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멍청이! 내가 왜 블랙홀로 데려다 달라고 한 줄 알아? 블랙홀로 데려다
<br/>준 널 떠다밀어서 영영 없애려고 그런 거야! 넌 내 유일의 친구가 아니라구! 유
일의 친구 좋아하네! 네 꼴도 보기 싫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
유일하게 유순함을 보이던 검은 것의 붉은 눈이 하얀 것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
시에 사악한 불을 뿜어 냈다. 급격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치욕을 억제하지
못 한 듯, 검은 것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질끈 거머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하얀 손이 금새 새빨갛게 부풀어올랐다.
<끼아~~악!!>
하얀 것은 손이 부서져 나가는 아픔에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검은 것
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날개 짓까지 하며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파
닥! 파닥! 파닥!
<네가 날...감히 날...어떻게 네가...아~~!!>
정신 없이 몸부림치는 통에 수없이 많은 날개 깃이 하얀 것의 날개에서 빠져나
갔다. 하얀 것의 깃털은 반은 바닥에, 반은 검은 것의 굵은 팔뚝 위에 눈처럼 사
락사락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뽑혀져 나간 하얀 날개 깃 끝엔 붉은 피가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그러
나 하얀 것은 자신의 깃털이 뽑혀져 나가는 아픔조차 잊은 채 정신 없는 날개
짓을 계속 했다.
<그만해!>
검은 것은 좀 전의 모욕은 잊은 듯 날개 깃을 떨구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하
얀 것의 모습에 버럭 소리쳤다.
<하지마!! 네 날개가 다 뽑혀져 나가잖아!!>
하얀 것은 검은 것의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매서운 보랏빛 눈을 위로 치켜 뜬
채 날개 짓을 했다. 그런 하얀 것의 온 몸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하얀
것은 얼마 안 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하얀 것은 끊임없이 날갯짓을
했다.
순식간에 검은 것의 크고 굵은 팔뚝 위로 붉은 피로 얼룩이 진 하얀 색 깃털이
촘촘히 덮여 버렸다. 검은 것은 패닉 상태에 빠진듯한 멍한 눈으로 깃털로 덮
인 자신의 양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만.. 하지마.. 그만..> 이라는 소리만
되뇌다가 문득 생각난 듯 황급히 잡고 있던 하얀 것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하얀 것이 날갯짓을 멈추었다. 하얀 것은 호흡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지 날갯짓을 멈춤과 동시에 한번에 숨을 몰아 쉬었다. 하얀 것을 바라보는 검
은 것의 눈빛과 표정이 아까와 같이 또 묘하게 변했다. 더욱 붉어진 눈과 더욱
일그러진 표정으로. 검은 것은 하얀 것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섰다. 그리고 그
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자신의 두 손을 한참이나 내
려다 보았다. 그러다 하얀 것의 양 팔목에 팔찌처럼 둘러져 있는 멍 자국을 보
고는 자신의 붉은 눈을 꽈-악 감아 버렸다.
<왜 날 미워해.. 왜 날 아프게 해.. 왜 날 힘들게 해서 널 상처 내고 날 상처 입
<br/>게 해. 네가 외롭지 않게 늘 곁에 있는 난데.. 그런 난데.. 왜 날 미워해.>
하얀 것은 자유로워진 손을 잽싸게 뒤로 숨기며 검은 것을 쏘아보았다. 그리
고 눈을 감은 채 애절히 이야기하는 그의 말은 듣지도 않은 듯 싸늘히 미소 지
었다.
<꺼져버려.>
검은 것은 고요히 감은 눈을 떴다. 그리고 똑바로 고개를 든 채 하얀 것과 자신
의 시선을 맞추었다. 멀어졌던 하얀 것과의 거리도 좁혀 가까이 다가섰다. 하
얀 것이 획!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불고불한 은빛 머리채가 아름다운 호
를 그리며 물결 쳤다. 한올 한올 은빛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달빛 향기가
떨어져 내리는 듯 향그러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냉혹한 말 하지 마. 그리고 나를 그림자처럼 네 옆에 있게 해. 난, 너의
<br/>친구다. 유일하게 너의 모든 걸 지켜줄수 있는 친구. 이런 날 언제나 네 옆에 있
게 해. 나마저도 없으면 넌 외로움에 한시도 견뎌내지 못할 거잖아.>
<듣기 싫어! 꺼져버리라고 했잖아! 네가 싫어!>
하얀 것이 분에 못 이겨 자신의 날개를 파닥이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못생긴 괴물주제에 친구들을 다 빼앗아 가 놓고선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
<br/>고 있어?그리고 다른 애들도 이해 할 수 없어. 네 멍청한 목소리와 언변에 취해
서 예쁘고 아름다운 날 놔두고 널 찾기만 했으니까 말야. 그 달콤한 소리에 취
해서 넋을 놓고 있는 꼴들이란! 괴물 같은 모습에 와들와들 떨면서도 알싸하게
감기는 이야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달려드는 꼴들
이란 정말! 자기들 목숨이 두서너개는 되는 줄 알지, 바보같이!>
순간 검은 것이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멈칫거렸다. 몹시 버티기 힘든 고통
이 심장으로 전해오는지 검은 것의 얼굴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하게 찌그
러지고 있었다.
<바보! 멍청이! 돌연변이 괴물! 무섭고 추한 몰골로 지껄이는 저주 받을 네 소
<br/>리는 아름다운 것을 취하려고 하는 네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한 거짓말뿐이
야!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그걸 알아. 그래서 네가 곁에 있으면 넌 나의 비난
을 면치 못해. 어디 맘껏 내 곁에 있어 봐! 넌 아마도 계속 나의 경멸을 받으며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야만 할 걸? 난 그 멍청한 애들과는 달라서 너에게 내
아름다움을 주지 않아! 그러니까 넌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나아. 그런 네
게 블랙홀을 네 무덤으로 만들어 주려던 나를 지금이라도 고맙게 생각하기나
해.>
하얀 것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냉정히 돌아섰다. 그리고 하얀 날개로
온통 자신의 온 몸을 감쌌다.
<나는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데도 아무도 봐주질 않아. 투박하게 나오는 이야기
<br/>들이 자신들의 마음과는 맞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해 버리지. 때론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될 때가 있는데도 그 이면에 무언가 사악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
하고 말지. 하지만 거칠고 과격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 보고 느껴지
는 것이 그런 것들뿐이니 말야. 블랙홀로 갈거야. 나 혼자서라도 찾아 갈거야.
네가 안된다면 나라도 블랙홀로 뛰어 내리고 말겠어.>
동그마니 날개로 몸을 감싼 하얀 것은 처음보다는 많이 약해진 하얀빛을 뿜어
내며 <블랙홀을 보게 되면 꼭 뛰어 내리고 말겠어! 꼭! 꼭!>이라는 말을 몇 번
이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때였다. <꼭 뛰어 내리고 말겠어>라는 하얀 것의 념(念)이 되풀이 될 때마
다 따끔따끔한 고통이 검은 것의 심장 속에 박혀 드는 듯 검은 것은 괴로운 신
음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우아아악!!>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검은 것은 고통으로 넘쳐 나
는 자신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쥐어뜯으며 몸부림을 쳤다. 펄럭! 펄럭! 검은 것
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처연히 서 있는 가로등에 자신의 몸을 부딪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