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시모음> 이세룡의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외 +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그러면 몰래 감추어둔 대포와 대포 곁에서 잠드는 병사들의 숫자만 믿고 함부로 날뛰던 나라들이 우습겠지요 또한 몰래 감춘 대포를 위해 눈 부릅뜨던 병사와 눈 부릅뜨고 오래 견딘 병사에게 달아주던 훈장과 훈장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똑같이 우습겠지요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그러면 전 세계의 시민들이 각자의 생일날 밤에 멋대로 축포를 쏜다 한들 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 총구가 꽃의 중심을 겨누거나 술잔의 손잡이를 향하거나 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 별을 포탄 삼아 쏘아 댄다면 세계는 밤에도 빛날 테고 사람들은 모두 포탄이 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지 모릅니다.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이세룡·시인, 1947-) + 무기의 의미·2 가장 날카로운 칼과 가장 날카로운 告白은 다르지 않다. 가장 날카로운 칼은 그 칼날에 그리하여 저의 낯을 비춰 본다. 그리하여 가장 날카로운 칼은 꽃잎 앞에도 무릎을 꿇고, 그 꽃잎은 그 칼을 쥔 손목에 입을 맞춘다. 그리하여 칼집 속에 칼을 잠들게 하고서 우리는 勝利를 얻는다. 밤이슬에 녹슬지 않는 그 빛나는 이름으로 우리는 누구의 勝利도 아닌....... (김현승·시인, 1913-1975) +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려 울부짖던 곳 아 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에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조지훈·시인, 1920-1968) + 전쟁은 아직, '분명 여기 어디였는데, 그해 여름 피 묻은 시신을 묻어야했던 거기가...' 산을 헤집고 다니다가 문득 멈춘 그곳 (수풀 우거진 화전민 집터를 찾아낸 K씨, 유해발굴에 나선 후배 전우들과 산을 파헤친 지 얼마 후 얼기설기 구부려 누 운 채 드러나는 일곱 유골들, 정성을 다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린다. ) 54년만의 만남! 뼈마디 곳곳에 총알이 박히고 군화도 벗지 못한 채 춥고 습기 찬 곳에 누워 뼈인지 낙엽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들, 잊혀져 까맣게 소홀했던 너무나 소홀하였던 우리들 우리는 무엇이며 조국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땅속에서 나온 그날의 전우들이 절규한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송문헌·시인, 충북 괴산 출생) + 김치찌개 평화론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곽재구·시인, 1954-) + 생명평화세상을 위하여 꽃들 어여쁘다 키 큰 나무들의 꽃그늘 아래 다투지 않고 피어난 키 작은 꽃들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비워내는 것이네 생명평화 세상으로 가는 길 나를 끊임없이 나누어주는 것이네 아낌없는 것이네 고집하지 않는 것이네 내가 바로 서는 길이네 내가 바로 사는 일이네 그 길 즐겁고 행복한 일 결코 아니라네 더불어 함께 사는 일이란 고통스러운 일이네 내 이웃의 슬픔을, 그 흐르는 눈물을, 이 땅과 나아가 세상의 절망을 나누어지겠다는 일이네 그것 머릿속에서 다져서는 나오지 않는다네 가슴 뜨거운 각오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네 쫓기고 내몰려보았는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지쳐 보았는가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해보았는가 때로 도둑의 마음 품어 보았는가 그 솟아나는 마음에 분노해보았는가 그 솟아나는 마음에 분노해 보았는가 적개심으로 치떨어보았는가 진실로 벌거벗지 않고는 어렵고 어려운 일 나를 온통 내놓지 않고는 함께 할 수 없는 일 참 생명으로 산다는 일 참으로 힘겨운 일이네 비로소 눈을 뜬다는 것이네 귀를 연다는 것이네 눈 들어 귀기울이면 세상은 상처투성이들 소외당한 것들이, 외면 당한 것들이 잊혀지고 버림받은 것들 떠돌며 아우성이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한 그루 나무를 세상에 심는 것이네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내는 일이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푸른 나무를 드리우며 산다는 일이란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지켜준다는 것이네 산에 들에 새들과 어린 짐승들 겁 없이 뛰어 놀고 갯벌이 강물이 바다가 흘러온 길 막힘 없이 우리 곁에 있게 한다는 것이네 지친 이들의 그늘이 되고 지팡이가 되고 집이 되고 눈 먼 이의 눈이 되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 되어 더불어 산다는 것이네 꼭 껴안아 준다는 것이네 그 세상 정말이지 살맛나는 세상 아닐 것인가 거기 사랑과 조화로 가는 늘 푸른 나무가, 거기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튼튼한 나무가 뿌리내릴 것이네 생명이 샘처럼 넘실거릴 것이네 평화가 따뜻한 품안으로 깃들 것이네 생명평화세상 가득할 것이네 (박남준·시인, 1957-) + 평화 있으라 날마다 찾아드는 황혼에 평화 있으라 다리 위에 평화 있으라 술에 평화 있으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평화 있으라 그리고 나의 가슴에 올라와서 흙냄새와 사랑으로 가득 찬 옛 노래를 펼쳐주는 언어에 평화 있으라 빵 냄새로 눈을 뜬 아침의 도시에 평화 있으라 많은 강을 끌어들인 미시시피 강 위에 평화 있으라 내 아우의 내의에 평화 있으라 바람이 쓰고 간 것 같은 책에 평화 있으라 키에프의 대 콜로호즈에 평화 있으라 사방팔방에 쓰러져 있는 死者들의 재 위에 평화 있으라 브룩클린의 검은 조교 위에 평화 있으라 햇살처럼 집에서 집으로 도는 우편 배달 위에 평화 있으라 메꽃과 같은 발레의 무대에서 소리치고 있는 안무가 위에 평화 있으라 로사리오에 대해서만 쓰고 싶은 나의 오른손에 평화 있으라 주석(朱錫)처럼 숨어 있는 볼리비아人에게 평화 있으라 그대가 시집갈 수 있게 평화 있으라 비오비오의 모든 제재소에 평화 있으라 스페인 게릴라의 파괴된 심장에 평화 있으라 비둘기를 수놓은 방석이 제일 그리운 와이오밍의 조그마한 박물관에 평화 있으라 빵집과 그 사랑에 평화 있으라 밀가루 위에 평화 있으라 이윽고 싹을 내미는 보리에 평화 있으라 숲 속을 찾는 연인들 위에 평화 있으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평화 있으라 모든 대지와 물 위에 평화 있으라 자 이제 나는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 꿈에도 그리던 나의 집으로 가련다 거친 바람이 외양간을 두드려대고 얼음덩이가 바다로 떠내려가는 파타코아로 돌아가련다. 나는 일개 시인이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나는 사랑하는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나의 조국에서는 광부들이 감옥으로 끌려가고 군인들이 턱으로 재판관들을 부려먹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춥고 조그마한 나라를 뿌리까지 사랑하고 있다. 만약 천 번을 죽는다면 나는 그때마다 그곳에서 죽고 싶다. 만약 천 번을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때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싶다. 저 우악스런 아라우카族 곁에서 교회의 종루가 새롭게 세워지는 곳에서 나는 바란다. 아무도 나에 대해서 마음 쓰지 말기를 사랑의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이 지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는가. 나는 바라지 않는다. 다시 빵에 피가 묻는 것을 강남콩에 피가 빨갛게 물들고 음악이 피를 쏟아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소망은 고아도 과부도 처녀도 변호사도 어부도 인형 만드는 사람도 모두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영화관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붉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려는가.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노래하기 위해 왔다. 나와 함께 그대도 노래해 주기를 바라면서.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시인, 1904-1973) + 평화를 주소서 주님, 분노와 위협을 거두시어 모든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세상에 구원과 평화를 주소서. 지진을 없애시고 불행한 소식을 거두어들이소서. 풍부한 결실을 내게 하시고 억눌린 이들에게 기쁨을 주소서. 즐거움이 넘치는 여름을 주시고 온화함이 감도는 겨울을 주소서. 분노를 그치시고 온 세상에 당신 자비가 감돌게 하소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주교, 4세기) + 평화를 위한 기도 오늘도 저희를 평화의 길로 부르시는 평화의 주님 새로이 솟아오르는 밝고 둥근 태양을 하늘에서 마음까지 들여놓고 평화를 기원하며 새 천년의 시작을 기뻐했던 새날 새해였습니다 새 천년의 첫 해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이렇듯 상처받은 가슴으로 눈물 흘리는 저희를 굽어보소서 아니 너무도 놀라 우는 법조차 잃어버린 안타깝고 무력한 여기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소서 날마다 가까이 보이는 것은 폭력과 파괴의 손길 복수와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들 들리는 것은 전쟁으로 죽어 가는 이들의 신음과 굶주림으로 비탄에 잠긴 한숨 소리들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가 되지 않는 저희의 착잡한 날들입니다 세계에 평화가 없으므로 저희 마음도 평화를 잃었습니다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폭탄이나 총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심 뿐"이라는 마더 데레사의 목소리를 다시 기억합니다 "폭력이 성취하는 듯 보이는 선은 오직 외적인 선일 뿐 폭력이 가져오는 해로움은 영원하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함께 기억해 봅니다 진정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하셨지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용서만이 가장 힘있는 승리임을 몸소 가르치시며 모든 이에게 평화가 되신 그리스도 당신만이 저희의 변함없는 위로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으시는 당신의 목마름에 동참하며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청하고 싶습니다 전쟁은 다시 전쟁을 낳고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듯이 사랑은 다시 사랑을 낳고 용서는 다시 용서를 낳아 평화로 이어지는 다리가 됨을 이 세상 모든 이가 다시 알아듣고 다시 실천하게 하소서 미움의 칼을 내려놓고 복수의 총을 내려놓고 진정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알게 하소서 오늘도 저희를 평화의 길로 부르시는 평화의 주님 오직 평화만이 온 인류가 하나로 손잡고 들어가는 생명의 문화임을 기억하면서 저희 모두 가정에, 나라에, 그리고 전 세계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평화를 심는 평화의 도구 되게 하소서. 아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