1931-2015)
+ 지훈 선생 생각
꽃이 피는 아침은
혼자서라도 울고 싶습니다
지훈 선생님.
(나태주·시인, 1945-)
+ 선생님
솔밭 사이로 정갈하게 돋아난
한 그루 춘란이십니다.
눈보라 모진 바람에도
꼿꼿하게 서있는 대나무이십니다.
혼탁한 도시의 공원 모퉁이에
빨갛게 피어난 6월의 장미이십니다.
거칠고 혼미한 먼 바닷길
홀로 서서 밝히는 등대이십니다.
끝없이 일렁이는 험한 파도
조용히 받아주는 바다이십니다.
(유응교·건축가 시인, 1943-)
+ 나는 이런 선생님이고 싶다
니가 내 앞에 반짝이는
규정할 수 없는 보석이라면
그리하여 내가 그 보석 속에
형형색색의 의미를 불어넣는 연금술사라면
언젠가는
내 온 마음의 땀방울로 빚어지는
그런 무지개를 보고 싶다
설령 그 무지개가 한순간으로 사라지고 말 기쁨이라 할지라도.
니가 흘러가는 물이라면
그리하여 내가 니 가슴 한복판에
지혜의 물결을 꽃잎처럼 피울 수 있다면
물밑바닥 숨가쁜 돌이 되어 아무렇게나 나뒹굴지라도
나는 천만 번이라도 팔매질 당하는
그런 낭만의 돌멩이이고 싶다.
니가 내 앞에 다가서는 꽃이라면
그리하여 그 꽃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이름 모를 순수의 무게라면
설령 그것이 내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라 할지라도
시를 쓰는 참마음으로
내 진정 그 순수의 무게를 풍선처럼 띄워 올리고 싶다.
니가 내 곁을 스쳐가는 바람이라면
그리하여 그 바람이 내 어깨를 치는 시련일지라도
나는 그 바람에 묵은 먼지를 털듯 슬픔을 털며
더욱 무성하게 치솟는
꿈의 동구 밖 한 그루 정자나무가 되어
언제나 뚜렷한 니 꿈의 이정표로 서 있고 싶다.
(임두고·교사 시인, 1960-)
+ 선생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 스승의 날에
선생님,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가슴을 펴 끓는 해를 품어 보아라.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지요.
저 큰 바다 풍랑 위로 걸어가거라.
오래된 종소리의 은은함을 알게 하시고
가장 빛나는 별을 가리켜 바라보게 하신 선생님
깊은 밤 여울지는 맑은 사랑과
순결한 영혼의 축복에 대하여
대지에 뿌리 뻗는 나무들의 합창과
물어물어 가는 길의 이정표에 대하여
당신은 목이 쉬게 일러주셨습니다.
때때로 외로운 당신의 뒷모습
홀로 있는 시간의 뜨거운 눈물을
당신 안에 동여맨 비밀한 상처를
나는 차차 눈을 떠보았습니다.
방황하는 새처럼 길을 떠나서
믿음을 저버리고 헤매던 나날.
당신의 쓸쓸함은 나의 무심입니다.
당신의 눈물은 나의 방종입니다.
당신의 상처는 나의 탈선입니다.
선생님.
지금 늦게 돌아와 엎드립니다.
엎드려 꼭 한마디 고백합니다.
선생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선생님.
(이향아·시인, 1938-)
+ 선생님께·1 - 어느 시골 중학생의 편지 중에서
선생님
저는 싫어요.
가난한 것보다, 가난하다는 낙인은
더욱 싫어요
추석날이 오늘처럼 슬픈 날은 없었어요.
학교에서 불우 이웃돕기 선물을 받았을 때
선생님께서는 흐뭇하고 즐거우셨을지 모르지만
제 가슴에는 그때 그 순간에
불우하다는 어둡고 슬픈 낙인이
새겨지고 있었다는 걸
왜들 모르실까요.
말을 들어보면
공문에 의한 지시사항이라던데요.
실적으로 남기기 위해 저희들 몇몇을 선발했다던데요.
신발 한 켤레, 제겐 정말 필요한 것이긴 해도
왠지 부끄럽고 마음이 아파
눈물 먼저 맨살을 적시어오는 걸
선생님께서는 행여,
제가 고마움에 못 이겨 감격해 우는 거라고
생각진 않으셨나요
불쌍한 놈 하나 구원이라도 해주신 양
값싼 동정을 즐기고 계시진 않으셨나요
그러셨어도, 앞으로는 제발
저를 불쌍하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진 말아주세요.
저를 더 이상 불우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어
괴롭히진 말아주세요.
(김시천·교사 시인, 1956-)
+ 선생
한 사람에게는
많은 선생이 없어도 된다
그 사람의 희망과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단 하나의 선생이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
드넓은 하늘
단 하나의 태양이
온 세상 환히 비추어주고
온 누리 생명을 기르듯
참으로 사랑이 많고
사려 깊은 선생 한 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른길로 이끌어갈 수 있다.
깜깜한 밤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 밝혀주는
북극성같이.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