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시 모음> 임보의 '이별의 노래' 외 + 이별의 노래 녹기 전의 저 눈밭은 얼마나 눈부신가 지기 전의 저 꽃잎은 얼마나 어여쁜가 세상의 값진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리 사랑도 우리의 목숨도 그래서 황홀쿠나 (임보·시인, 1940-) + 이별노래 떠나가는 제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이별은 그냥 이별인 게 좋습니다 남은 정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갈 길을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움도 너무 깊으면 병이 되듯이 너무 많은 눈물은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됩니다 차고 맑은 호수처럼 미련 없이 잎을 버린 깨끗한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이별하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바람 헤어짐은 바람처럼 해야 한다. 바람이 나무와 바람이 별과 바람이 또 바람과 어떤 이별을 하던가. 그냥 스치어갈 뿐 뼈도 눈물도 남기지 않고 장삼 자락만 흔들지 않더냐. 세상 모든 것 떠날 때 찌꺼기를 남기건만 머문 적 없다고 바람은 자리마저, 자리마저 쓸어버리지 않느냐. (구광렬·시인, 1956-) + 원시(遠視)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서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오세영·시인, 1942-)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늘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이었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조병화·시인, 1921-2003) + 별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 그대 꽃이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내 앞에 있는다 해도 차마 그대 눈치채지 못하고 나 또한 구름 되고 바람 되고 천둥이 되어 그대 옆을 흐른다 해도 차마 나 알아보지 못하고 눈물은 번져 조그만 새암을 만든다 지구라는 별에서의 마지막 만남과 헤어짐 우리 다시 사람으로는 만나지 못하리. (나태주·시인, 1945-) + 기가 막혀서 이별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사랑을 하라니요 그럼 그게 어디, 사랑인가요? (이풀잎·시인) + 부탁 당신이 내게서 멀리 가시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인연이란 것이 무 자르듯 그렇게 싹뚝 잘리어진다면 모를까 당신이 내게 준 따뜻함이 아직 내 안에 있기에 난 당신을, 이대로 놓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굳이 가시려거든 내 안에 있는 당신의 기억 그 모두를 함께 가져가소서 차마 그리 못하시면 지금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주소서 (최원정·시인, 1958-) + 이별 노래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그대 뒷모습 닮은 지는 꽃잎의 실루엣 사랑은 순간일지라도 그 상처는 깊다 가슴에 피어나는 그리움의 아지랑이 또 얼마의 세월 흘러야 까마득 지워질 것인가 눈물에 번져 보이는 수묵빛 네 그림자 가거라, 그래 가거라 너 떠나보내는 슬픔 어디 봄산인들 다 알고 푸르겠느냐 저렇듯 울어쌓는 뻐꾸긴들 다 알고 울겠느냐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하르르하르르 무너져내리는 꽃잎처럼 그 무게 견딜 수 없는 고통 참 아름다워라 (박시교·시인, 1947-) + 떠남 떠남 너의 뒷모양은 언제나 쓸쓸하더라. 너는 젊음을 미워하고 사랑을 시기한다. 너는 어머니와 아들같이 친한 사이를 간섭하기를 유달리 좋아하더라. 사람들은 너를 위하여 산을 헐어 길을 닦고 물 위에 배를 띄운다. 너는 왜 아득한 모래 위에 혼자 앉아 로렐라이의 노래만을 부르고 있느냐. 나는 너를 잘 안다. 너는 나의 검은 머리털의 힘을 빼앗고 네가 사랑하는 寶石은 眞珠나 落葉보다 눈물이다. 네게 만일 세월의 친절이 없었던들 이를 무엇에다 쓰겠느냐? 떠남 너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더라. 네 앞에 自然은 빛을 잃고 汽笛은 사라지며 원수도 뉘우친다! 너는 왜 훌쩍훌쩍 울면서도 가고야 마느냐? 돌아서 너의 마음을 뉘우침이 좋지 않느냐? 아아, 떠남 너의 발자취를 덮을 땅 위의 바람과 눈이 영원히 없음을 너는 모르느냐? (김현승·시인, 1913-197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