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되면 누구나 월급날을 기다리지.
밀린 카드값도 갚아야 하고 사고싶어 눈도장 찍어둔 그녀석이 사라지기 전에 질러야하고
능력있는 아빠, 멋진 남자친구, 효자, 효녀 노릇을 하려면 월급봉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템이니까.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아이템을 취득하지만 결국 목적은 별 반 다르지 않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욕망을 충족시키고 먹고 살기 위해서...
돈 걱정 안하고 살 만큼 부를 축적하고 있는 이 세상에 몇 안되는 상위 몇%의 능력자가 아닌 이상
우리가 입사를 위해 작성한 자소서의 개인입사 동기와 포부는 사실상 대부분 새빨간 거짓말이다.
꿈을 찾기 위해서..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물론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보람을 찾고 재미를 찾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긴하다.
정말 자신의 적성에 맞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되면서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한달이 흘러 월급봉투라는 덤도 생기는...
진심 축복받은 월급쟁이들 아닌가!!
하지만 내 주위에선 그런 축복받은 인사들을 찾기 힘들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어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잠시 내려두고
여유로움을 따라 쉬고싶어도 쉬이 그럴 수 없는 것은...
그 축복받은 월급쟁이들 조차도 축복받지 못한 월급쟁이가 얽매어 있는 덫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테지.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지친 나는 내 몸의 힘을 쭉 빼고 흔들리는 지하철의 반동에 따라 앞으로 뒤로
옆으로 흔들흔들 거리며 오늘도 월급봉투 때문에 잠도 덜 깬 눈을 비비며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에
서 있다.
여느때와 같은 그런 불쾌한 아침의 시작이
오늘따라 울컥 쓴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차 오르는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십수년 한 직장에서 일을 하며 베테랑이라는 말을 듣고 장인의 경지에 오르고
가족이 있어 아직도 웃으면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분들이 이미 나에겐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위인 이상의 동경의 대상처럼 느껴져왔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잘 도 버티며 살아가는 월급쟁이의 삶에서 난 어쩌면
이제 출발점을 막 끊고 아직 지치지 않아야 할 팔다리를 움직이며 세차게 나아가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도태와 낙오의 공포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더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역 화장실을 더듬어 찾아가 찬물을 몇번 얼굴에 끼얹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이유없이 붉어진 눈으로 정면의 유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보니 어느새
얼굴에 물기가 다 말라버렸다.
그리고 한쪽에 매고있던 가방을 단단히 고정하고서 목적지로 향하는 지하철에 다시 올라탔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을 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무능력함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어 괜스레 억울함을 억누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