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 모음> 김현승의 '아침' 외
+ 아침
새벽의 보드라운 촉감이
이슬 어린 창문을 두드린다.
아우야 남향의 침실문을 열어제쳐라
어젯밤 자리에 누워 헤이던 별은 사라지고
선명한 물결 위에 아폴로의 이마는
찬란한 반원을 그렸다.
꿈을 꾸는 두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고 바라보는 푸른 해변은 어여쁘구나.
배를 쑥 내민 욕심 많은 풍선이 지나가고
하늘의 젊은 푸리탄~
동방의 새 아기를 보려고 떠난 저 구름들이
바다 건너 푸른 섬에서 황혼의 상복을 벗어버리고
순례의 흰옷을 훨훨 날리며
푸른 수평선을 넘어올 때
어느덧 물새들이 일어나
먼 섬에까지 경주를 시작하노라
아우야 얼마나 훌륭한 아침이냐.
우리들의 꿈보다는 더 아름다운 아침이 아니냐.
어서 바다를 향하여 기운찬 돌을 던져라.
우리들이 저 푸른 해안으로 뛰어갈 아침이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아침
너는 사랑처럼 온다
말간 물에 낯 씻고
풋풋한 살냄새
손수건에 곱게 싸들고
내 뜰 첫 손님으로
나풀나풀, 너는
신부처럼 온다
(김옥진·시인, 1962-)
+ 아침에겐
아침에겐
아침이 되기 전의 바스락거림이 있다
짐작컨대
세간엔 맑은 슬픔이 되기 전
자작나무 껍질에 닦은 눈동자가 있다
입 딱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바위 위에 잠시 앉았다 떠난 새에겐
초록의 입술 한 점 물어 올린
날기 전의 비틀거림이 있다
산마루가 보이기 전에
오랫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게다
(황학주·시인, 1954-)
+ 참 좋은 아침
조용한
아침입니다
내 안에
넝쿨장미처럼 피어나는
그대 생각을
가슴에 꽂았습니다.
꽃 속에 꽃
미소 짓는
그대 모습 보면서
기분 좋게
하루를 엽니다
(윤보영·시인)
+ 아침의 향기
아침마다
소나무 향기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솔잎처럼 예리한 지혜와
푸른 향기로
나의 사랑이
변함없기를
찬물에 세수하다 말고
비누 향기 속에 풀리는
나의 아침에게
인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온유하게 녹아서
누군가에게 향기를 묻히는
정다운 벗이기를
평화의 노래이기를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아침
이제 내려놓아라
어둠은 어둠과 놀게 하여라
한 물결이 또 한 물결을 내려놓듯이
또 한 슬픔을 내려놓듯이
그대는 추억의 낡은 집
흩어지는 눈썹들
지평선에는 가득하구나
어느 날의 내 젊은 눈썹도 흩어지는구나.
그대, 지금 들고 있는 것 너무 많으니
길이 길 위에 얹혀 자꾸 펄럭이니
내려놓고, 그대여
텅 비어라
길이 길과 껴안게 하여라
저 꽃망울 드디어 꽃으로 피었다.
(강은교·시인, 1945-)
+ 아침
이른 아침 공원에는
이름도 모를 새들이 날아와
하루의 일과처럼 나란히
늙은이들을 기다린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들으려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오랜 정겨운 친구만 같다
사람도 늙으면 저렇듯 키 작은
한 마리 새가 되는가
이른 아침 공원에는
귓속이 너른 늙은이들이 나와
새처럼 앉아 있다
(이상윤·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아침의 일
파릇파릇
어린 새싹 앞에서
삶의 온갖 시름
싹 잊어버리자
가슴속
희망의 날개를 쫙 펴자.
간밤의 어둠 너머
밝아오는 새 아침
하루 중의 새싹과 같은
시간 앞에서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충만하자.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