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에 관한 시 모음> 강경호의 '꽃이 울 때' 외 + 꽃이 울 때 꽃은 지는 아픔으로 우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을 얻은 날 아침 정원의 꽃을 바라볼 때 이슬에 젖은 꽃이 연분홍 기쁨을 활짝 펴 울고 있었다 내 사랑이 떠난 날 저녁 정원에 앉아 숨죽여 울 때 벌레 먹은 꽃이 푸른색 슬픔을 말아 울고 있었다 (강경호·시인, 1958-) + 귀울음 눈울음이 다했는가 귀울음으로 터지는 병 갈가마귀 소린 듯도 불자동차 소린 듯도 눈 코 입 귀 차례로 울면 마침내 악기樂器 되겠지. (유안진·시인, 1941-) + 닭울음 우리집 닭이 한 번 울고 이웃집 닭이 한 번 울고 온 동네 닭이 다 울었습니다 마을에서 마을로 길이 다 열리고 새벽 하늘 한 군데가 환하게 뚫려 있습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매미울음 한시적이라는 것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맹세인지는 몰라도 매미가 운다 녹음을 찢듯이 운다 금강석을 찢듯이 운다 구름은 부풀고 등짝을 찢듯이 운다 수천 마리로 운다. (신현정·시인, 1948-) +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 - 매미 매미의 울음을 노래로 착각하고 싶다 그런데 매미도 내 울음을 노래로 착각하면 어쩌지 아니다 나는 그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다 (이생진·시인, 1929-) + 뻐꾸기 울음 어제는 서울 가 친구들 만나 술 먹고 쓰잘 데 없는 소리 많이 듣고 또 허튼 소리 많이 지껄이다 늦어 부랴부랴 우등 막버스 타고 자면서 돌아왔는데, 오늘은 멍한 머리 휘청거리는 다리로 출근하는 길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리는 뻐꾸기 울음소리 더러운 귀를 씻어라 뻐꾹 냄새나는 입을 닦아라 뻑뻑국. (나태주·시인, 1945-) + 산울음 이슬 영롱한 망울 머금은 초록빛 아침이 열린다 가지런한 자연의 질서 앞에 계곡의 물소리 잎새의 바람소리 산사의 향불로 피어오른다 사람이 버리고 간 오만함마저 그 품안에 담아 침묵하는 산 침묵 뒤에 되물림의 이치를 알게 하려는 듯 울음 우는 산. (정해철·시인) + 울음 숲이 큰소리로 울어도 눈물 흔적 없듯이 나 또한 눈물 없이 크게 운다. 아무 때나 흘리는 눈물은 울음이 아니다. 상처난 온몸이 슬픔에 젖어 어둠을 다 적시는 울음. 평생의 눈물을 한꺼번에 울고 깊은 밤에 서면 죄 같은 사랑도 아름답게 남는구나. (류석우·시인, 1943-) + 귀울음 조용한 곳에 있노라면 내 귀에선 윙윙 소리가 납니다. 병원에선 직업병에 걸렸다 합니다. 전에는 열 받은 모터소리인 듯 울려오더니만 오늘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쳐대는 이 땅의 소리로 자꾸만 울려와서 차마, 쉬이 잠들 수가 없습니다. 조용한 곳에 있노라면 내 귀에선 윙윙 소리가 납니다. 병원에선 당장 고침을 받으라 합니다. (정세훈·시인, 1955-) + 울음소리로 몸을 꿰매고 밤에 나는 커다란 한 마리 새로 변하여 웅크려 발톱을 갈다가 허공을 날아 얼음 번쩍이는 설악산 그 큰 뿌리를 두 발로 번쩍 들어, 날아 날아 허공을 가로질러 와서 마음 복판에 들여놓는다. 내 안에 산이 우는 소리 밤중 큰 산의 큰 울음소리 나는 밖으로 난 문빗장을 굳게 지르고 울음소리에 흔들리다가 울음소리가 되어 울다가 등이 터지고 마음 찢어지고 밤내 울다가 어느 자정 무서운 울음소리 한 끝으로 해진 내 몸 다 얽어 꿰매고는 홀연히 일어나 실로 커다란 한 마리 새가 되어 서쪽 하늘로 날아간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새의 울음소리에는 내 새벽잠을 가만 흔들어 깨우는 저 새의 울음소리는 새 울음만이 아니다 그 어떤 것의 비유로 말해야 옳다 비를 머금은 구름의 노래이거나 지하를 떠돌다 돌 틈을 빠져나와 계곡을 뛰어내리는 물줄기의 소리이거나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자장노래 소리이거나 그렇다 저 소리를 새의 울음소리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눈감은 채 들어보면 그 옛날 그 여자가 부르던 노래 하마 은하의 강물 곁에 살림을 차리고 쌀 씻으며 부르는 노래 새 울음소리에는 지나온 천 개의 하늘이 있고 살아보지 않은 천 개의 강물 소리가 있다 그리운 노래가 있다 꿈꾸는 별들의 뒤척임 소리가 있다 새는 인드라의 그물코에 앉아 그 가운데 몇 개의 소리를 가져와 지금 내 귓가에 내려놓는 것이다 (복효근·시인, 1962-) + 울음소리 지금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울고 있습니다 아무도 메꾸어 줄 수 없고 누구에 의해서도 채워질 수 없는 가슴 빈자리 때문에 홀로 울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에 낯설지 않는 것이라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그의 울음이 너무 커서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바꾸어 설 수 없고 누구도 대신 갈 수 없는 길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뜨거운 돌자갈 길을 걸어오며 가슴을 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픔을 이기는 길은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절망을 이기는 길은 그 절망 끝까지 싸워나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도 지금 그들에게는 이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서로 손 잡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먼저 눈물 흘린 사람과 지금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