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교육이 이루어진 이후의 한국인 대부분이 '피아노 3중주'는 알아도 '시나위'는 무엇인지 모르며, 독창이니, 합창이니, 오페라니 하며 지식 자랑은 해도, 산조나 판소리, 창극 등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것을 비하해서 보았으니 관심을 가질리 없고, 흥미가 생길리 없으며, 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차별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학창시절(70년대 초, 중반) 이 지역 각 대학의 축제나 행사장에 장구통을 메고 불려 다녔다. 또 노래하고 나면 재청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젊은이가 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일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감성적 만남에 의해서도 그럴 수 있다.
어떤 이유이든 이제 우리의 것은 새로운 것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져 오고, 만들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바탕이 풍요로워야 한다. 풍요로운 바탕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것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 아는 말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궤변론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의 대화법은 현대 교육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 드려진다. 대화를 통해서 자기의 생각이 정리되며, 자신이 싫은 것이나 흥미가 없는 것을 외면하는 본질적인 만남의 거부를 해소 시켜주는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음악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좋은 음악을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대화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중, 고등학교에서도 발표력이니, 논리적이고 포괄적인 사고니 하면서 교육방식을 바꾸고 있다. 대화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체계화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만남이다. 흔히 이것을 명상이라고 한다. G. 바슐라르는 '상상력'이 창조 작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명상, 상상력,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다. 대부분 지식의 습득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 만남에는 자연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자기와의 만남이 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도 자기와의 만남이 없으면 진정한 만남이 못된다.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세철학과 근대 철학의 교량적 역할을 한 것으로 얘기되는 I. 칸트의 위대한 철학도 명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칸트는 주위 사람들이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출 정도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명상을 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그는 집으로부터 50Km 이상 떨어진 곳을 가 본적이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연과의 만남이 다른 사람에 비해 적었던 것이다.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일정한 시간에 갖는 명상을 통하여 엄청난 철학을 정리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불가에선 선(禪)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깨달음 또한 자기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바탕이 없으면, 그 바탕이 작으면, 자기와의 만남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작아지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의 자'를 언급하였다. 정리된 바탕이 '우리의 자'이다. 그 자 없이 이루어진 어떤 학문이나 예술도 빛을 발할 수 없으리라 본다. 남의 자로 재단한 그것은 지식의 나열이나 비교 분석이지, 학문이나 예술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학문적 승리' 나 '예술적 승리'라는 말이 가능한 말인지 모르겠다. 독자성이나 깊이, 예술성 같은 말은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의 최고 경지를 '藝'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무술 같은 것도 최고에 다다르면 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술'이라 하지 않고 '무예'라고 한다. 전쟁을 하면서도 무슨 예를 따졌을까 마는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이라고 했다. 어쩔수 없이 싸울 때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는 위태롭지 아니하다' (孫子兵法 地形篇 : 知彼知己 勝乃不殆 知地知天 勝乃可全, 일반적으로 백승 이라고 말하는데 잘 못 인용하는 것으로 보임, 그 다음 말은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승리는 더욱 안전하다 일 뿐 백번 이긴다는 말은 보이지 않음)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이 학문이나 예술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고 본다. 나를 알지 못하고는 남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김원룡교수는 과거 한국학분야나 미술사 등에 있어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적 기조 위에서 다분히 감상주의의 서술이나 관찰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뚜렷하였다'고 쓰고 계몽적, 교육적 관점이 아닌 학문으로서의 미술사 정립을 주창하였다. 여기에서도 맹목적으로 우리의 것이니까 그저 좋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객관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남의 자에 의해서 마구 재단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예술의 속성상 객관성이란 자체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상주의가 태동된 것은 파리 공모전(에꼴드 파리)에서 낙선한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었는데, 거기에 전시되었던 모네의 「해돋이」를 보고 평자가 말한 '인상'(당시의 작가들 중엔 빛의 변화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피하여 순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이란 말에서이다. 그 낙선 작가들이 새롭게 제시한 갖가지 논리들은 근대 미술의 여러 가지 양식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당시의 그들은 객관적으로 낙선 작가일 뿐이었다.
예술은 다분히 주관적인 부분이 있다. 나로부터 객관성을 획득해 가는 '주관적 객관성'이라고나 할까? 우리 자신의 자가 없는 학문, 남들이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자가 없는 예술, 다른 사람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도 외국에서 하는 예술적 양식을 가져와 거르지 않고 우리의 잣대 없이 행하면서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 보다 더 한 것은 그들만이 현대 예술을 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자기의 자 없이 행해지는 그것은 흉내에 불과한 것이다.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이미 과거인 것이다. 우리끼리는 새롭고 굉장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보기에는 우습고 하찮은 것이다. 새로운 양식이나 사조, 의식을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창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의식을 모두 소화해서 그것들을 뛰어 넘거나, 우리의 자로 재단하여 보이거나, 우리 속에 용해시켜 새롭게 탄생시켜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은 남을 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 라는 내용을 글을 발췌해 올립니다.
자신은 얼마나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시는지 .... 궁금하네요..;
아주 튼튼한 방패를 준비하고 계시나 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