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 관한 동시 모음> 박두순의 '할머니 집에 가면' 외 +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 화안한 웃음이 먼저 마중 나옵니다. 가끔 그렁그렁한 눈물도 마중 나옵니다. 강아지 꼬리도 살랑살랑 마중 나옵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할머니가 웃으실 때 어멈아! 저 할멈하고 나하고 동갑이라는데… 어머나! 어머니가 훨씬 젊어 보이세요 그렇지? 내 맘에도 그런 것 같긴 한데… 할머니가 엄마처럼 웃으신다 탤런트 누나보다 엄마가 훨씬 예쁘다고 할 때처럼 (서금복·아동문학가) + 우리 할머니 나만 보면 "밥 무긋나?" 때없이 물어보신다. 밥 먹었다 그래도 "쪼매만 더 무그라." 숟가락 쥐여 주신다. 배부르다 그래도 "밥이 제일이데이." 밥그릇 밀어 주신다. 점심 먹은 뒤에도 저녁 먹은 뒤에도 "밥 무긋나?" 일없이 물어보신다. (김미혜·아동문학가, 1962-) + 인사말 희섭이네 할머니 아침부터 밤나무 밑에 앉아 있다 학교 가는 날 보며 "밥 먹었냐?"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인사말처럼 "점심 먹었지?"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동네 한 바퀴 돌 때도 "밥 먹고 노나?" 우리 할머니 따라 고추밭 갈 때도 "저녁 먹을 때 다 돼서 어디 가나?" 소가 울어도 "밥 때가 됐는갑다." 동네 개가 짖어도 "밥 달라 야단이네." 새가 날아도 "밥 찾아 댕기느라 애쓴다." 엉덩이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해 다 졌네. 나도 밥 먹으러 갈란다." 타닥타닥 지팡이 앞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는 희섭이네 할머니. (박혜선·아동문학가, 1962-) + 우리 할머니 눈만 뜨면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을 욕하는 우리 할머니 망할 놈의 돈, 썩을 놈의 돈, 원수 놈의 돈 그러면서도 누가 돈을 주면 제일 좋아하시는 우리 할머니 (김자연·아동문학가, 1960-) +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척척 박사시다. 학교 마당에도 못 가 본 노인이지만 당근 값 계산할 때는 바로바로 박사다. 우리 할머니는 마음이 장사시다. 대장인 큰 아빠도 할머니 흰소리 앞에 꼼짝도 못하신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하곤 친구시다. 친구와 다툰 날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알사탕 아무도 몰래 감추었다 주신다. (이소영·아동문학가) + 택배 시골 계신 할머니가 꽁꽁 묶어서 보내온 택배상자 풀기도 전에 참기름 냄새 먼저 나와 '너거들 잘 있었니?" 솔솔 안부를 묻고 곱게 빻은 고춧가루 잘 말린 무말랭이 봉지 봉지 앉은뱅이 걸음으로 나와 "요건, 고추장 담아 묵고, 요건 밑반찬하고." 집안 가득 할머니 목소리 풀어놓는다. 경상남도 하동군 하개면 용강리 김복남 우리 할머니 택배로 오셨다. (박선미·아동문학가, 1961-) + 스트레스 우리 고모는 전자 제품 공장에 다닙니다. 그런데 공장에만 가면 스트레스 받아 옵니다. 사장이 일 빨리빨리 하라고 만날 잔소리 해 대는 바람에 스트레스 받아서 미치겠다는데 할머니가 한마디 거듭니다. “야야, 오데 받을 끼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아 오노. 일을 했으모 돈을 받아 와야지.“ 어머이, 돈은 월급날이 돼야 받아 오지요.“ "야야, 스트레스는 만날 받아 오면서 돈은 와 만날 못 받아 오노.“ "아이고오 어머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이소. 아하하하 아하하하…….“ 말도 안 되는 할머니 말씀에 우리 고모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 엄마 계시냐 옆집 할매 검정봉지 들고 엄마 계시냐? 오늘은 고구마 다섯 개 무 두 개 엄마는 무밥 지어 할매랑 머리 맞대고 우리는 맛탕에 머리 맞대고 혼자 먹는 밥이 제일 무섭다는 할매는, 내일도 검정봉지 앞세우고 엄마 계시냐? (민경정·아동문학가) + 외로운 할머니 "하룻밤만 더 묵어 가거라." "서울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할머니 눈 속에 핑 도는 눈물. 앞서가는 손자의 뒤통수가 꼭 제 아범 같다며 눈물을 꼭꼭 깨무신다. "언제 또 오겠냐?" "설 때나 오겠어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손을 흔드는 손자의 귀여운 손바닥이 할머니 눈 속에 안개를 피우고 차는 떠났다. 할머니 곁에 남은 서리 맞은 코스모스 고개만 살래살래. (임교순·아동문학가, 1938-) + 병문안 가는 길 외할머니 병문안 가는 길 푸석푸석 흙 길을 걸었어요. 달랑달랑 강아지처럼 따라오는 흙먼지 어제 산 운동화가 투덜거려요. "외할머니는 이 길로 둥근 호박, 길쭉 무, 광주리에 이고 팔아 6남매를 키웠단다." 엄마는 자꾸 옛날이야기를 해요. 노란 민들레 핀 저수지 둑길에 앉아 흙 털다 툭 떨어진 운동화 위에 엄마 눈물도 툭 떨어졌어요. (박경옥·아동문학가) + 종이상자 집 은행 담벼락에 종이상자를 접착테이프로 이어 붙여 겨우 겨우 칼바람을 막은 조그만 집 참깨, 콩, 팥, 마늘, 생강 따위를 맨땅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주인이다. 사 주는 사람도 없는데 종일 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하던 할머니. 오늘은 종이상자 집이 텅 비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일까 핼쑥한 할머니 얼굴 떠올라 자꾸자꾸만 뒤돌아보며 걷는다. (박예분·아동문학가, 196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