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단하다. 정말 시인은 그시대에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황지우 시인이 그러하다. 참 병리적으로 찌든 새상에 이렇게 세밀한 카르테형식으로 적어내어 진단서를 끊는 시인의 실력이 무릇 닮고 싶다고 느꼈다.
한국 시단은 왠지 몰라도 아프고 신음소리가 많아서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해외의 시들을 보면 H.하이네나 푸쉬킨 등을 보면 세상이 참 아름답다.
고통은 성스럽다. 입지는 정말 좋은 것이다. 병리만을 찾아서 탄생시키면
회의에도 이르고 메너리즘이 영력해지는거 같다.
병리에서 출발된 백신과도 같은 희망의 언어가 필요하다. 요즘 성인 작가분들에게서 느끼는 우리 문단의 감성적인 발언이자 평가다.
우리는 비탄에 찬 예레미아애가보다 복음서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인간은 고통에 묻히기 보다 거기서 꽃이라도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길이 길이 사랑에 목이 갈한것이니. 후자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짓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떄 상두야 학교가자라는 TV드라마때문에 유행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푸쉬킨의 시를 오늘은 누군가에게
읽히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