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둔한 제 머리통 대신 어째서
목탁을 두드리고 그 목탁 왜 나무로 만드는지
이제야 짐작하겠다 나무에는 나라고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無이기 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외치다
나무 속 아미타와 따악 마주친 아, 나무!
(이진수·시인, 1962-)
+ 마애불을 찾아서
표지판 일러주는 대로 걸었다
길 따라 마음은 가지 않았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세를 세우는
나무들
죽은 듯 살아라
살아도 죽은 듯 하라
숨죽여 뿌리는 깊어지고
둥글어지고
머리와 멀어지는
아득한 깨우침
낮게 사랑하라
(나호열·시인, 1953-)
+ 마음의 열반
삶을 살아감에
부끄럼이 없고
마음의 병 또한
걸림이 없었으니
두려움마저 없어
잘못된 망상은 떠나고
마침내 우리는
삶의 정점에 이르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마음의 열반에 이르네.
(강봉환·시인, 1956-)
+ 촛불 공양
부처님
저의 눈을
밝게 해 주셔요,
촛불의 밝음을
저의 가슴 구석구석
안겨 주셔요.
밝아진 눈으로
밝아진 마음으로
밝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셔요.
그러면
이 세상 여기저기
극락이 되겠지요.
(작자 미상)
+ 산중문답
아무리 예쁜 보살들이 찾아와
온갖 방법으로 유혹해도
눈길 한번 안 주는 부처님을 애인 삼은
비구니 스님
그 비법이나 한 수 적어볼까 싶어
노트북 들고 찾아간 작은 암자
플러그를 꽂는 순간
암수가 만나면 전기가 통한다는
세속의 이치 비웃으며
노트북 전원이 확 나가버린다
웬일인가 싶어 어리둥절 하는 사이
가부좌 풀고 달아나는 부처님 봤냐며
밭에서 금방 따온 풋고추에 된장 올린
밥상이나 받으란다
(조용미·시인, 1962-)
+ 누워있는 부처
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몸의
부처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으면
어차피 땅 위에 쓰러질 것을
정신의 온갖 질곡 벗어나
살과 뼈와 터럭과 욕망 모두
떨쳐버리고
아무런 자세도 없이 편안하게
땅 위에 누워있는
부드러운 모습
와불(臥佛)을 볼 때마다
아직도 부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내 마음 부끄럽다
(김광규·시인, 1941-)
+ 등신불
중앙성당 앞 길가에
졸고 있다
다 팔아도 2만원 어치가 안 될
푸성귀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
양버즘나무가 제 그림자를 끌어당겨 덮어주려하지만
8월 오후 세시의 햇볕이
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불상 하나
-한 찰나라도 먼저 56억 년 저쪽에 이르기 위해
자동차들이 질주해가는 동안
이미 용화세계에 들었을까
가끔 꿈결에 깨어
경전을 넘기듯 무심히 몇 가닥씩 다듬어놓는
우엉경 열무경 부추경 상치경
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복효근·시인, 1962-)
+ 화엄 세계 읽다
초가집 그을음 새까만 설거지통 옆에는
항시 큰항아리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 끝낸 물 죄다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하룻밤 잠재운 뒤 맑게 우러난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텁텁하게 가라앉은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었다
가끔은 닭과 쥐와 도둑고양이가 몰래 훔쳐먹기도 하였다
하찮은 모음이 거룩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도 곧장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냥 하수구에 쏟아 붓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하룻밤 열 내린 뒤 다시 만나자는 듯
곱게 온 곳으로 돌려보냈다
하수구와 도랑에 육안 벗어난 존재들 자기 생명처럼
여긴 배려였으니, 집시랑 물 받아 빨래하던 우리 어머니들 마음,
經도 典도 들여다본 적 없는
(김정원·시인, 전남 담양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