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침묵 속의 암흑
<후후후>
검은 것은 아까부터 계속 하얀 것을 내려보며 웃기만했다. 미움과 증오가 담긴
말만 하는 하얀 것의 냉랭함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검은 것은 아무 대꾸도 않
고 마냥 웃기만 했다.
그가 웃는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진 입술 끝 모양과 오글오글 쪼그라지는 얼굴
근육과 주름 때문에 아주 흉측해 보였다. 그렇게 이상한 웃음을 짓는 검은 것
을 하얀 것이 경멸에 찬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웃지 마!!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너, 역겨워서 못 봐주겠
<br/>어!!>
어찌나 힘을 주어 소리를 지르던지 하얀 것의 얼굴이 파래졌다 빨개졌다 부
풀어 올랐다.
<거짓말쟁이! 나쁜 녀석! 난 네가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죽이고 싶도록 날 화나
<br/>게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왜 내 뜻대로 행하지 않았지? 분명히 넌 블랙홀로
날 데려가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봐! 여기가 블랙홀이야? 똑바로 봐! 너 일부
러 그랬지? 블랙홀로 데려가는 척하고 일부러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왜 그랬
어! 내 말이라면 곧 죽어도 잘 듣던 녀석이 왜 그랬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하얀 것의 보랏빛 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나쁜 네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 끔찍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내 눈
<br/>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때 무언가가 가슴에 뭉쳐져서 심장을 막아 놓기라도 한 듯 갑자기 하얀 것
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하아.. 하아.. 너 때문이야!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답답해. 하아..하아..
<br/>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야!>
가쁘게 숨을 몰아 쉬면서도 자기 할 말을 다 토해내던 하얀 것이 순간 크게 몸
을 휘청였다.
<하아..하아..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젠 블랙홀이고 뭐고 다 잊고 고향으
<br/>로 돌아가고 싶어. 아무도 날 거들떠보지 않아도, 사랑해주지 않아도 돌아가고
싶어. 하아! 하아! 아파..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야!>
붉은 두 눈에 활화산 같은 갈망의 념(念)을 담고 있던 검은 것이, 힘없이 쓰러
지려는 하얀 것의 여린 몸을 부여 안았다.
<끼아~~악!!>
파닥!! 파닥!! 파닥!!
하얀 것은 검은 것의 손길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언제 그런 힘이 생
겼는지 하얀 새의 날개를 힘차게 퍼덕였다. 검은 것은 하얀 것의 날개 짓에 놀
라 화급히 손을 놓았다. 그리곤 하얀 것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섰다.
아주 잠깐, 그의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물이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
다.
<누가 날 잡으래, 이 추잡한 녀석! 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내가 어떻게
<br/>되든 상관하지 마!>
검은 것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종전의 흉측힌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한 층 붉
어진 눈으로 하얀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의 눈은 한층 붉어진 만큼 한층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끼아~악! 보지 마!>
하얀 것은 검은 것의 붉은 눈을 보며 두려운 듯 온 몸을 떨었다.
<네가 그렇게 날 바라보는 게 싫어.>
하얀 것의 두 눈에 그렁그렁한 보랏빛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보랏빛 눈물이 짙게 맺혀 있는 하얀 것을 보던 검은 것은 자신의 붉은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였다. 그런 검은 것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한번, 두 번 깜빡이다 떠진 붉은 눈이 또 한층 붉어졌고, 얼굴은 더욱 더 험하
게 일그러졌다. 그래서 전의 모습보다도 더 흉하고 무서웠다.
이를 본 하얀 것은 놀라서 더 크게 눈을 뜨곤 흘러내리려는 자신의 눈물을 다
시 눈 속으로 쏘-옥 밀어넣었다. 그러자 하얀 것의 보랏빛 눈이 더욱 사랑스럽
고 아름답게 반짝거렸다.촉촉한 눈물로 자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탱글탱글
해질때마다 하얀 것의 하얀 볼이 발그레발그레 했다. 그런 하얀 것의 모습은 너
무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
그런 하얀 것을 바라보는 검은 것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흉포해졌다. 눈빛도
더 붉어졌다.
<추해! 무서워!>
하얀 것은 검은 것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검은 것은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곤 마치 저주 받은 듯한 자신의 흉한 얼굴을 뜯어내기라도 할 것처
럼 얼굴을 감싼 양 손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불룩 튀어 나온 검
은 살이 푸릇푸릇 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색의 눈이 유난히 촉촉한 빛으로 반짝였다. 하얀
것 못지 않게 아름답고 매혹적인 붉은 눈, 강한 갈망의 념(念)으로 이글거리는
붉은 눈이 숱한 괴로움과 슬픔을 담아둔 채 손가락 사이로 한동안 옅어졌다 짙
어지기를 되풀이했다.
하얀 것은 끈질기게도 고개를 외로 돌린채 검은 것이 얼굴의 손을 본연의 위치
에 두었을 때까지도 돌아 보지 않았다.
후두둑! 후두둑!
세찬 암흑의 비가 풀숲의 여자와 <제3의 존재>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쏴아~! 후두둑! 쏴아~!
암흑의 비는 스스로 부르는 노랫가락에 맞춰 어지럽게 춤을 추었고, 그들은 스
스로가 만들어 놓은 기묘한 침묵 속에 침잠해 있었다.
..3편에 계속...