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하는 관계라는 것이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해 느껴지
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관계하는 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책임감보다도 더 끔찍하
단 말이지? 그래서 지금의 넌 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생
겨나는 감정 때문에 몹시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지? 그게 진정 널 지금까지 힘
들게 했던 문제였단 말이지?』
지영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에 젖어 내 양쪽 뺨에 찰싹 들러붙어
있던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한올, 한올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한
동안 그윽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지영은 내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먼 허공으로 옮겨 두
었다. 그리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감정 말야.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보상받을
거라는 생각. 치유 받을 거라는 생각. 꿈도 꾸지 말고, 기대하지도 마. 네가 지
닌 감정..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근원적인 <외로움>이고 <고독>이
니, 네 스스로가 풀어내야 해. 어느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어. 해결해 줄 수 없
어. 그러니 너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선 아무것도 기대하지마.』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쿵!> 하는 충격과 함께, 그 동안 잠시 사그라졌던
눈물이 다시금 눈가에 맺히기 시작했다. 지영은 여전히 집요한 시선을 허공에
두고는, 가슴 서늘한 말들을 계속해서 밭아냈다.
『네가 믿고 있는 친구들조차 너의 기대를 채워 줄 수 없어. 그들이 네 주변에
오랜 시간 가까이 있었다고 해서 널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하면, 그건 큰 착각이
고 오산이야. 물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보다는 그나마 너에 대해 많은 부
분 잘 알고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널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그
것을 인정해야 해. 너를 10년이나 가까이서 지켜온 나조차도 온전히 너를 이해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띄엄띄엄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너의 다른 친구들
은 오죽 하겠니.』
<뚝!뚝!> 그칠 줄 모르고 자꾸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영
이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은 그렇
게 주책도 없이 쏟아져 나오던지. 어쩌면 내 안에서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을 지
영이 말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을 들
음으로써 인정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꺽-꺽-
<br/>> 울고 있는 나를 그제야 감지했는지, 지영이 난처한 듯 황망한 얼굴로 허공에
두었던 시선을 내게로 옮겨 놓았다.
『울보.. 이제 그만 울어.』
지영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내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러자 내 얼굴에
서 사라져간 눈물이, 지영의 가는 손끝에서 흐르고 있었다. 내가 <휘~휘~>하
고 숨을 크게 내 쉬자, 지영의 손끝에 남겨져 있던 나의 눈물이 <방울방울> 소
주 향을 따라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휘~휘~> 어느 덧, 지영과 내 주위엔 온
통 눈물 젖은 소주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지영은 눈물이 멎었는지 그녀의 손가락을 내 얼굴에 대고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그리곤 바삐 주방으로 달려가, 마치 눈물로 쏟아져 내려 턱없이
부족해진 나의 수분을 보충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보기에도 감칠맛 나도록 투
명한 대용량의 컵에 물을 한가득 채워왔다.
『있지.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전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퍼즐의 한 조각처럼 자신과 관계된 이들의 부
분, 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이야. 왜냐하면 개인은 자신과 관계된 불특정 다수에
게 자신의 전부를 내 보이지 않고, 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 부
분만을 내 보이기 때문이야.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 다는 것은
불가능 한 거야.』
나는 지영이 가져온 물을 <벌컥벌컥> 급하게 들이켰다. 지영이 깨끗하게 비워
진 컵을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자신의 두 손안에 내 손을 꼭
쥐고선 다시 또 말했다. 만약 온전히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를 알고 있는 불
특정 다수의 사람들 전부에게 물어 본 뒤, 알아 낸 사실들을 종합해서 사고를
해야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따라서 내가 느끼고 있는 <근원적인 외로움>
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치유할 수가 없는 거라고. 그러하기 때문에 얽히고 설
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하나는 이해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이해를 받으
며 사는 게 순리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렇게 관계마다, 상황마다 이해하고
이해 받는 역할을 바꿔하면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퍼즐의 조각을 맞춰 가는
것이 지영이 자신이나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이해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
람이 그나마 인생을 좀 더 넉넉하고 밝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야 덜 힘들고, 덜 아프고, 덜 외로울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러한 지영의 이야기를 통해 <울퉁불퉁> 감정의 동요에 요동치던 내 마
음이 점점 고요해짐을 느꼈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