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노래하는 시 모음> 이수익의 '한 마리 새가' 외
+ 한 마리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서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이수익·시인, 1942-)
+ 새와 나무
새는
나무가 좋다
잎 피면
잎 구경
꽃 피면
꽃 구경
새는
나무가 좋다.
열매 열면
열매 구경
단풍 들면
단풍 구경
새는
나무가 좋아
쉴새없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준관·시인, 1949-)
+ 참새의 얼굴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참새가 한 마리
기웃거린다
참새의 얼굴을
자세히 보라
모두들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이다
아무래도 참새는
할 얘기가 있나 보다
모두 쓸쓸하게 고개를 꼬고서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이다
(박목월·시인, 1916-1978)
+ 북소리
이름 없는 새가
지린
새똥 한 방울
산정호수 한가운데
떨어지고
점이 깐
원 하나
수천 겹 벗고서야
고요하다
(차주일·시인, 1961-)
+ 새에게
새야, 너는 길 없는 길을 가져서 부럽다
길을 내거나 아스팔트를 깔지 않아도 되고
가다가 서다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디든 날아오를 때만 잠시 허공을 빌렸다가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길 위에서 길을 잃고,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너무 많은 길 위에서
새야, 나는 철없이 꿈길을 가는 아이처럼
옥빛 허공 깊숙이 날아오르는 네가 부럽다
(이태수·시인, 1947-)
+ 새똥 몇 점
새들이 공중을 기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자꾸 기어간다.
김환기 화백이 붓끝으로 점을
쿡, 쿡 찍고 있다.
새들이 땅위에 갈긴
흰 똥 몇 점.
바람이 분다, 마른 명아주들이
일제 흔들린다.
새들은 바람이 공중에 쓰는 상형문자들이다.
구두 뒷축을 구겨 신은 한 남자가
그 상형문자를 읽고 있다.
(장석주·시인, 1954-)
+ 새야 새야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내 안의 어둠 덩어리,
뇌종양으로 죽을 수는 없다
켜켜이 쌓인 어둠이 커져
부풀어진 내 몸뚱이
할 수만 있다면 꽉꽉 처닫힌 철문을
죄다 열어놓고
햇빛 잘 통하고 바람 잘 드는 언덕 위
빨랫줄 꼭대기에 온몸 통째로 매달아놓고 싶다
새야
새야
이럴 땐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러야지
이럴 때는
날개를 펴고 신들린 듯 춤이라도 추어야지
그러다가 날아가야지 꼭 날아가야지
(배우식·시인, 충남 천안 출생)
+ 새와 사람
하늘 높이 날던 새
고도를 낮추더니
야트막한
나뭇가지에 앉았다
고단한 날갯짓
잠시 멈추려는 모양이다.
남들보다 높아지려고
허둥거리고 발버둥치면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에게서 배워야 하리
낮은 자리의 쉼이 없는 생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