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캥거루족’이 많다.
자녀들이 성장해 독립해야 할 때 독립하는 것이 개인이나 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홀로서지 못하고 ‘캥거루’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기주씨(76)는 아침상 끝에 늘 마음이 상한다. 밤새
무엇을 했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식탁에 앉은 집채만한 자식들. 남들은
손주 재롱에 세월가는 줄 모른다는데, 손주는커녕 성가(成家)한 자식 하나
없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1남2녀 모두 서울의 명문대와 대학원,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들. 그러나 이들의 직업적 이상과 현실이 너무나 동떨어지기
때문에 무조건 아무 직장에나 들어가 무슨 일이든 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한숨만 나온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권영호씨(61)는 요즘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의 경제력만 믿고 야무지게 무얼 해보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툭하면 사표를
내는 아들 딸을 보면서 “사자 새끼를 키우고 싶었는데, 캥거루 새끼가 됐다”며
한탄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 사는 강금자씨(67)는 여행이나 다니는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었지만 출가후에도 품을 파고드는 자식들 때문에 노년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1남4녀 모두 결혼을 했지만 맞벌이, 육아, 가사 등을
이유로 강씨집 근처로 이사왔다. 김칫국 하나를 끓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자식들 때문에 성가시고 번거롭다.
김주숙 교수(한신대 사회복지학과)는 “인생에도 각 시기에 해당하는 과업이
있다”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할 시기에 독립하고, 또 그 시기에 수행해야
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가족도 사회도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풍요롭게 성장한 요즘 젊은이들이 ‘생존’에 대한 절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의도 성모병원 상담팀장 이광재씨
는 “대학입시 등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아이들의 경쟁이 아니고 부모의 경쟁”
이라면서 “그러다보니 캥거루족을 양산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