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친구가 대학 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내가 원한다해서 '그래, 옳다구
나'하고 갈 친구가 아니란 걸 알기에 더욱더 그러한 노력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가지, 뭐라도 희망차게 꿈을 실현할 목표를 지니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는 했다.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체념이 아니라 살아보려는 열정으
로 뭔가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난 될 수 있으면 희망적이고 가능
성 있는 말을 많이 하곤 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또 내 말을 부정하는 말들을 한
참이나 늘어놓았다.
"네가 부럽다. 확실한 목표가 있고 가능성도 있어. 게다가 생각의 폭도 넓지.
하지만 넌 너무 감상적이야. 모든 걸 좋게만 생각하고, 좋게만 보려고 하는 건
문제가 있거든. 그 점만 빼면 넌 괜찮은 삶을 살 거야."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되고 싶은 모습이 있잖아.
너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그러니 부러워 할 거 하나도 없어. 너도 너만의 목표
를 지니면 되는 거니까."
"그래, 나도 하고 싶은 것은 많아. 하지만 난 알아.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 내겐 그걸 이룰 재능이 없다는 거.
..그게 문제지. 없는 재능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갖고, 어리석은 노력을 하
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항상 그게 문제였어."
분명, 그 친구에게서는 내 눈에도 뚜렷이 보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자기비하에 빠져 체념 섞인 절망의 용트림을 뿜어대고는,
자신의 재능에 그 어떤 기회조차 부여해 줄 생각을 않고, 다만 그 재능을 체념
속에 썩히고 있을 따름이었다. 곁에서 그런 친구를 바라보아야 하는 내 마음은
늘 답답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노
력은 해 볼만하지 않니?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
단 낫다고 생각해. 그리고 또 모르는 거야. 넌 아니라고 하는 재능이 진짜 네가
갖고 있었던 특별한 재능이었는지도 말야. 네가 너무 너 자신을 과소 평가하고
있는 거야.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뭔가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
라구. 그러니까 뭐든 노력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
그 친구는 씁쓸한 미소를 띄우며 고요히 나를 보며 말했다.
"그건, 너니까 가능한 말이겠지. 그런 말들은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왜 쓸데없는 노력을 하니? 그리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는 자기 자신이 더 잘 아는 거야. 재능 없음을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끼는데, 어
떻게 너는 헛된 노력을 하라고 말할 수 있니? 세상엔 말야. 처음부터 시작해서
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런 일들은 일찍부터 포기하는 게 나아.
그걸 알면서도 노력하며 산다는 건 시간낭비, 힘 낭비일 뿐이니까."
늘 이런 식이었다. 언제나 이렇게 우리들의 생각은 빈번히 충돌하기만 할 뿐이
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졸업을 하
게 되었다.
나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던지라 4년제는 갈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전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예상대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
과 함께 길이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서로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친구는 그답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전화
를 걸어 왔다.
"그 동안 잘 있었냐?"
그 친구는 졸업하고 처음으로 하는 연락인데도 방금 전에 만났다 헤어진 사람
처럼 천연덕스럽게 말문을 텄다.
"..어..오..오랜만이네? 우리 졸업하고 처음이지?"
"그래...벌써 그렇게 됐구나.
있지, 오늘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잘 있나 연락 한 번 해봤어."
"..계집애...싱겁긴..."
"너, 많이 보고싶다. 우리 만나자."
우리의 만남은 그 친구의 성격만큼이나 이색적이었다.
도봉산.
그 친구와 내가 몇 년만에 얼굴을 맞대는 뜻깊은 시간을 특이하게도, 우리는 도
봉산 등반으로 맞이하였다. 물론 제안은 그 친구가 한 것이었다.
'답답하게 카페니, 페스트 푸드점이니 그런 데서는 보지 말자. 신선한 공기도
마실 겸 탁트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봉산 어때? '
나는 오직 그 친구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선뜻 "그러자"하고 대답을 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