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바라보면
들이 되어 보고 싶고
산을 바라보면
산이 되어 보고 싶고
강을 바라보면
강이 되어 보고 싶고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되어 보고 싶고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이 되어 보고 싶고
(정세훈·시인, 1955-)
+ 인생이란
남기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은
남기려 한다고 해서
남겨지는 게 아니다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그 남기려는 것 때문에
일그러진 욕망이 된다
인생이란 그저
사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아니다
(윤수천·시인, 1942-)
+ 욕심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비어 있는 나의 잔
다 알아서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투정을 부리지 말아야지
나의 자리 낮음과
가난함과
나약함과
무능함
괜찮다 괜찮다
고개 끄득여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나태주·시인, 1945-)
+ 깃털처럼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자
가 버린 시간들을 다시 불러
새 옷을 입힐 수 없다면
차라리 버리는 연습을 하자
손에 쥘 줄만 알고
놓지를 못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세상일 놓지 못하여
어리석을 때마다
삶이 무거울 때마다
욕심을 털어 내고
깃털처럼 하늘을 날자.
(신혜림·시인, 서울 출생)
+ 욕망과 필요
작은 새들과 나무들은
행복하다
욕망을 만들어내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행복하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긴장도 없다
들판의 찔레처럼 피어나
새들처럼 노래하라
다만 신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참지 말고 즐기자
과연 얼마만큼의 필요가 있겠는가,
피곤하면 잠을 자고
음식과 물,
사랑하는 가슴
그것이면 족할 것이다.
과도한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지금도 그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에덴의 동산으로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을
또 여기가 바로 천국인 것을
구태여 죽은 다음에
애써서 가려는가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풀꽃을 꺾는다
하지만
너무 여리어 결코 꺾이지 않는다
피어날 때 아픈 흔들림으로
피어 있을 때 다소곳한 몸짓으로
다만 웃고만 있을 뿐
꺾으려는 손들을 마구 어루만진다
땅속 깊이 여린 사랑을 내리며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에
노래 되어 흔들릴 뿐
꺾이는 것은
탐욕스런 손들일 뿐
(조태일·시인, 1941-1999)
+ 무서운 욕망
위험한 것 알면서도
죽음인 것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고 뿌리치지 못하고
암컷에게 다가가는
수컷 사마귀
가지 마 참아
안 돼 안 돼
죽어 죽어
아무리 소리치고 말려도
끝내 암컷을 덥석 껴안고야 마는
수컷 사마귀
절정의 순간에 수컷까지 먹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암컷 사마귀
암컷이 제 머리를 물어뜯어 씹는데도
암컷을 놓지 못하는
수컷 사마귀
끔찍한
사마귀들
사마귀들의 나라
슬픈 지구
(차옥혜·시인, 1945-)
+ 욕망에 대하여
사람들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을 꿈꾼다
수평으로 뻗는 가지를 치면서
오로지 수직만을 달리는
무서운 욕망의 직립(直立)
그것은 고집일 수밖에 없는 슬픔
눈을 뜨면 모든 길들은 희미해지고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오랜 불만처럼
다시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이상한 일이다 욕망은 왜 아픔을 동반하고
슬픔과의 동침을 원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무수한 절망을 출산하는 것인가
(고은영·시인,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